이 세상은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으며 귀로도 들을 수 있는 소리보다 들을 수 없는 것들이 더 귀하고 소중한 예가 많이 있다. 내가 대학 삼학년이던 무렵, 철학과 교수님이 이런 얘기를 한적이 있다.
만약 사람이 먹는 입을 위해서만 산다면 그 사람은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사람이며, 눈을 보며 사는 사람은 좀더 차원이 높은 삶을, 그보다 영혼을 위해 사는 사람은 가장 높은 경지에 사는 사람이다라고.
벌써 오십년도 더 넘은 세월이 흘러 갔지만 가끔 나는 그 말을 생각하곤 한다. 돈을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알 수 있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이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다 칠십이 넘은 사람들이다. 대개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간혹 아직도 자신의 패물을 위해 수만불의 돈을 쓰고, 옷이나 가방이나 구두로도 수천불의 돈을 아낌 없이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불쌍한 것은 그래봐야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고, 아무도 이쁘다고 칭찬해 주지 않으며 아무도 부러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얼굴에 수백불 짜리 화장품을 처 발라도 주름살이 쪼글쪼글 나오는 얼굴은 너나 나나 거기서 거기다. 오히려 늙으면 젊을 때 이쁘지 않았던 친구가 의외로 더 나아지는 경우가 있다. 이래서 인생사는 공평한 것일까.
지난 주말에 딸애의 생일이있어서 스틴슨 비치에 가서 하룻밤을 묵고 왔다. 저녁 노을을 등에 받으며 해변을 걷고, 다음날 새벽에도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아직 사람들의 발자욱이 없는 깨끗한 해변을 맨발로 걸으면서 모래가 닿는 감촉이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망망한 바다는 언제 보아도 마음을 탁 트이게 만든다. 신기한 것은 태평양 바다나 스페인에서 보던 대서양 바다나 이태리에서 보던 지중해나 제주도 앞바다나 바다는 그냥 같은 바다라는 사실이다.
저녁엔 가지고간 고기로 바비큐를 해먹고, 딸 내외랑 아들 내외랑 바다가 보이는 덱에서 차를 마시며 얘기 꽃을 피웠다. 꼬마들은 모래 사장에서 집을 짓고, 강아지는 뛰어다니며 꼬리를 흔드는 행복한 저녁무렵이다.
내가 사위인 스티브에게 물었다. 이 별장을 산 지가 얼마나 됐느냐고, 스티브는 자신이 세살때 부모님이 사셨다고. 그 말을 하는 스티브의 눈가에 물기가 서렸다. 아마 돌아가신 부모님들을 생각해서일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한 이곳은 자신의 영원한 고향이라고"문득 내 사돈이었던 로라와 빌이 생각이 났다.
빌은 유명한 변호사였다.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오스월드를 권총으로 쏘아죽인 사람이 잭 루비인데, 빌은 그 사람을 변호한 변호인단 중 한사람이어서 역사에도 그 이름이 나와있다고 한다. 아들을 넷 두었는데 모두 변호사이지만 사위인 스티브는 적성에 안 맞아 나중에 금융계로 직업을 바꾸었다.
로라는 목소리가 곱고 미소가 아름다웠던 전형적인 백인 상류층 여자였다. 우리 부부와 몇번 여행을 같이 간 적이 있는데, 큰 가방에 모자와 구두를 열개씩은 가지고 다녀서 나를 헷갈리게 했다.
이 해변의 별장은 그들이 살던 밀밸리라는 동네에서 삼십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에 그 편리함으로 집을 샀다고 말했다. 남자 아이들이 넷이어서 그 극성때문에 도저히 멀리는 갈 수가 없었다고 로라는 내게 고백한 적이 있다.
아랫층에 부엌이 딸린 큰 스윗트가 있고, 이층에 방 세개와 목욕탕도 셋이 있다. 밀물이 들어올 때는 집에서 약 25야드까지 파도가 밀려든다고 한다. 나는 그날밤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을 잤다.
집에서는 새소리를 들으며 잠을 깨는데,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는 그 맛이 색달랐다. 일주일에 렌트비만 사천오백불이 든다고 했다. 렌트비로 운영비는 충당이 되지만 다음 세대는 아이들이 많아서 계속 이곳이 유지가 될지 어떨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스티브의 목소리가 힘이 없었다.
아버지가 너무 잘나면 그 아버지만한 아들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 있다. 근 오십년을 지켜온 바닷가의 집을 대를 이어서 우리 손주들 세대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는 그곳에서 떠나올 때까지 더 많은 바닷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귀울였다.
귀를 귀울이고 들으면 미세한 소리까지 들린다. 바람 소리, 가끔 먼곳에서 개 짓는 소리, 안개 때문에 큰배가 지나가며 붕붕!거리는 소리, 보통 때는 잘 안들리다가도 내 깊숙한 곳, 영혼의 소리가 들린다. 영혼의 귀가 열리기 때문이다.
명예나 돈이나 권력, 눈에 보이던 모든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지나가는 바람처럼 어느날 속절 없이 내 곁을 떠나 갈 것들, 그것때문에 젊은날은 무수한 짐을 지고 힘들게 살았다.
이젠 모든 짐들을 내려놔야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이고, 귀로는 안들리지만 영혼의 귀로 들리는 그 소중한 것들을 찾아가야지.
우리가 죽었을때 사람들이 "그 사람 한 세상 잘살았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들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다. 그것을 위해 오늘도 가만히 영혼의 귀를 귀울여 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