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째 계속되는 가뭄 속에 강제 절수령까지 내려지면서 캘리포니아의 주민들은 나름 ‘물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다.
술안주로 아몬드가 서브되면 “이거 한 알 키우는데 물이 1갤런이나 들어가는데”로 시작해 “포도 한 송이엔 24갤런, 햄버거 고기 한 덩어리엔 900갤런…”으로 이어지고, 전체 물 사용량의 80%를 쓰고 있는 농업이 이번 강제 절수령 대상에서 제외된 것에 불평하다가 급기야는 물 사용의 최우선권을 몇 대째 누리고 있는 ‘시니어 물 권리(Senior Water Rights)’ 보유자들의 특혜에 분개하는 포퓰리스트 정서가 고조된다.
지난 주, 물에 관한한 캘리포니아의 특권층인 일부 농장주들이 농업용수 자발적 절수안을 주 당국에 제출했고 주 수자원관리위원회가 이를 승인했다. 캘리포니아의 중심 수원(水源)인 새크라멘토 강과 샌호아킨 강이 만나 삼각주를 이루는 델타지역의 시니어 물 권리자들이 현재 사용량을 25% 줄일 테니 6월에서 9월까지의 농작물 생장기엔 그 이상 절수를 안 해도 된다는 보장을 해달라며 내놓은 제안이다.
제리 브라운 주지사의 25% 강제절수 행정명령이 발동된 지난 4월초, 시니어 물 권리자들에게도 권리축소를 통보하는 경고서한이 발송된 후 나온 자구책이긴 하다. 그러나 그동안 자신들의 물 권리가 신성불가침인 듯 완강하게 방어하며 소송을 위협해온 분위기여서 ‘역사적 타협’이란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골드러시 개척기에 시작되어 100년 넘게 고수해온 캘리포니아의 물 권리제도가 마침내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물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뜨거운 정치 이슈 중 하나다. 3,900만 주민에게 물을 공급하는 수자원 시스템의 규모도 엄청나다. 매년 4,000만 에이커피트의 물을 관리한다. 에이커피트는 1 에이커 면적에 1피트 높이까지 가득 찬 양을 뜻한다. 물을 둘러싸고 다양한 계층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이해가 너무 첨예하게 얽혀있어 복잡하고 불합리하고 애매모호하기로 소문난 캘리포니아 물 관련법의 개혁은 난제 중의 난제다. 갈수록 부족해지는 물의 총량에서 행여 내 몫이 줄어들까 너도나도 촉각을 세우고 있어서다.
한 세기 전에 도입된 물 권리제도도 그동안의 사회변화에 맞춰 개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1800년대 중반의 물 권리는 아주 간단했다. 먼저 가서 차지하면 되었다. 서류 작성은 추후였다. 강 유역에 토지를 소유한 농부를 비롯한 개척민에서부터, 하이킹하던 제임스 펠란 시장이 자필로 쓴 공고문을 투올럼니 강둑 참나무에 부착한 후 시에라네바다 물을 차지한 샌프란시스코에 이르기까지 초기엔 물 권리가 개인, 기업, 도시에게 선착순으로 쉽게 주어졌다. 건조한 서부의 대부분은 이처럼 땅 소유주에게 물이 소속된다는 원칙하에 개발된 것이다.
인구가 급증하면서 물의 공정한 배부와 사용을 위한 수자원 관리법이 법제화된 것은 1914년이었다. 이전 물 권리 확보자들은 법 적용에서 제외되면서 1914년을 기준으로 물 사용 우선권은 ‘시니어 물 권리’와 ‘주니어 물 권리’로 나뉘게 된다.
시니어와 주니어의 차이는 극심한 가뭄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2년째 물 공급 중단조치에 처해있는 센트럴밸리의 한 농부가 그 예다. 주니어 물 권리자인 그는 시니어 물 권리자인 인근 농장주로부터 물을 사서 쓰고 있는데 지난해 에이커피트 당 250달러에 구입했던 농업용수가 금년엔 2,200달러로 폭등했다. 같은 날씨에 같은 지역에서 농사를 지어도 이처럼 ‘승자’와 ‘패자’를 낳고 있는 것이 물 권리제도의 가장 큰 결점이다. 물 권리의 상속으로 이 같은 불평등이 대대손손 계속되어 온 것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가뭄이 악화되면서 물을 둘러싼 대립은 사방에서 가열되고 있다. 진보와 보수가, 북가주와 남가주가, 농촌과 도시가, 농부와 환경주의자가 물 사용 우선권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물 사용량은 농촌 대 도시의 80대20이 아니라 환경보호용 50%, 농업 40%, 도시용 10%라는 것이 주 수자원국 통계를 인용한 농부들의 지적이다.
시원한 해결책은 없이 부글부글 끓는 물 전쟁의 와중에서 캘리포니아가 조언을 구하는 곳이 2000년대 ‘대가뭄’을 겪어낸 지구 반대편의 호주다. 15년간 계속된 가뭄 후 다시 비가 내릴 무렵 호주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개인의 1일 물 사용량은 이전의 절반인 55갤런으로 줄어들었고 물 관련법도 대폭 개혁했다.
물 사용권리에 대해 ‘총량 제한 및 거래제’를 도입했다. 매년 초 사용가능한 물의 총량을 계산하여 각 수요에 따라 누구에게 얼마나 공급하며 어느 정도의 물 값을 책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기존의 무제한 물 권리는 보상금 지급도 없이 10년 시한제로 축소되었다. 이유가 당당하다 - “물은 공공소유의 대상이며 공익을 위해 관리되어야 한다”
호주의 강력 개혁을 캘리포니아 주민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조언은 명심할만하다. “호주의 긴 가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캘리포니아도 마찬가지다” - 임시방편이 아닌 장기적 위기관리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음 주부터 발생되는 캘리포니아 강제 절수령의 효력은 내년 2월까지 계속된다. 오는 겨울에도 눈이 안 내린다면, 캘리포니아의 주민들은 좀 더 철학적인 물 전문가가 될지 모른다. LA타임스가 던진 화두 “물은 무엇인가? 공동자원인가, 상품인가, 정부서비스인가, 인간의 권리인가?”에 대한 해답을 진지하게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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