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광주비엔날레 첫 선 이후 국제적 주목
▶ 1세대서 2세대로 진화… 상업화 변질 안타까워
윤진섭씨가 안영일 화백의 스튜디오를 방문, 작가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윤씨는 ‘물’ 시리즈가 영적인 정신성이 깔려 있는 단색화 범주에 속한다고 말했다.
윤진섭 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단색화를 처음 세상에 내놓았고 현대미술사에 단색화의 위상과 의미를 새겨 넣은 인물이다.
【인터뷰 - 한국의 단색화를 세상에 알린 미술미평가 윤진섭씨】
‘단색화’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게 불과 2년 전이다. 조앤 기(Joan Kee) 미시간대학 교수가 쓴 영문서적 ‘현대 한국미술’(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단색화라는 미술사조를 흥미롭게 공부했었다.
이후 단색화란 단어가 점점 더 많이 눈에 띄더니 지난해 8월 컬버시티에 있는 ‘블럼 앤 포’(Blum and Poe) 갤러리에서 열린 한국 단색화 6인전을 계기로 확실히 인식하게 됐다. 이 전시는 미국 화단에도 단색화를 알리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지금 단색화는 완전 대세다. 작년부터 국내 언론의 미술기사는 단색화 이야기로 도배되고 있고, 옥션에서는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국제 미술계에서도 다각도로 조명되고 있는데 지난 3월 영국의 권위 있는 현대 미술잡지 ‘프리즈’(Frieze)가 단색화를 다뤘고, 현재 열리고 있는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한국 단색화 특별전이 병렬 전시되고 있다.
그 단색화의 중심에 미술평론가 윤진섭(60)이 있다. 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이며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후보인 그는 단색화를 처음 세상에 내놓은 사람이고, 단색화(Dansaekhwa)의 영어단어를 고유명사로 만든 사람이며, 현대 미술사에 단색화의 위상과 의미를 새겨 넣은 사람이다.
화단의 중견 미술 비평가이자 전시 기획자이고 그 자신 전위예술가로서 한국 미술계를 쥐락펴락하는 윤진섭 평론가가 지난주 LA에 왔다. 그가 이곳을 방문한 이유는 단 하나, 안영일 화백의 ‘물’(Water) 시리즈 작품을 보기 위해서다. 미국에도 단색화 계열의 작업을 해온 한국인 화가가 있다는 소릴 듣고 직접 확인하기 위해 단숨에 달려 왔다고 한다. 단색화 열풍을 주도했으나 지금은 그 열풍에서 빠져나와 다시 날선 비평가의 시선으로 단색화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그를 지난 주 한인타운에서 만났다.
- 안영일 선생의 작품이 어땠습니까. 단색화의 범주로 볼 수 있습니까?
▲ 깜짝 놀랐습니다. 상당한 작품들이고, 분명히 단색화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물’ 시리즈가 대표적이에요. 굉장히 명상적이며 깊이 있고, 영적인 정신성이 깔려 있습니다. 그림 안에 많은 것이 담겨 있어서 농축된 작품으로 다가옵니다.
- 단색화는 한국서 70년대 자생된 사조인데 한국 작가들과 연관 없이 미국에서 비슷한 작업을 해왔다는 게 놀랍지 않습니까?
▲ 40년 동안 한국 작가들과 아무런 교감이 없었는데 같은 계열의 작품을 해왔다는 사실이 정말 경이롭습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는 아직 이르고, 일단은 안영일이라는 화가를 화단에 알리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같은 연배의 대가들은 많이 작고했는데 그 반열에 따라 위상을 정립해 나가야겠죠.
- 젊은 시절엔 천재작가로 유명했는데 오랫동안 잊혀진 분입니다.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요?
▲ 미국서 오래 살아온 화가라 한국에 새롭게 소개하고 재조명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LA의 ‘백아트’와 창원의 ‘세솜’ 갤러리가 오는 10월 2015 키아프(KIAF 한국 국제아트페어)에서 안영일 초대전을 기획하고 있으니 화단의 주목을 끌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키아프에 붙여 안 화백의 작업세계를 평가하고 소개하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 단색화를 처음 소개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의 특별전 큐레이터로서 1960~70년대 한국과 일본의 미술운동인 단색화와 모노화를 비교하는 한일 현대미술전을 기획했습니다. 한국의 단색화는 일본의 모노화나 서구미술의 미니멀리즘과는 다른 고유의 전통과 특질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려 기획한 최초의 전시였죠. 그러나 당시에는 별로 반향이 없었습니다. 이후 나는 의식적으로 수많은 글과 비평에서 계속 단색화에 대해 쓰면서 이 사조의 아이덴티티를 알리려 애써 왔어요.
