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가, 크리스 크리스티가 우리의 차기 대통령이 될 뻔했던 때를?” - 지난주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의 2016년 공화당대선 출마선언을 전하는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난 대선 캠페인이 본격화된 4년 전 이맘때 그는 공화당의 ‘꿈의 후보’였다. 민주당 강세의 대형주 뉴저지에서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확보한 중도보수의 박력있는 40대 젊은 주지사는 위기에 직면한 ‘공화당’ 브랜드를 되살릴 희망으로 떠올랐다. 공화당의 큰손 억만장자 코크형제는 “우리의 영웅, 마음에 꼭 드는 후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기부가들은 다투어 미트 롬니 대신 그에게 출마를 간청했다.
대선출마를 고사한 그는 민주당 주의회와의 타협정치로 성공적인 주정을 펼쳐갔고 2013년 60%라는 압도적 지지로 주지사 재선에 성공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공화당 차기 대선의 가장 강력한 주자로 꼽혔다. “사회이슈엔 합리적으로 재정이슈엔 보수적으로 접근하며, 소수계와 무소속을 끌어안을 빅 텐트 정당의 강력한 리더”로 기부가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유일한 예비후보였다. 2012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했고 2013년 전국공화당주지사협의회 의장도 역임했다.
승승장구하던 그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좀 이상한 스캔들이 터지면서였다. 2013년 9월 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조지워싱턴 브릿지의 3개 차선 중 2개가 폐쇄되면서 극심한 교통체증이 발생했다. 뉴욕에서 뉴저지의 포트리 시로 이어지는 이 다리는 원래도 교통체증이 심한 곳이어서 사전통보 없이 내려진 폐쇄조치의 후유증은 상당했다. 학생과 직장인들의 지각이 속출했고 구급차가 늦어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그런데 이 끔찍한 교통재난에 대한 조사결과 밝혀진 원인은 ‘정치보복’이었다. 크리스티의 주지사 재선을 지지하지 않은 포트리의 시장을 혼내주기 위해 크리스티의 참모들이 지시한 일이었다. 조사결과 주지사는 연루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으나 2명의 참모가 기소되었고 크리스티의 지지도는 하락을 거듭했다. 이후 ‘브릿지게이트’는 그의 정치행보 곳곳마다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어왔다.
설상가상으로 뉴저지의 경제도 부진을 거듭했다. 그가 약속했던 경제회복은 일자리 감소와 적자예산, 신용등급 하락으로 빛을 잃었고 개선을 시도했던 공무원 연금제도는 지불유예와 소송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경제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추락한 주지사의 지지도는 30%대로 내려앉았다.
2015년 여름,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한 크리스티(52)는 더 이상 공화당의 기대주가 아니다. 정치 여건도 악화되었다. 대선필드는 초만원, 그는 14번째 주자다. 자금 막강하고 웅변 잘하고 보수 핵심표밭이 열광하는 후보들이 이미 선두권에 잔뜩 포진해 있다. 그러나 공화 필드엔 아직 압도적 선두주자가 없다. 크리스티의 현재 지지도는 3.3%,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1위인 젭 부시와의 차이는 13포인트에 불과하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이 바닥에서 출발한 크리스티에겐 올라갈 길 밖에는 없고 첫 경선까지의 6개월은 긴 기간이다.
스캔들의 상처, 리버럴 언론들의 무자비한 비판, 중도성향을 싫어하는 핵심표밭의 외면, 뉴저지 민주당의 발목잡기(대선에 치중하는 파트타임 주지사는 싫다면서 사임요구 법안을 추진 중이다)…
그의 대선 여정을 힘들게 하는 약점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강점도 있다.
“있는 그대로 말한다” - 그의 캠페인 슬로건이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밝히겠다는 다짐이다. 자신과 의견이 달라 화내는 유권자는 있어도 “도대체 저 사람의 속셈을 알 수 없네”라는 유권자는 없을 것이라고 그는 특유의 솔직함을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웠다. 단호한 결정력을 갖춘 카리스마와 뛰어난 타협능력은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며 이런 점에서 그를 따라갈 정치가가 많지 않다는 것은 뉴욕타임스도 인정했다. “크리스티는 출마도 해서는 안된다”며 사설을 통해 가차 없이 내려친 진보신문이다.
자신의 개성을 최대의 무기로 삼고 맨손으로 바닥부터 시작하는 크리스티가 운명을 건 곳은 뉴햄프셔 주다. 내년 2월1일의 아이오와 코커스에 이어 2월9일에 프라이머리를 실시하는 공화당 두 번째 경선이다. 보수적인 아이오와 주는 아예 포기한 중도성향의 크리스티가 오래 전부터 공들여온, 정치에 관심 많고, 무소속 유권자가 좌우하는 표밭이다. 지난주에도 출마발표를 한 당일에 곧장 뉴햄프셔로 날아가 닷새 동안 13개 행사에 참여하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그의 캠페인 핵심은 타운홀 미팅이다. 이미 금년 들어 뉴햄프셔에서 12번이나 개최하며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세금과 사회복지 등 주요한 민생정책에 정통하고 이민과 동성결혼, 기후변화와 외교정책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의견을 가감없이 진지하게 털어놓는 그의 소통능력은 유권자와의 직접대화가 가능한 타운홀에서 빛을 발한다. 많은 참석자들이 “크리스티가 좋아졌다”고 말한다.
뉴햄프셔 예비선거는 그가 재기할 수 있는 도약대다. 여기에서 승리한다면 그의 캠페인은 동력을 얻으면서 공화경선 전체의 다이내믹이 바뀔 수도 있다. 하위권의 언더독이지만 크리스티의 저력을 아직은 과소평가하지 말아야할 이유다. 당장 급한 것은 8월6일의 1차 TV공개토론이다. 지지율 톱10 후보만 참석할 수 있다. 여기서 탈락당하면 굴욕이다. 그러나 참석하여 행정경험과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파이터’의 면모를 과시할 수 있다면 그의 재기는 확실한 모멘텀을 얻을 수 있다.
7월13일엔 스캇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가, 7월21일엔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가 잇달아 출마선언을 할 예정이다. 7명의 전현직 주지사를 포함한 16명 후보들의 격전 - 여름이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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