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정국면을 맞은 것인가. 기습을 당했다. 중동호흡기 증후군, 메르스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순간 대한민국은 마비됐다.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공포 바이러스와 함께. 그러기를 한 달여. 다소 완화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무방비 상태였다. 게다가 정부의 무능까지 겹쳐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져나갔다. 이 ‘바이러스란 보이지 않는 적(敵)’과의 전쟁을 통해 새삼 드러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실체가 없다. 무형이다. 그런데 유령처럼 다가와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생물학적 바이러스뿐이 아니다. 불신 바이러스, 공포 바이러스, 이념 바이러스도 날뛴다.
그 신종 바이러스들은 이성적 사고를 정지시킨다. 감성만 자극한다. 일단 감염되면 실체를 알 수 없는 ‘미친 소’ 같이 사람들은 날뛴다. 광우병이라는 반미(反美)성 바이러스가 그랬다.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raison d´?tre)는 어디에 있는가. 한동안은 ‘반공’(反共)이 정답같이 돼 있었다.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세력이 혁명공약 1호로 내세운 구호다. 그게 오랜 세월동안 한국인의 뇌리 속에 각인돼 있어서였는지.
아무튼 반공이 국시로 여겨진 나라였다. 그러니까 빨갱이로 몰렸다 하면 끝장이었다. 그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슬며시 바뀌었다. ‘친일(親日)파다’하면 역적으로 몰리는 세상으로. 일본이라면 무조건 반대다. 그게 마치 대한민국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라도 된 것이다. ‘반일(反日)이 국시인 나라라도 된 것 같다.
‘반일주의는 한국에서 도그마로, 일종의 국가의 정체성으로 굳어졌다’-한국전문가 로버트 켈리가 인터프리터지에 기고한 내용이다. 어디서 비롯된 현상인가. 그는 한국이 맞은 아주 특이한 현재의 분단 상황에서 찾았다.
남북분단 상황을 이데올로기 경쟁보다는 일종의 민족주의 정권의 정통성 경쟁으로 파악했다. 그러니까, 민주대 공산이데올로기의 경쟁이 아니고 어느 쪽이 더 순수한 민족주의 정권인가의 경쟁으로 본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민족주의는 좌파가 선점했다. 전후 해방 공간시대부터의 현상이다. 게다가 북한 체제는 외부세력으로부터의 순수 한민족 보호가 그 존재 이유(raison d´?tre)인 양 선전해 오고 있다. 허구 투성이인 김일성민족론을 주창하면서.
그 경쟁에서 남한은 수세에 몰렸다. 북한체제가 내건 민족주의, 다시 말해 민족사회주의에 대한 대응논리를 내놓지 못했다. 게다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원죄(原罪)의식에 빠져있다.
이 정황에서 뭔가 음모의 냄새가 짙게 풍겨온다. 인공 돌연변이기법을 통해 신종 바이러스를 계속 양산하는 거다. 그리고 틈만 나면 무작위로 살포하는 거다. 그 중 가장 가공할 바이러스는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해 민주적 가치를 말살시키려는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가 아닐까.
민족과 민주가 충돌한다. 이 두 가치관의 충돌에서 번번이 일패도지(一敗塗地), 날로 입지가 날로 좁혀지는 것은 민주적 가치인 것이 한국의 현실인 것처럼 보여 하는 말이다.
반일주의도 그렇다. 한국인의 정서를 교묘히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일종의 신성불가침이랄까. 그런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 ‘반일’이란 두 글자 앞에만 서면 모두가 작아지는 것이 오늘의 한국이다. 감히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심지어 대통령일지라도.
이야기가 길어진 건 다름 아니다. 한국외교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반일로 일관했다. 그러면서 친(親)중국으로 기울었다. 그 외교가 고립이란 좌초직전의 상황을 맞고 있어서다.
어디서부터 수읽기에 착오가 있었나. 반일무드의 여론을 너무 의식한 데서가 아닐까.
틀린 가상일 수도 있다. 여기서 그렇지만 그 수순을 복기하면 이런 그림이 나오는 게 아닐까. 한국인이면 누구나 마다하지 않을 반일감정을 계속 조장한다. 거기에는 교묘한 이중 장치가 숨겨져 있다 반일을 통해 반미로 이끄는 것이다. 그런 신형 바이러스를 살포한 것이다.
그 바이러스에 부지부식 간에 감염됐다. 그러면서 선동된 여론에 한동안 들떠 있었다. 세계는 한국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착각과 함께.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찾아든 것은 자각증세다. 그것도 아주 쓴….
그건 그렇고, 대한민국의 진짜 국시, 다시 말해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민주의다. 이 원칙, 다시 말해 민주주의 가치에 충실한 선린외교를 당당하게 펼쳤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 한일수교 50주년을 맞아 새삼 던져보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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