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화당 지도부의 하루는 “트럼프가 또 뭘 했다고?”로 시작하여 “트럼프를 어찌할까?”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난 주말엔 전쟁영웅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헐뜯고 전쟁포로 전체를 폄하하며 뜨거운 논란을 자초했고 이를 비난하는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과 “바보” “멍청이” 나오는 대로 퍼부으며 막말공방을 벌이더니 급기야는 엊그제 수백명 청중들에게 그레이엄의 개인 셀폰번호를 공개했다. 그건 전화와 문자 폭탄이 테러수준인 요즘 세상에선 철없는 아이들도 하지 않을 ‘짓’이다.
2016년 대선 공화당 예비선거는 첫 투표를 6개월여 남겨놓은 현재 좌충우돌 억만장자 후보 도널드 트럼프(69)에게 속수무책 점령당한 상태다. 한달 전 출마선언 연설에서 멕시코계 서류미비자들을 강간범과 마약딜러로 싸잡아 비하하며 요란스럽게 캠페인을 시작한 트럼프가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도, 용납하기도 힘든 막말과 독설을 남발하며 대선판을 뒤흔들고 있다.
처음엔 무시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상상조차 하기 힘드니까. 그가 누군가. 미국의 현직대통령에게 출생증명서 제출을 강요하며 4년 전에도 대선판을 맴돌던 엽기적 도발의 장본인이다. 수백만명 이민집단을 범죄자로 낙인찍는 선동적 발언도 그의 입을 통해 나왔다면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몰지각한 허풍”으로 제쳐놓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충격이 뒤따랐다. 트럼프의 지지율 급등이다. 6월 중순 1%에 불과했던 지지율이 7월초 12%로 2위, 선두권에 진입했고 이번 주 워싱턴포스트 조사에선 24%, ‘압도적’ 선두주자로 뛰어올랐다.
이젠 무시할 수 없어졌다. 지루한 선거전의 원색적인 사이드쇼로 비판 없이 구경하는 것은 공화당에게도, 미디어에게도 직무유기가 되어 버렸다. “도널드 트럼프라는 현상”에 대한 분석을 통한 원인규명과 대처전략이 곳곳에서 제시되고 있다.
트럼프 지지율 급등의 원인은 크게 3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선두주자 없는 난립이다. 뛰어난 스타는 없이 고만고만한 16명이 초만원을 이룬 공화당 필드는 ‘명사’ 트럼프의 튀는 행동이 대중의 흥미를 끌기에 안성맞춤 환경이라 할 수 있다.
둘째는 보수표밭의 분노다. 트럼프의 막말은 기성정계를 불신하고 반이민정서가 팽배한 일부보수 표밭의 불만을 대변하는 보이스가 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조사에선 저학력·저소득·저연령층의 지지도가 높았다. 대선에 결정적 힘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공화경선에선 중요한 표밭이다. 거품이 꺼진 트럼프가 도태된다 해도 이들은 없어지지 않는다. 공화당 지도부가 트럼프 공격에 신중한 이유다.
셋째는 가장 결정적 원인, 미디어의 지속적인 집중보도다. 트럼프 급부상의 1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미디어다. 트럼프가 대선전에 뛰어든 후 지난 한 달 동안 공화대선 관련 전체보도의 46%가 ‘트럼프’였다. 미디어의 속성에 훤한 트럼프의 쇼맨십과 전투적 말투가 빚어내는 ‘뉴스거리’를 외면할 수 있는 미디어는 드물다.
이민자 모욕 막말 때까지는 눈치 보며 방관하던 공화당이 전쟁포로 비하논란이 터진 지난 주말을 기해 공격의 수위를 높였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강한 비판을 가했고 전국공화당위원회도 트럼프의 막말은 “우리당에도, 우리나라에도 설 자리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디어도 트럼프에 대한 보도관점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동안 군소후보로 간주해 화제성에 맞췄던 시각을 이젠 선두권 후보에 대한 본격적 검증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대선후보가 갖춰야할 기본자질에서부터 보수표밭이 지지하기 힘든 그의 정책입장과 과거전력이 하나하나 도마에 오를 것이다 : 오바마케어를 반대하면서 자신은 전국민 의료보험제를 촉구했고, 전에는 낙태권을 지지했다가 지금은 반대론자로 자처하는가 하면 선거자금 기부도 지금까지 공화당보다는 민주당 후보에게 더 많이 해왔다…
상당수 선거분석가들은 지난주를 트럼프 상승세의 전환점으로 꼽는다. 앞으로 검증의 잣대가 날카로워지면서 트럼프의 거품이 꺼질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보수의 보이스라면 보수주의는 트럼프와 함께 자폭하게 될 것”이라는 월스트릿저널의 경고를 비롯해 더 이상 정치환경을 오염시키지 말고 “대선에서 하차하라” “공화당에서 축출하라”는 촉구도 줄을 잇고 있다.
정작 트럼프 본인은 여전히 기고만장이다. 막말의 수위도 낮추지 않는다. 아직은 여론조사도 그의 하락세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선두권에서 밀려난다 해도 하차는 하지 않을 기세다. 오히려 ‘왕따’에 뛰쳐나가 제3당 후보로 도전할까 공화당 지도부가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스스로 무너질 때까지 두 손 놓고 기다리기엔 공화당의 입장은 다급하다. 이미 당이 입은 상해가 적지 않다. 멕시코 이민의 남편인 젭 부시와 쿠바 이민의 아들인 마르코 루비오가 대미지 컨트롤에 나서긴 했지만 히스패닉 표밭에 공들여온 공화당의 노력은 상당부분 날아가 버렸다. 당장 2주 앞으로 다가온 대선후보 공개토론도 발등의 불이다. 상위권 10명만 참여하는데 자칫 ‘선두주자’ 트럼프가 휘젓는 서커스가 되기 십상이다.
전쟁포로 비하로 비난여론이 높아진 지금이 공화당에겐 트럼프를 길들일 수 있는 황금의 기회다. 공격이 다양화되면 깊은 지지층이나 당내 기반이 없는 트럼프는 고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공화당은 아직 마땅한 대책을 찾아내지 못했다.
“트럼프를 어찌해야 할까” - 원색적인 막말 퍼레이드에 열광하는 보수의 표밭에서, 트럼프의 여름은 화려하게 펼쳐지고 공화당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