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은 1893년 12월26일 후난성 샹탄에서 부농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셋째였지만 두 형이 일찍 죽는 바람에 사실상 장남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공부에 뜻이 있었으나 농사일이나 하라는 아버지의 강요로 13살 때부터 학교를 그만 두고 농사일을 배웠다.
그러나 그런 그도 부모가 정한 여자와 강제로 결혼할 위기에 처하자 집을 뛰쳐나와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공부해 교사가 되었고 1921년 8월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창립대회에 참석, 창립 멤버가 됐다. 1945년 일본이 망하고 공산당과 국민당의 싸움이 재연되면서 처음에는 압도적 병력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국민당이 우세했으나 ‘농민들에게 식량을 받은 다음에는 돈을 주라’ ‘농가 주위에서는 똥을 누지 마라’ ‘농민의 아내나 딸을 강간하면 죽는다’ 등등 간단명료한 모택동의 지침으로 농민의 마음을 산 공산당은 부패와 무능에 찌든 국민당을 물리치고 중국 대륙의 패자가 된다.
그러나 그 후 그의 행적은 재난의 연속이었다. 일거에 중국을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겠다며 시작한 50년대의 대약진 운동은 수천만 명을 굶겨 죽였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청소년들을 부추겨 일으킨 문화 대혁명은 지식인 학살과 문화유산 파괴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그에 의해 축출돼 가까스로 명을 부지하다 모택동 사후 극적으로 복권된 등소평은 “과도 있지만 공이 더 크다”며 그를 국부로 인정했다.
이승만은 1875년 3월26일 황해도 평산군에서 왕족의 후예로 태어났다. 그도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두 형이 일찍 죽는 바람에 사실상 장남 노릇을 했고 아버지는 한 때 부자였으나 가산을 탕진해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럼에도 향학열에 불탔던 그는 스무 살 때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 학당에 입학해 서양문물에 대해 배웠고 조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1898년 군주제를 폐지하려 했다는 혐의로 독립협회 간부들이 체포되자 철야 농성을 벌여 이들을 석방시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다음 해에는 고종 폐위 음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곤장 100대와 종신형에 처해진다. 훗날 1905년 을사보호 조약 체결 소식을 듣고 자결한 민영환 등의 적극적인 주청이 없었더라면 그는 감옥에서 옥사했을지도 모른다.
1904년 고종의 특사로 풀려난 이승만은 미국 쪽 인사와 친분이 두텁고 영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죄수 신분에서 대한제국의 독립을 지켜줄 것을 호소하는 특사 자격으로 미국에 건너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난다. 1905년 을사 보호 조약을 통해 일본이 대한 제국을 사실상 접수하자 그는 미국에 남아 공부를 더 하기로 결심하고 조지 워싱턴대와 하버드를 거쳐 프린스턴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 후 1945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져 망할 때까지 그는 40년 가까운 세월을 미국에 살며 한국 독립 운동을 펼친다. 그는 독선적인 언행으로 지탄을 받기도 했지만 독립운동가로서의 그의 지도자적 위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총리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그가 뽑힌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45년 귀국한 그는 친일파 청산에 실패했고 말로만 북진통일 외치며 국방을 소홀히 해 북한의 남침을 허용했으며 대통령 3선을 허용한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고 진보당의 조봉암을 사법 살해하는 잘못을 범했으며 1960년 3.15 부정선거로 영구집권을 꾀하다 4.19 의거로 쫓겨났다..
그러나 이 같은 과오에도 불구하고 독립 당시 세계 최빈국이던 대한민국이 지금 세계 10위권에 드는 경제강국과 민주국가가 된 것은 그의 공이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당시 유행이던 사회주의를 배척하고 자유 시장 경제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스스로 훼손하기는 했지만 의회 민주주의의 토대를 놓았다. 그리고 미국과의 군사 동맹으로 호시탐탐 재침을 노리는 북한의 위협을 막고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런 그의 공은 지금까지 과에 가려 아무런 빛을 보지 못했다.
지난 19일은 그가 하와이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지 꼭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보다 수만 배 더 큰 잘못을 저지른 모택동이 아직도 중국의 국부로 추앙 받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이승만에 대한 공정한 평가도 필요한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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