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난 당해 살아남은 작품들… 12개국 30개 기관서 대여
▶ ‘복제의 예술’ 등 테마별 전시
■ 전세계 작품 ¼ ‘특별전’
게티센터에서 7월28일부터 11월1일까지 열리고 있는 ‘파워 앤 페이소스: 헬레니즘 세계의 청동조각전’(Power and Pathos: Bronze Sculpture of the Hellenistic World)은 전시 배경과 역사 공부를 좀 하고 가는것이 그 엄청난 가치를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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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고대유물에서 청동조각이 얼마나 희귀한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대리석 조각뿐 아니라 청동(bronze) 조각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2,300여년 세월이 지나면서 청동상은 거의 다 사라졌고 석조상들만이 남아 전해진다. 그 이유는 청동이 굉장히 비싼 재료였던 탓에 세대가 바뀌면 오래된 작품을 녹여 다른 것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초기 크리스천들은 그리스인들이 만든 각종 신상이나 누드상을 불경스럽게 여겨 모두 폐기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 운명을 피해 살아남은 고대 청동조각들은 ‘재난’이라는 ‘행운’을 만났던 것들이다. 그리스에서 조각품들을 싣고 지중해를 건너 다른 나라로 항해하던 배가 해적이나 풍랑을 만나 좌초하면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것들이 훗날 발견돼 하나씩 세상 빛을 보게된 것이다. 혹은 폼페이 화산폭발 때 파묻혔던 것이 발굴되기도 했다.
당연히 헬레니즘 시대의 청동상은 너무도 희귀해 전세계에 약 200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 게티 청동전이 중요한 것은 그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50여점을 한 자리에 모은 최초의 전시이기 때문이다. 세계 유명 뮤지엄들이 각기 한두 개씩 소장하고 있고 모두 각 나라의 국보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같은 공간에서 감상할 기회는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게티는 이 전시를 7년 동안 준비했으며 12개국의 30개 기관에서 대여해오는 엄청난 수고와 공을 들였다. 그 중에는 게티의 소장품도 3점 포함돼 있으며 이탈리아 피렌체의 팔라조 스트로치와 고고학 뮤지엄을 중심으로 메트로폴리탄, 스미스소니언, 프라도, 브리티시, 루브르 등이 작품을 대여했다.
사실은 시대상으로 고대유물 박물관인 말리부의 ‘게티빌라’에서 열려야 할 전시가 중세·근대·현대미술관인 ‘게티센터’에서 열리는 이유도 너무도 귀한 조각품들이라 더 넓고 자연 채광이 좋은 공간에서 360도 모든 각도로 보여주기 위해 파격적으로 바꾼 것이다.
또 하나 공부할 것은 헬레니즘 시대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클래시컬’ 혹은 ‘고전기’라고 말하는 그리스 황금시대는 기원 전 4~6세기의 아테네 문화를 말한다. 헬레니즘은 그리스 고전기 이후에 등장한 약 300년의 시기로,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BC 323년부터 로마의 아우구스투스가 마케도니아 왕국의 마지막 후계자인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오를 살해한 BC 31년까지라고 학자들은 구분한다.
헬레니즘 문명은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서남아시아, 이집트까지 정복한 후 고대 그리스 문화와 동방 문화가 융합되면서 태동된 ‘퓨전문화’다. 이 시기 그리스는 패권은 잃었지만 찬란했던 문화를 지중해 너머세계로 전파했고, 역으로 타문화의 수용도 이루어진 것이다.
고전기의 조각이 이상적인 인체의 아름다움을 구현했다면, 헬레니즘 조각은보다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표현을 보인다. 또 신들이나 귀족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을 소재로한 작품들이 많아졌으며 다양한 감정표현, 나이와 성격이 드러나는 표정묘사 등을 이 시기 미술의 특징으로 꼽는다. 특히 청동은 대리석보다 유연하게 주조할 수 있어서 섬세한 표현이 가능했고 역동적인 포즈도 자유롭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한 올 한 올 머릿결과 눈썹, 주름, 근육과 힘줄까지 정교하게 드러낸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시대의 또 하나의 특징은 귀족이 아닌 시민계급 부자들이 많아지면서재력 과시를 위해 집안을 장식하는 예술품의 주문이 늘어나게 됐고, 이로 인해 미술품의 상거래와 개인의 미술품 소장이 처음 시작됐다는 점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미술품은 국가나 공공기관, 신전의 장식을 위해 수주하는 것이 전부였다.
게티의 전시는 기원 전 4세기부터 기원 후 1세기까지 약 500년간의 청동상을 6개 섹션으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다. 통치자들의 이미지(Images of Rulers), 이상과 극단의 인체(Bodies Ideal and Extreme), 신들의 형상(Images of the Gods), 복제의 예술(Art of Replication), 닮음과 표정(Likeness and Expression), 복고 스타일(Retrospective Styles) 등이 그것으로 고대 조각가들의 다양한 스타일과 기법을 비교해 볼 수 있도록 비슷한 유형의 작품을 함께 디스플레이 했다. 조각상 하나하나마다 독특한 스토리와 발견 경로, 제작 배경 등이 담겨 있다. 관심 있는 사람은 시간을 갖고 작품 설명들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귀중한 전시의 의미를 충분히 인조이하는 것이 좋겠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앞에 생뚱맞게 돌덩어리가 하나 놓여 있다. 그것은청동조각상을 올려놓는 받침대로서, 당대 최고의 조각가 리시포스(Lysippos)의 이름이 새겨진 돌덩어리다. 알렉산더 대왕이 가장 사랑했다는 조각가 리시포스는 무려 1,500여점의 청동작품을 만들었다는 그 시대 최고의 장인인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단 한점도 없다. 지금도 고대 유적지 곳곳에는 이같은 돌 받침대들이 수없이 발견된다고 한다. 헬레니즘 시대에 청동상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입장료 무료. 주차비 15달러
www.getty.edu
1200 Getty Center Drive, LA, CA 90049, (310)440-7300
<정숙희 기자>
➊ ‘앉아 있는 권투선수’(Seated Boxer). 게티 청동조각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 BC 2~3세기 제작된 것으로 당시 운동경기의 참혹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격전을 치르고 난 남자의 얼굴을 지친 표정과 함께 찢겨진 상처와 멍, 부풀어 오른 귀까지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걸작이다.
➋ ➌ ‘운동선수’(Athlete)란 같은 제목의 두 청동상은 조각가 리시포스의 유명한 ‘아폭시오메노스’(Apoxyomenos, 때를 밀고 있는 조각상)을 로마시대에 복제한 작품들로 보인다. 위쪽 것은 1896년 터키의 에베소 지역에서 234개 조각 난 채로 발굴됐고, 아래쪽 것은 1996년 크로아티아 인근 해역에서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두 남자는 운동경기 후 몸에 쌓인 땀과 먼지를 밀어내는 낫 같은 도구(strigil)를 들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➍ ‘디오니소스의 헤름’(Herm of Dionysos). 헤름은 헤르메스 신에서 따온 말로 경계 표지석을 가리킨다. 두상에 성기만 표출된 대단히 현대적 감각의 이 청동상은 게티 소장품으로, 이와 동일한 공방에서 주조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쌍둥이 작품을 튜니지아 국립기관에서 대여해 함께 전시하고 있다.
➎‘말을 탄 알렉산더 대왕’. 당대 최고의 조각가 리시포스가 제작한 대형 기념동상을 작게 복제한 작품으로, 화산폭발로 폼페이와 함께 매몰된 고대도시 헤라쿨라네움에서 1761년 발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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