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외연도]
■ 해무에 가려 있던 작은 섬 고개를 들다
충청남도 서해안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섬. 날 좋고 바람 잔잔한 새벽녘이면 중국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한다는 섬. 뿌연 바다안개가 섬 주위를 감쌀 때가 많아 연기에 휩싸인 듯하다고 해서 이름 붙은 섬.
외연도(外煙島)로 간다.
통통배 타고 가던 아련한 옛 추억을 그리워하며 쾌속선 웨스트 프론티어호에 몸을 싣고 창가에 앉아 스치는 바다 풍경을 본다. 원산도와 삽시도 옆을 지나 호도에 이른 것은 대천항을 떠난지 약 1시간 뒤. 호도에서 녹도는 지척이라 10여 분만에 닿는다. 둘 다 도중에 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만큼 아름다운 섬이다.
녹도를 뒤로 하니 망망대해. 파도가 거칠어진다. 바이킹 타듯 배가 출렁이더니 느닷없이 하늘이 눈앞으로 다가선다. 그래, 지금 나는 배도 타고비행기도 타는 행운을 맛보는 거야.
승객들은 몸의 균형을 잡으려 의자를 부여잡은 채 비틀거리며 뒷자리로 옮겨 앉는다. 이럴 때는 뒤쪽이 한결낫다.
해무(海霧)에 가려 있던 두 봉우리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올린다. 주변에 흩어진 작은 새끼 섬들도 말없이 반긴다. 외연도에 다다른 것이다. 10년 전에는 파도가 거칠어도 대천항에서 1시간40분이면 충분했는데 이번에는 2시간10분 넘게 걸렸다. 아마 배가 나이를 먹다 보니 힘이 많이 달린 탓이리라.
외연도는 넓이 2.18㎢의 작은 섬이지만 크기에 비해 비교적 많은 500여 주민이 산다. 한때는 서해 어업 전진기지로 해마다 파시가 열리기도 했으나 지금은 어획량이 예전 같지 않다. 밤바다를 환하게 밝혀 보령 8경으로 꼽혔던 외연도 어화(漁火)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해안과 산악지대에 절경이 즐비해 섬 여행의 진수를 맛보기에 그만이다. 서너 시간이면 외연도의 비경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다.
■ 탁 트인 바다를 호위병 삼아 즐기는 섬 산행
외연도 초등학교 옆 당산으로 오르면 하늘을 가린 빽빽한 수풀이 우거져 있다. 천연기념물 136호인 외연도 상록수림이다. 사시사철, 심지어 한겨울에도 산새 소리에 귀가 따가울 정도이며 강원도 깊은 산 속에 들어온듯한 착각마저 든다.
넓이 3㏊에 이르는 상록수림에는 동백, 후박, 붉가시나무, 둔나무, 식나무, 팽나무, 상수리나무, 찰피나무, 보리밥나무 등 다양한 상록 활엽수와낙엽 활엽수가 자란다. 뿌리는 제각각이지만 중간에서 가지가 이어져 문처럼 보이는 동백나무도 있었다. 남녀가 함께 이 나무 아래를 지나면 사랑을 이룬다 해서 사랑나무라고도 불렸는데, 몇 해 전 태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수풀 안에는 사당이 있다. 기원 전200년 무렵 제나라가 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서자 500여군사와 함께 외연도로 온 제나라 전횡 장군을 추모하는 사당이다. 외연도에서 정착하던 전횡 장군은 한 고조가 불렀으나 한나라 신하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결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충정을 기려 사당을 세우고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풍어제와 더불어 추모제를 지낸다.
초등학교 앞으로 되돌아 나와 봉화산으로 오른다. 외연도 최고봉인 봉화산은 해발 279미터로 그다지 높지 않지만 바다에서 바로 솟구친 까닭에 제법 가파르다. 그렇다고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불과 30여분만 땀 흘리면 능선에 올라서서 탁 트인 바다를 호위병 삼아 산책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정상에서는 수풀이 시야를 가려 별다른 전망을 기대할 수 없지만 정상 직전의 능선에서 장쾌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 숨 막힐 듯 아름다운 고라금 해넘이
동으로는 녹도와 호도가 아스라하고 동남쪽으로는 수수시루떡 모양의 삼형제 섬인 수도, 서남쪽에서 서북쪽으로 걸쳐서는 무마도, 석도, 당산도, 오도, 횡견도, 황도, 대청도, 중청도 등 외연열도에 속한 무인도들이 점점이 떠 있다. 남서쪽으로는 오도 너머 저 멀리로 전북 군산에 속한 어청도가 손짓하고 정북과 정남 방향은 거칠 것 없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가슴이 다 시원하다.
봉화산에서 북쪽 해안가로 내려가면 노랑배 전망대에 닿는다. 정면으로는 고래를 닮아 고래바위라고도 불리는 관장도가 떠 있고 오른쪽으로는 노란 뱃머리를 연상시키는 해안 절벽인 노랑배가 들어온다. 노랑배 위쪽 언덕에서 풀을 뜯고 있는 흑염소 무리들도 정겹다.
노랑배 전망대에서 명금으로 가는길에는 상투를 튼 머리 모양의 상투바위와 한 쌍의 매가 날개를 웅크리고 마주앉은 듯한 매바위가 운치를 돋우고 그 너머로는 파란 바위들로 이루어진 대청도와 중청도가 손짓한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몽돌들이 금처럼 보인다는 명금은 아늑한 운치가 돋보이는 해변이다. 명금에서 다양한 빛깔의 몽돌로 이루어진 돌삭금과 볏단을 쌓은 것 같은 누적금을 거쳐 고라금으로 내려선다.
자잘한 조약돌과 집채만 한 바위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고라금 앞으로는 대청도와 중청도가 한눈에 펼쳐져 그윽한 정취를 자아낸다. 더욱이 고라금은 외연도에서 첫손 꼽히는 해넘이의 명소여서 하루 일정을 뜻 깊게 마무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일렁이는 파도와 갯바위, 대청도를 배경 삼아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석양이 숨 막힐 듯 아름답다.
# 여행 메모
* 가는 길
대천 나들목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벗어난 뒤에 36번 국도를 타고 대천항으로 온다.
대중교통은 대천역이나 보령종합터미널에서 대천항으로 가는 시내버스 수시 운행. 대천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외연도로 가는 쾌속선 하루 1~2회 운항. 2시간 남짓 소요. 운항시간 문의 041-934-8772~4(신한해운).
<글·사진 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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