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에 개가 부쩍 많아졌다. 처음 입주했던 15년 전엔 ‘노 펫(No Pet)’ 아파트여서 개를 전혀 볼 수 없었다. 주로 푸들과 치와와 같은 강아지 급이지만 핏불도, 허스키도 있고 종자를 알 수 없는 송아지만한 놈도 있다. 좁은 아파트 방에서 용케도 기른다. 아침저녁 잔디밭에서 주인의 호위아래 용변 보는 개들을 수두룩하게 본다.
등산로도 견공들의 운동장이 됐다. 주인 닮은 뚱보 개들이 씩씩거리며 오른다. 지난 주말 필척 산에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온 한 여인은 개가 낑낑대자 하나씩 번갈아 품에 안고 올랐다. 그녀의 남편은 베이비시트 배낭에 아기를 메고 오르고 있었다. 아기와 개가 동격이다. 미국이 인류의 지상낙원인 시대는 지났는지 몰라도 개들에겐 여전히 지상천국이다.
미국인들은 7,000만~8,000만 마리의 개와 7,400만~9.600만 마리의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기른다. 전체 가구의 37~47%가 개를 기르고, 30~37%가 고양이를 기른다. 해마다 약 270만 마리의 애완동물이 안락사 한다. 그 중 120만 마리가 개다. 늙어 죽을 때까지 주인 곁에서 산다. 미국의 애완동물이 ‘반려동물(companion animals)’로 승격한 건 오래 전이다.
지난 6일 인기 만담가이며 영화배우이고 감독이고 제작자인 릭키 저베이즈가 트위터에 한국을 작심하고 ‘까는’ 글을 올렸다. ‘Malbok(말복)’에 개고기 축제를 벌이는 한국인들은 ‘얼간이(coots)’라며 자기 팬들에게 이를 중단하도록 촉구하는 청원서에 서명하라고 촉구했다. 저베이즈가 뭘 잘못 알았다. 그 개고기 축제는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 지난 달 열렸다.
인기가수이자 역시 배우 겸 감독인 바브라 스트라이잰드는 제대로 알았다. 그녀는 지난 2일 성명을 발표하고 중국의 야만적인 연례 개고기 축제를 규탄하는 국제 동물보호협회의 캠페인에 기꺼이 동참한다며 “개는 태고 때 가축화된 뒤 인류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돼왔다.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개를 잡아먹는 건 용납 못할 망발”이라고 주장했다.
문제의 개고기 축제는 지난 2009년부터 중국 서남부의 율린 시에서 매년 하지를 전후해 열흘간 열린다. 지난 6월22일 끝난 올해 축제에도 전국에서 몰려온 호사가들의 ‘몸보신’을 위해 1만여 마리의 개가 도살됐다. 축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국내외 동물보호단체의 압력도 거세진다. 올핸 축제를 중단하도록 요구하는 인터넷 캠페인에 400여만 명이 서명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중국에서 해마다 개 1,000만 마리와 고양이 400만 마리가 보신탕이 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소나 돼지와 달리 개는 정규 도축장이 없어 대부분 잔혹하게 도살되며 몽둥이에 맞아죽거나 불에 그을리어 죽기까지 한다고 이들은 개탄한다. 도살과정이 비인간적일뿐 아니라 개고기의 처리와 유통과정이 지극히 비위생적이라는 지적도 따라 붙는다.
하지만 보신탕 광팬들의 반발도 만만찮다. 개와 동거하는 미국인의 시각으로 동양의 식문화를 비판하지 말란다. 보신탕 개는 반려동물 개가 아니며 식용으로 별도 사육돼 소나 돼지와 다를바 없는 가축이라고 반박한다. 남의 밥상에 참견 말고 추수감사절에 수백만 마리씩 도살되는 칠면조와 비좁은 철장에 갇혀 알 낳는 기계가 된 닭에나 신경 쓰라고 응수한다.
중국인이나 한국인만 개고기를 먹는 건 아니다. 베트남, 인도, 호주의 일부 주민들도 먹고 가나, 나이지리아, 리베리아 등 일부 아프리카 지역 사람들도 먹는다. 캐나다에서도 위생적으로 도살된 개고기 판매는 합법이다. 샤이엔 등 일부 인디언 원주민부족도 먹는다. 사실은 미국에서도 20세기 초 육류 품귀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개고기가 대용으로 유통됐었다.
나는 시골에서 매년 여름 보신탕을 먹고 자랐다. 성인이 돼서도 직장 동료들과 가끔 보신탕집을 찾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미국에서 30년 넘게 살다보니 개고기 맛을 잃었다. 한국과 중국에서도 ‘반려동물’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 머지않아 그들도 개고기 구미를 잃을 터이다. 보신탕을 당장 끊으라고 보채는 동물보호단체들이 좀 유난스럽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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