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과는 다른 결과였다. 대다수가 근소할 것이란 예측을 깨고 지난 주말 그리스인들은 61대 39로 유럽이 그리스 구제 금융의 대가로 요구한 협상안을 거부했다.
따지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그리스인들은 지난 5년간 유럽 채권단이 요구한 긴축 정책 때문에 GDP가 25%나 줄고 노동자의 26%가 일자리를 잃었으며 임금은 38%가 깎였다. 거기다 집권당의 총리부터 재무장관까지 새 협상안을 거부하라는 캠페인을 펼쳤다. 그리스인들이 앞으로 더 고통을 가져올 것이 뻔한 긴축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다면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잘못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투표 결과가 그리스인들이 진심으로 유럽과 유로화와 결별을 원했다기보다는 유럽연합이 보다 그리스에게 유리한 협상안을 다시 가져오라는 전략적 선택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도 결과가 나오자마자 유럽 측에 보다 나은 협상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한 유럽 지도자들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일방적으로 그리스에게 혜택을 줄 경우 그리스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등 여러 나라들이 같은 대우를 해달라고 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방만한 경영으로 국가 부도 일보 직전까지 몰린 이들 나라들의 재정을 개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지난 달 말 빚을 갚지 못해 채무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진 그리스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이유는 분명히 나와 있다. 이렇다 할 경쟁력이 있는 산업도 없이 조상이 남겨준 문화 유적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 세금을 제대로 내는 사람은 거의 없으면서 독일 수준의 너그러운 복지 정책으로 나라 살림을 거덜 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복지 혜택이 많은 게 아니라 세금을 안내서 그렇게 됐다고 우기지만 이는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수입이 없다면 지출을 줄이는 게 상식이건만 포퓰리즘에 중독된 그리스 정치인과 국민들은 모자란 돈은 빚을 내 충당하는 방식으로 오랫동안 흥청망청 살아왔다. 그 결과가 오늘의 국가 부도 사태다.
그리스 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치프라스가 이끄는 현 집권당이자 극좌 정당인 시리자가 그리스를 구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얼마 전까지 마흔 살 난 실업자이자 전직 학생 운동 지도자였던 치프라스를 비롯 현 내각에는 한 사람을 빼고는 국정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전무하다. 그나마 그 한 사람마저 스탈린주의를 신봉하는 공산당 출신이다.
치프라스는 지난 총선에서 자신이 당선되면 긴축 재정 없이 임금을 올리고 복지를 늘려 그리스 인들을 잘 살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말로 무명 정치인에서 일약 총리로 뛰어 오른 인물이다. 물론 이런 마술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는 없다.
이 내각의 교육부 장관은 교육적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은 “비뚤어진 야심”이라며 대학 입학 시험을 폐지하려 하고 있고 재무장관은 지금까지 그리스를 도와준 유럽 각국이 실은 그리스를 “재정적으로 고문”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이끄는 정부가 참 잘도 굴러 가겠다.
그리스가 빚을 갚지 않고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 그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란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리스 경제 규모는 유로존의 1.8%에 불과하며 독일이 그리스에 수출하는 물자의 규모는 독일 GDP의 0.2% 정도다. 유로존 국가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5,000억 유로 규모의 비상금도 준비해 두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나 포르투갈 같은 나라들이 연쇄 부도를 일으키고 이것이 세계 투자가들의 심리를 위축시킬 경우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 위험과 고통은 불가피하지만 개혁 없이 그리스를 추가 지원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다름없다. 조만간 다시 손을 벌릴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비극이란 문학 장르를 발명한 것은 그리스인들이다. 비극의 주인공들이 불행한 결말을 맺는 것은 대부분 성격상 결함 때문이다. 지금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잘못으로 벌어진 사태를 남 탓으로 돌리고 남이 자기를 돕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중대한 성격적 결함을 보이고 있다. 그리스인들이 제 정신을 되찾기 전까지 그리스의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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