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만타는 내 손녀딸 이름이다. 이제 6월 말이면 만 16세가 된다. 미국에서는 16세 생일을 아주 특별하게 생각해서 생일이면 근사하게 파티를 열어준다. 내 딸이 16세때 우리 부부는 그애에게 빨간 혼다를 선물했다. 사만타도 지금 열심히 운전 연습을 하고 있다.
생전 처음 아이스크림 가게에 취직도 해서 얼마전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 값으로 약 이백불을 벌어왔다. 이제부터 열심히 돈을 저축해서 제 차를 사는데 보탠다는 것이다.
그애는 1999년에 서울의 이태원에서 태어났다. 우리 딸이 한국을 방문한 것도 우연이었고, 사만타 아빠인 마커스와 사랑에 빠진 것도 우연이었고, 곧 이어 사만타가 태어난 것도 다 우연이었다.
물론 필연을 동반한 우연이었을 것이다. 그애가 태어나고 처음 반짝 눈을 떴을 때 난 그애의 큰 북청색 눈에 단번에 반했다. 그처럼 아름다운 눈은 처음 보았다. 그애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애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곤 했다.
"어머! 꼭 인형같애""저 눈좀 봐! 어쩌면 저렇게 예쁘니?"그럴 때마다 동네 안경점 아저씨는 뛰어 나와서 "이 눈은 백만불짜리 눈이에요. 다들 좀 보세요"하며 수선을 떨었다.
그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16년이 지나갔다. 이젠 제 엄마보다 키도 더 크고 몸집도 더 글래머다.
유니언 스퀘어 근처 어느 근사한 호텔을 잡아놓고 파티를 한다고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애 친아버지인 마커스도 토론토에서 와서 파티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사만타는 제 양부인 스티브는 ‘대디’, 제 친아버지인 마커스는 그냥 ‘마커스’라는 이름을 부른다. 스티브와 함께 산 세월이 더 길고 정이 들어서일 것이다. 사만타는 미국 시민인 동시에 캐나다 시민이기도 하다. 캐나다는 학비가 미국의 사분의 일 정도로 싸서 아마 대학도 그쪽으로 가는 것을 지금 고려 중이다.
사만타는 늘씬한 백인 미녀이지만 지 엄마인 내 딸과는 성격이 너무 대조적이다. 어릴 때부터 영악하고 매사에 적극적이었던 딸에 비해 그애는 좀 수줍고 소극적이고 너무 착하다. 그렇던 애가 틴 에이저가 되고난 후부터는 가끔 지 엄마와 맞붙을 때가 있다. 공부도 수학이나 과학은 재미 없고, 영어나 역사 같은 과목이나 글쓰기 등을 좋아한다.
"샘은 독립심이 부족해 어떻게 살지 몰라요!"딸 아이가 그렇게 툴툴댈 때마다 나는 사만타 편을 든다.
"공부만 잘한다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행복해진다는 법은 없다. 두고봐! 사만타는 저대로 잘해낼거야!"나는 늘 아이들한테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 아이 넷도 모두 각자의 인생에서 어떤 굴곡은 거쳤지만 지금은 다 저 나름대로 잘들 살고 있다. 진짜 부자는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내 주위의 친구들은 모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 부자는 아니더라도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잘 발란스를 유지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 영육간이 모두 편안하게 사는 삶, 이것이 잘 사는 비결이 아닐까?.
나도 초등학생 때부터 산수나 과학은 질색이었다. 국어나 역사 시간, 예능 시간엔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초등학교 2학년때 ‘아버지의 무덤’이란 동요를 지어서 반 대표로 나가 낭독을 했고, 그림 그리기와 무용으로 학예회 때는 판을 쳤다. 외모는 하나도 안닮았지만 그애도 할머니의 정서를 조금은 닮은 것 같다.
"할머니도 수학은 아주 질색이었지만 지금까지 잘 살고 있으니까 너도 할머니만 닮으면 돼!" 딸은 그렇게 그애에게 말해주면서 위로를 받는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샘! 넌 정말 좋은 엄마를 가지고 있어. 난 네 엄마가 너만 했을때 많은 것을 해 주지 못했단다. 네 엄만 열두살때 부터 베이비시터를 해서 돈을 벌어왔어. 열다섯살 땐 치과 의사 보조도 했단다"그런 말을 하면 샘은 그 큰 눈에서 금방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
우리 딸의 열여섯살 생일 파티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손녀딸이 그 나이가 되서 또 특별한 생일 파티를 한다고 하니 감회가 깊지 않을 수가 없다. 인생은 어쩌면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일까. 또 십년쯤 뒤 사만타는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한때는 그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때가 우리 모두에게 있었다. 내 딸이 그랬고 내 손녀딸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엄마, 할머니가 되어 옛날을 생각하며 미소 지을 때가 있겠지. 그때 이미 우리들은 이 세상에 없고 이왕이면 좋은 추억만 그들에게 남겨주고 싶다. 열여섯살 생일이 아주 특별한 것처럼 우리가 가진 오늘을 특별한 하루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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