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이 정권을 장악한 소비에트 연방 고스플란의 사무실에서 통계실장을 뽑는 면접이 열리고 있었다. 면접관들이 첫 번째 후보자에게 질문을 했다. “동지, 2+2의 답이 무엇이요?” 후보가 자신 있게 대답한다. 5입니다.
면접관 중 가장 높은 간부가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동지, 혁명적 열정은 높이 사오만, 이 자리는 셈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오.
두 번째 후보는 3이라고 답변했다. 가장 나이어린 면접관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저놈을 당장 체포하라! 감히 혁명의 성과를 깎아 내리다니! 후보는 경비병에게 끌려 나갔다.
같은 질문을 받은 세 번째 후보는, 물론 4입니다 라고 답했다. 답변을 듣고 있던 면접관중 가장 학자 티가 나는 간부가 형식 논리에 집착하는 부르주아적 과학의 한계와 문제점을 언급하며 따끔하게 훈계했다.
다음 네 번째 후보가 대답했다. 몇이길 원하십니까? 면접관들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흘렀다. 당신이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적임자오! 고스플란은 소비에트 연방 경제를 관장하는 최고기관이지만 감시와 견제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일당체제의 통계는 믿을 수 없다고 비꼬는 조크다.
국가나 기업은 활동결과를 집계해 매 분기마다 숫자로 발표한다. 특히 기업이 작성한 재무지표는 대출은행이나 투자자들의 의사결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100%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늘 실적이 좋을 수만 없다. 예상치 못한 경쟁자의 출현이나 기타 경영환경 변화로 실적이 나빠지는 경우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투자자나 대출은행으로부터 매 분기마다 평가를 받아야 하는 CEO는 이럴 때 못난 부분을 더 예쁘게 꾸미고 싶은 분식의 유혹을 받는다. 숫자 몇 개만 바꾸면 못난이가 예쁜 공주로 변신하고 자신은 공주와 결혼한 왕자가 되므로 그 유혹을 뿌리치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01년 5월 비즈니스위크는 숫자놀음(The Numbers Game)이라는 기사에서 특정 기업들이 일반회계 원칙(GAAP)을 무시하고 자의적 회계방식을 적용해 이해 당사자들을 기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같은 해 분식회계로 투자자들을 속이다 몰락한 엔론은 위장회사를 설립하여 허위거래로 매출과 이익을 조작해 투자자들에게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통신 회사인 글로벌 클로싱과 미디어 그룹인 델피아 등 수십 개의 상장회사들도 발각된 부정회계 때문에 차례로 몰락하고 경영진은 지금도 감옥에 갇혀 있다. 이러한 대규모 부정행위가 가능했던 배경은 경영진의 막강한 권한을 무시하지 못하는 관련 직원들과 자사의 수익과 직결된 회계법인의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방지해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발의자인 샤베인스 연방 상원의원과 옥슬리 연방 하원의원의 이름을 딴 샤베인스-옥슬리 법이다. 이 법은 회계법인이 감사업무와 경영자문을 동시에 할 수 없도록 명시해 회계의 신뢰성을 높인 계기가 됐다.
자본주의 경제는 신용을 기반으로 돌아가며 대부분의 거래는 이를 근거로 이뤄진다. 신뢰가 신용을 창출하고 다시 신뢰가 커가는 선순환 과정을 거치면서 경제의 규모가 커지는 구조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신뢰가 무너지면 참여자 모두가 공멸하는 치명적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은행을 믿지 못한 고객들이 동시에 예금을 인출한다면 어떤 은행도 견디지 못하며 반대로 은행이 모든 대출을 일시에 회수해 가면 버틸 수 있는 기업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7년 금융위기의 본질도 신뢰에 작은 금이 가면서 확대된 것이다. 은행들이 속절없이 망해가는 와중에 감독 당국의 더욱 엄격한 규제는 타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언뜻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지만 국민들로부터 은행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했기 때문이었다.
FRB가 파격적으로 금리를 낮추고 양적완화를 통해 자금을 무제한적 시장에 공급하는 것도 특정 은행이나 기업을 돕기 위함이 아니라 자본주의 근간인 신용기반이 무너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처다.
기업의 재무지표는 그 회사의 상태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며 신용사회의 기초가 된다. 조작된 숫자를 기반으로 경영을 하는 것은 고장 난 계기를 보면서 비행기를 운항하는 것과 다름없다. 아무리 어려워도 결코 악마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선 안 된다. 정직한 회계는 강한 기업의 출발이며 완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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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김 / 터보에어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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