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워싱턴에서는 미국의 미래를 좌우할 두 개의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다. 하나는 연방 의회가 빈사상태에 빠졌던 환태평양 파트너십 협정(TPP)을 살려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연방 대법원이 동성애자의 결혼권을 헌법이 보장한 권리로 인정한 것이다.
연방 의회는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에게 무역 진흥권(TPA)을 주는 법안과 태평양 연안 국가와의 무역장벽 철폐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재교육을 돕는 법안(TAA)을 통과시켰다. TPA를 얻어 체결된 협정에 대해 의회는 찬반만 결정할 수 있을 뿐 수정안을 달 수 없다. 반면 이것 없이 체결된 협정은 끝없는 수정 논의가 가능해 사실상 의회의 승인을 얻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만약 민주당 하원 지도부의 반란으로 대통령에게 TPA를 주는 법안이 부결로 끝났더라면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하는 미국, 일본, 캐나다 등 환태평양 12개 국가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 미국 경제를 성장시키고 태평양 전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려던 오바마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집권 6년간 그와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던 공화당 지도부가 이번에 그의 구원 투수로 나서 사망일보 직전까지 갔던 TPP는 기사회생하게 됐다.
물론 대통령이 무역 진흥권을 얻었다 해 의회가 TPP를 승인해 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미국이 이 협정을 체결해 의회에 승인 요청을 했을 때 부결시킬 길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무역 진흥권을 얻어 체결한 협정을 의회가 부결시킨 전례가 별로 없다는 점을 들어 이번에도 승인해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협정 반대자들은 관세 장벽이 사라지면 미국인들 일자리만 사라질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관세 장벽의 보호 속에 안주하고 있던 경쟁력 없는 분야의 일자리는 줄겠지만 상대방 나라의 무역 장벽에 박혀 뻗어나가지 못했던 분야는 일자리가 늘 것이다. 미국이 독보적인 우위에 있는 할리웃과 하이텍 분야 기업들이 이 협정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세기 초 독일은 프러시아라는 나라 하나에만 67개의 관세 장벽이 있었다. 동네 하나를 지나갈 때마다 검사를 받고 관세를 물어야 하는 상황에서 무역이 발달할 수 없었고 무역이 안 되는 상황에서 산업이 발전할 수 없었다. 1833년 관세동맹이 체결돼 이 장벽이 사라지고 난 후에야 독일은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길게 보면 인류의 역사는 무역 장벽 철폐의 역사다. 마을과 마을, 국가와 국가 사이에 있던 벽이 사라지고 이제는 대륙과 대륙 사이의 벽이 무너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제의 효율성은 높아지고 규모도 커진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진보다.
연방 대법원이 내린 동성애자의 결혼권 인정 또한 명백히 진보적인 결정이다. 기독교가 서구의 지도적 이념으로 자리잡은 지난 2,000년 동안 동성애자는 ‘자연에 반한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박해와 차별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들을 동성애자로 만든 것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다. 태어날 때부터 일정 비율의 인간은 이성이 아니라 동성에 끌리는 유전자를 갖고 세상에 나온다. 이들에게 동성애는 부자연스럽다고 말하는 것은 동성애자가 이성애자 보고 부자연스럽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동성 결혼을 허용할 경우 이성간의 결혼이 위협받는다는 주장 또한 설득력이 없다. 미국 내 이성간 결혼의 절반은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기 이전부터 이미 깨져왔다. 동성들이 서로를 부부로 평생 존중하며 살겠다는 서약을 막는 것이 이성 결혼 유지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다.
미국 역사상 동성 결혼에 대한 태도만큼 급속한 변화를 보인 현상도 드물다. 오바마 집권 초 30%에도 못 미치던 동성 결혼 지지 비율이 이제는 60%가 넘고 있다. 이번 법원 판결을 환영한 오바마 자신도 집권 초에는 이를 지지하지 않았다.
‘남을 해치지 않는 한 국가는 개인간의 사생활에 간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근대 이후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이념이다. 남을 해치지 않는 동성애자 간의 결혼이나 외국인과의 상행위에 국가가 개입해 막을 권리는 없다. 이번 연방 의회와 대법원의 결정은 미국이 더디지만 자유와 평등의 확대를 향해 한발자국씩 앞으로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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