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런 이야기를 써도 좋으리라. 가령 춤 이야기 같은거 말이다.
웬일인지 진지한 글이나 칼럼에서는 도무지 춤에 관해 쓰는 일이 없으니 조금은 머쓱하기도 한데, 솔직한 고백으로 춤은 나의 오랜 로망 같은 것이었다. 어느덧 그 로망을 실현시킬 수 없는 나이가 됐다는게 아쉽긴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나마 눈을 버리지 않게 돼 다행이라고 농담 삼아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요즘 이것저것 댄스 공연을 보러 다니면서 춤만큼 사람을 직접적으로 감동시키는 예술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공연장에서 여간해선 박수를 많이 치지 않는 내가 열정적으로 박수를 보내며 환호하는 공연은 언제나 춤이란 것도 깨닫게 됐다.
춤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솔직한 예술이라고 진지하게 느끼는 중이다. 그 솔직성과 절실함은 아무런 도구 없이 오로지 자기 몸 하나를 사용하여 온몸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데서 나온다. 거기에는 거짓이나 꾸밈이 있을 수 없어서, 보는 사람에게 깊은 감흥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과 그토록 아름다운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언제나 경탄과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훈련과 절제와 연습이 뒤따랐을 것인가 하는 점에 이르러서는 경외심마저 갖게 된다.
댄서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매일 온몸이 아픈 고통은 삶의 일부 같은 것이다. 만일 다음날 몸이 덜 아프면 어제 연습이 부족했구나 하고 자책하게 되고, 날씨라도 찌뿌드한 날이면 모두 사우나에서 만날 정도로 온몸이 성한 데가 없다고 한다. 가끔씩 부상으로 몇달 혹은 몇년씩 쉬게 되는데, 그땐 너무 괴로워서 우울증에 빠지는 일이 많다고도 한다.
왜 그러고도 춤을 추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정말 우문이 될 것이다. 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춤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예술이 주는 열정과는 또 다른 것으로서, 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로(아마 죽었다 깨나도) 이해하지 못할 열망이다. 자기 한 몸 전체를 온전히 부려서 표현하는 그 열정, 온몸으로 느끼는 그 환희는 어떤 다른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 방송에서 ‘댄싱 나인’이란 춤 오디션 프로그램을 넋을 놓고 본 적이 있다. 3개 시즌을 계속 관람하면서 한국의 젊은 아이들이 그렇게나 춤을 잘 춘다는 사실에 우선 놀랐고, 춤의 장르가 그렇게나 많다는데 또한 놀랐으며, 진짜 춤꾼들은 장르를 초월하여 몸을 자유롭게 부릴 줄 안다는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가장 마음을 뒤흔들었던건 수많은 아이들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하는 말이 “춤이 너무 좋아요. 평생 춤만 추고 싶어요. 춤추다 죽고 싶어요”라는 것이었다. 춤에는 중독성이 있는거 같다.
인류가 가장 먼저 창조한 예술은 춤이 아니었을까? 언어가 없던 원시인들이 가장 먼저 흥에 겨워, 혹은 끼의 발동으로 내질렀을 행동은 춤이었을 것이다. 발레, 현대무용, 힙합, 재즈, 라틴, 한국무용에 이르는 모든 장르의 춤에서 나는 인간 본연의 원시성과 원초성을 발견한다.
다른 예술은 모두 창작을 위해 도구를 사용한다. 음악가는 악기나 목소리나 악보를, 문학가는 펜과 글과 책을, 미술가는 붓과 물감과 캔버스를 사용하여 예술을 창조한다. 연극과 영화는 종합예술이니 더 많은 미디엄이 필요한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춤만은 오로지 몸이 도구이니, 호모 파베르(도구의 인간) 이전부터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육체의 언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백댄서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본다. 평생 신문쟁이 입에서 나옴직한 고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왜 하필 백댄서냐고? 아주 잘 출 자신도 없고, 주역무용수가 되고픈 욕심이나 스트레스도 질색이니, 눈에 잘 안 띄면서 신나게 춤만 추기에는 백댄서가 딱이라는 생각에서다.
평생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한번도 실현해보지 못한 채 이미 춤추러 나가기에는 퍽 늦은 나이가 된 사람으로서, 그 동경과 열망과 안타까움을 누르며 춤에 관한 이런 저런 생각을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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