- 최근 2~3년 사이에 갑자기 유명해졌네요.
▲ 큰 돌파구는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내가 초빙 큐레이터 자격으로 기획한 ‘한국의 단색화’ 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단색화가 국내외적으로 급속히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 그런데 지금은 비판의 글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 2013년에 국제화랑을 비롯한 몇몇 큰 화랑들이 단색화를 들고 나가 국제화단에서 크게 성공하면서 단색화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비평적 단면과 상업행위가 같이 가면서 미술사에서 위치를 다져야 하는데 작품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상업적 행위만 앞서 가면 건강하지 못해요. 또 국제적으로 유명한 단색화 작가는 박서보 이우환 하종현 정상화 윤형근 정창섭 등 1세대의 일부 작가에 국한돼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외국에서는 단색화를 1960~70년대 한국의 미술운동으로만 인식하는 국면이 있는데 사실은 지금까지 계속 진화하며 이어지고 있거든요.
- 단색화의 계보를 잇는 젊은 화가들이 있습니까?
▲ 2세대 작가들이죠. 31명의 단색화 작가 중에 전기 17명, 후기 14명을 들 수 있습니다. 전기와 후기는 재료와 의식이 달라요. 70년대 선구자들의 단색화가 반복적이고 촉각성, 행위성, 정신성, 수행성을 지녔다면 지금 40~50대인 후기 단색화 세대는 산업사회 교육을 받은 작가들로서 재료의 물성적 측면에 주목하는 실험적 작업을 많이 보여줍니다.
- 미술비평은 무엇입니까?
▲ 비판을 전제로 좋은 것을 가리는 것입니다. 어원 자체가 두 가지에서 왔는데 하나는 잡석을 버리고 좋은 것을 구별한다는 의미에요. 그래서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평론가의 역할입니다. 또 하나는 위기라는 뜻입니다. 시대의 상황과 정신의 위기, 문명의 위기가 닥쳤다고 경고함으로써 구체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러나 요즘에는 큐레이터, 즉 전시기획자들이 힘을 받는 추세여서, 비평가들이 위축된 경향이 있습니다. 바람직한 것은 전시기획과 비평이 같이 가면서 시대에 대한 예민한 촉들을 어떻게 발언하느냐, 어떻게 모으고 어떤 주제로 묶는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내게 있어 전시기획과 비평은 양날의 칼과도 같습니다.
- 국제미술평론가협회는 어떤 단체입니까.
▲ 아이카(AICA)는 1948년 조직돼 현재 90개국의 4,500명 회원으로 구성돼 있는 큰 단체입니다. 2007년 브라질의 상파울루에서 열린 AICA 총회에서 부회장에 당선됐고, 2011년 재선, 지난해 연임돼 세 번째 임기를 맡고 있죠. 2014년 47차 AICA 학술대회 및 총회를 한국으로 유치해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이 큰 성과입니다. 사실은 회장선거에 출마했는데 근소한 차로 안 됐어요. 유럽 국가 중심의 아이카에서 아시안의 목소리를 좀 내고 싶었는데 말이죠. 세계 미술의 동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갔고, 지금은 중국과 인도, 한국도 포함한 동남아시아의 힘이 커지고 있어요. 경제적으로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 ‘단색화’(Dansaekhwa)는
70년대 이후 한국의 서양화가들 사이에서 커다란 물줄기를 이루며 한국 현대미술의 틀을 형성해 온 미술사조를 일컫는 고유명사다. 구상성을 배제한 순수한 단색의 추상화로서, 촉각적이고 구축적이며 자연친화적이고 자기수행적인 작업이란 점에서, 인위적이고 평면적이며 시각중심적인 서구의 미니멀리즘 혹은 일본의 모노화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세계 미술사에서 한국의 정신세계와 연결된 중요한 미술 흐름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 독자성과 차별성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어로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는 우리 고유의 미술양식이다.
☞ 윤진섭씨는 누구
홍익대 회화과 및 이 대학원 미학과 졸업. 웨스턴 시드니대 철학과 박사. 제1, 3회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 제50회 상파울루비엔날레 커미셔너, 제3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전시총감독,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70여회의 국내외 전시기획을 했다.
국무총리 표창, 대통령 표창, 한국예총 예술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몸의 언어’ ‘한국의 팝아트’ ‘글로컬리즘과 아시아의 현대미술’ 등 미술과 평론에 관한 13권의 저서를 냈다. 호남대 미술학과 교수로 16년 가르치다 작년에 은퇴했으며 현재 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호주 시드니대학 미술대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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