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버스데이!” - 메디케어가 지난주로 50주년을 맞았다.
1965년 7월30일 린든 존슨 대통령은 미주리 주로 날아가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신설법안 서명식을 가졌다. 제36대 대통령 존슨은 ‘전국민 의료보험’ 실현을 위해 열렬히 투쟁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팔순의 제33대 대통령 트루먼에게 “메디케어의 진정한 아버지”라는 치하와 함께 첫 메디케어 카드를 전달했다. 그리고 선언했다 :
“더 이상 미국의 노인들은 현대의학의 치료를 거부당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어떤 질병도 이들이 품위 있는 노후를 위해 평생 모아온 재산을 탕진시키지 못할 것이다”
한인을 포함한 모든 미국인들에게 메디케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노인들에게도, 노부모를 가진 자녀들에게도 노인의료보험인 메디케어는 인간다운 삶을 지탱해주는 가장 든든한 주춧돌이다. 메디케어 입법화 당시 틴에이저였던 베이비부머들이 이제는 혈관이 막히고 무릎이 아픈 노인이 되어 메디케어를 찾아오고 있다.
현재 메디케어 수혜자는 5,500만명, 입법 당시 함께 신설된 저소득층 의료지원 프로그램인 메디케이드까지 합하면 무려 1억2,000만명에 달한다. 이 두 제도에 국민 3분의 1이 건강을 의탁하고 있다.
메디케어의 역사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애초엔 노인의료보험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1930년대 초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시기에 잉태된 아이디어는 포부도, 대상도 훨씬 큰 ‘전국민 국가 의료보험’이라는 진보의 원대한 꿈이었다. 이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대결은 입법화되기까지 30여년 동안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루즈벨트 당시 소셜시큐리티 법안에 포함되었던 전국민 의료보험 조항은 의료계와 보수의 결사반대로 법안의 통과자체가 위험해지자 삭제되었고, 뒤를 이어 트루먼이 ‘소셜시큐리티 수정안’으로 세 차례나 의회에 제안했으나 단 한 번의 청문회조차 열리지 않은 채 사장되었다. 현실의 장벽을 인정한 진보가 규모를 축소하면서 태어난 것이 ‘메디케어’였다.
1960년 취임한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강력한 옹호자였다. 그러나 62년 상원에서의 메디케어 첫 표결의 결과는 패배였다. 그는 재추진을 천명했고 1963년 케네디가 달라스에서 암살당하던 순간에도 그의 참모들은 워싱턴에서 메디케어 통과위한 대책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케네디 유산’의 한 부분으로 메디케어는 존슨에게 인계되었다. 그때까지도 메디케어 논쟁에선 공화당과 미의사협회에 민주당의 보수파가 가세한 보수연합의 반대기류가 우세했다. 전세를 역전시킨 것은 1964년 대선에서의 존슨과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존슨의 메디케어 공약에 뜨겁게 화답한 노인표밭이 큰 원동력이 된 것은 물론이었다. 당시 배우였던 로널드 레이건을 앞세워 메디케어를 ‘사회주의 처방’으로 몰아붙이며 공격했던 보수와 의료계의 연합전선은 64년 대선을 계기로 와해되었다.
존슨은 민주당 보수파의 의견을 수용, 메디케어 법안에 새로운 조항으로 메디케이드를 추가했다. 저소득층 의료지원제도를 신설하는 것으로 전국민 의료보험을 고집하는 리버럴 진영의 요구를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시행 첫해인 1966년 1,900만명이 가입했던 메디케어는 병원비를 커버하는 파트A와 의사진료비를 커버하는 파트B만으로 출발했다. 트루먼을 비롯한 첫 수혜자들이 부담한 비용은 파트A의 연 공제액 40달러와 파트B의 월 보험료 3달러였다. 그후 반세기, 민주·공화 행정부를 고루 거치며 메디케어는 계속 수정과 보완을 거듭해왔다.
70년대엔 일부 장애자에게도 메디케어 혜택이 확대되었고 80년대엔 불치환자의 호스피스 서비스 커버가 추가되었으며 90년대엔 민간보험 옵션인 메디케어 우대플랜이라는 파트C가 신설되었고 2000년대엔 처방약 플랜 파트D가 추가되었으며 2010년엔 오바마케어가 입법화되면서 메디케어 혜택이 늘고 수혜자 부담이 줄어들었다.
(아, 한 가지 더 있다. 많은 한인노인들에게 생명선이 되고 있는 ‘메디-메디’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다. 저소득층 노인들이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혜택을 동시에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메디케어 시행의 효과는 놀라웠다. 존슨의 선언처럼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노인이 줄어들고 병원비로 인한 파산의 공포가 사라졌다. 시행이후 노년층의 수명은 5년이 늘어났고 빈곤률은 29%에서 10%로 낮아졌으며 무보험률은 48%에서 2%로 폭락했다.
여론의 지지도 높다. 지난달 발표된 카이저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4명 중 3명이 메디케어는 “매우 중요하다”고 절대지지를 표했으며 수혜자의 91%가 사용경험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개선할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최대 도전은 경비다. 1인당 지출의 증가세는 최근 둔화되었지만 15년 후엔 수혜자가 8,000만명을 넘어서게 된다. 4개의 파트로 쪼개놓은 복잡한 메디케어의 구조 간소화도 시급하고, 갈수록 늘어나는 장기요양 환자에 대한 커버 확대도 당면과제다. 실제로 장기요양이 필요한 노년층은 70%에 달하는데 현재 메디케어는 장기요양 경비를 커버하지 않는다.
출범 50년이 지난 아직도 메디케어는 여전히 워싱턴 정치싸움의 단골 이슈다. 민주당은 부자증세 외엔 시원한 재정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공화당은 대안이 되기 힘든 대안 “민영화!”만 주장한다. 그리고 메디케어에 여생을 의지하고 있는 노인들은 경고한다 : “내 메디케어에 손 대지마라!”
2016년 대선의 결과는 메디케어 개혁 방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신의 ‘메디-메디’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면 지금부터라도 대선의 흐름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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