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가영 큐레이터와 함께
▶ 태(胎)를 담아 봉하다. 분청사기 태 항아리
어깨 부분에 4개의 고리가 달려있는 분청사기 항아리이다. 이런 고리는 뚜껑과 몸통을 단단하게 연결시키는데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저장의 기능을 가진 도자기 항아리에 유난히 뚜껑을 고정시키는 구조가 추가되었다는 점은 이 항아리가 귀중한 것을 담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이 속에 담아 보관했던 것은 아기의 출산 부속물인 태(胎)였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모시는 풍습이 있었다. 후손을 귀하게 여겼던 왕실은 태가 태아의 생명력을 부여한 것으로 여겨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하였다. 왕손이 태어나면 태를 즉시 항아리에 담아 놓았다가 길일을 택하여 태실(胎室), 혹은 태봉(胎封)에 봉안하였는데, 이 때 태어난 아기의 출생정보와 태의 매장시기 등을 기록한 지석(誌石)을 함께 묻고 태비(胎碑)를 세워 예의를 갖추었다.
주로 도자기로 만들었던 태 항아리는 대개 내(內)-외(外) 한 벌로 만들어 이중으로 봉안하였다. 깨끗하게 여러 번 씻은 태는 내호(內壺) 밑바닥 중앙에 넣는데, 이 때 헌 동전 한 개를 글자가 적힌 부분이 위로 가게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태를 위치시켰다. 기름 종이와 남색 비단 등으로 항아리 입구를 덮고 빨간 끈으로 단단히 밀봉시킨 내호는 외호에 넣어 밀봉하였다. 이 때 도자기끼리 서로 충격을 가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항아리 사이를 솜으로 가득 채워 고정시키는 과정이 필요했다. 내호가 외호 속에서 단단히 고정되고 나면 최종적으로 습기가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름종이로 꼼꼼히 싸고 뚜껑을 닫아 마무리 하였다.
호놀룰루미술관이 소장한 태 항아리는 뚜껑이 소실되어 몸통만 남은 분청사기 1점이다. 현재 남아있는 모습으로는 내호인지 외호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회청색의 흙으로 형태를 만들고 전면 가득 도장을 찍은 후 백색 흙을 채워 상감하였는데, 이렇게 도장을 이용한 상감 기법을 특별히 인화(印花) 상감기법이라고 부른다. 인화상감은 조각칼 같은 도구로 하나씩 문양을 새겨넣는 일반 상감에 비해 짧은 시간 동안 같은 문양을 반복해서 장식하는데 효과적인 기법이다. 항아리의 전면을 가로질러 문양대를 구획하고 횡선에 맞춰 둥근 모양의 도장을 찍은 모습에서, 문양과 문양 사이의 간격이 일정하고 줄의 흐트러짐을 찾을 수 없어 제작단계에서부터 각별한 정성을 쏟아 만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장 문양의 아랫단에는 두 개의 공간을 따로 구획하고 한자로 각각 ‘합천(陜川)’과 ‘장흥고(長興庫)’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점이 특이하다. 이 때 합천은 경상남도에 위치한 지역 이름으로 항아리를 만든 제작지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장흥고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하는 물품의 관리를 맡았던 관청 이름으로, 이 항아리의 조달을 책임졌던 관청이 장흥고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도자기 표면에 관청 이름이 새겨진 것은 <태종실록(太宗實錄)> 의 기록과 연관되어 흥미롭다. 1417년 4월 기록에는 관청에 공납하는 도자기 그릇에는 해당 관청이름을 새겨 넣으라는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장흥고’라는 명문이 새겨진 호놀룰루미술관의 태 항아리는 적어도 1417년 이후에 만들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조선 전기, 새 생명의 건강과 안녕을 기리며 탄생의 흔적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졌던 태 항아리는 생명을 존중하는 정신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후대까지 전달하는 역사적 자료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 이 유물은 2015년 8월 13일부터 11월 8일까지 개최하는 “Splendor and Serenity: Korean Ceramics from the Honolulu Museum of Art” 특별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호놀룰루미술관 관람 정보>
Honolulu Museum of Art
900 South Beretania Street
808-532-8700
www.honolulumuseum.org
관람료
일반 10 달러
만 17세 미만 무료 입장
관람시간
화요일-토요일 10:00-16:00
일요일 13:00-17:00
* 매주 월요일 휴관
* 매주 화요일 10:00~12:00은 한국어 도슨트 투어 가능
* 무료 관람일 및 휴일 관람시간은 홈페이지 참고
<하와이 한인미술협회 후원>
오 가 영
호놀룰루미술관 아시아부 한국미술 담당
한국국제교류재단 파견 객원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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