젭 부시의 예상치 못했던 ‘실수’를 계기로 이라크전쟁이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이라크 늪’에 공식·비공식 공화당 주자들이 앞다투어, 혹은 떠밀려서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소동은 지난주 폭스뉴스 앵커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보수 미디어가 공화당 예비주자 젭 부시에게 건넨 단순한 질문이었다 : “현재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당신은 이라크 침공을 승인했을겁니까?”
질문은 평범한데 답변은 폭탄이었다.
“했을 겁니다”
뭐?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와 알카에다 연관이 허위정보란 것을 알고도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을 거라고? 이 상식 밖의 대답에 공화당 지도부는 당혹했고, 경선의 주자들은 “나라면 안했을 것”이라고 랜드폴과 마르코 루비오에서 크리스 크리스티와 릭 샌토럼까지 너도나도 외쳐댔으며, 코미디언들은 뜻밖의 호재를 마음껏 요리하며 즐겼는가 하면, 민주당은 강 건너 불난리를 느긋하게 구경했다.
형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두둔하려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부시는 진화에 나섰으나 그 대응 또한 서툴기는 마찬가지였다. “침공했을 것”이라는 월요일 답변에 이어 화요일엔 “질문을 잘못 이해했다”고 해명하면서도 안했을 것이라는 답변은 하지 않았고 수요일엔 “그 같은 가정적인 질문은 전사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얼버무렸다가 상황이 계속 악화되자 목요일에 가서야 “안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표면상으로는 일단 수습되었으나 나흘에 걸친 그의 갈팡질팡 답변은 공화당 대선판을 흔드는 새로운 변수로 등장해 최소한 두가지 확실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첫째, 부시의 대선후보 자질에 대한 의구심의 증폭이다 - “대선 출마 준비가 아직 안됐나?” “대통령이 되려는 열정이 있기는 한 건가?” “가장 스마트한 부시 맞아?” “국익보다 가족이 더 중요하다는 건가?”
부시의 최대 강점으로는 막대한 모금 능력과 함께 안정된 경쟁력이 꼽혀왔다. 부시왕조의 가업 계승에 거부감을 가진 유권자 상당수까지 그를 지지하는 요인은 경험과 가문과 지성을 겸비하고 있어 국정을 이끌 ‘준비된 후보’라는 이미지, 초만원을 이룬 젊은 후보군에 비해 통치수업을 새로 훈련받지 않아도 되는 성숙하고 합리적인 후보라는 기대였다.
“당신도 당신 형처럼 이라크를 침공했을 겁니까”는 대선 후보 젭 부시에게 던져질 예상 100%의 질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전혀 대비하지 못한 듯 취약점을 드러낸 채 비틀댔다.
형의 정책과 어긋나는 통치방향에 부담을 느낀다면 “정치왕조, ‘다이너스티’ 이슈는 생각보다 심각한 것 아닌가”라는 분석도 나왔고 동생 부시는 아버지 부시나 형 부시와 별로 다르지 않은 “그저 3번째 부시일 뿐”이라는 깎아내리기도 시작되었다.
후보 부시의 대선 여정에 결코 좋은 징조들이 아니다.
둘째, 이민개혁·동성결혼·기후변화 등과 함께 공화당에겐 가장 위험한 대선 이슈의 하나로 멀리 해온 이라크전쟁이 경선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허위정보에 의한, 인명과 재산의 심각한 손상을 초래한 과오’로 평가받고 있는 공화당 대통령의 전쟁을 지지는 물론, 공개적 비판도 금기시 되어온 것이 공화당 내의 분위기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부시의 갈팡질팡 답변 소동으로 그 금기가 무너진 것이다.
“이제 공화후보들은 정치적인 이라크늪에서의 투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CNN은 지적하고 있다. 과거의 이라크전쟁만이 아니다. 테러집단 ISIS의 공격으로 미국 내의 안보까지 위협받는 위기에서 현재의 이라크전쟁 또한 뜨거운 감자로 대선판을 흔들고 있다.
젭 부시를 제외한다면 공화후보들에게 과거의 전쟁을 뒤돌아보며 잘잘못을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앞날의 정확한 예측을 근거로 새로운 이라크 대책을 유권자에게 설득시키는 것은 다르다. ISIS를 격퇴시킬 효과적 전략과 국가안보가 위협받을 때 바르게 판단하여 강력하게 행동할 수 있는 외교정책을 둘러싸고 강경파와 온건파가 맞서며 공화후보들의 공개토론은 한층 뜨거워질 것이다.
아직 공식 출마선언을 안했어도 현재 공화당의 선두주자는 젭 부시다. 지난 한달동안 실시한 5개 여론조사에서 집계된 평균지지율은 15.4%, 공동 2위인 마르코 루비오와 스콧 워커에 2.2 포인트 앞선 허약한 리드이긴 하지만 1위를 지키고 있다. 6월 중순으로 예정된 공식출마 선언 이후에도 선두권을 지킬 수 있을지는 이번 일을 거울삼아 앞으로 얼마나 잘 대처할 것인가에 달렸다.
부시에겐 잊기 힘든 끔찍한 지난 한 주가 그의 마지막 악몽이 아닐 것은 분명하다.
계속 따라다닐 이라크전쟁과 함께 금융위기 등 형 부시의 정책을 비판해야 할 이슈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스프링 캠프 같은 경선 초기라는 점이 그나마 부시에겐 다행이지만 이미 마르코 루비오나 스콧 워커가 우유부단한 부시보다는 익사이팅하고 신선해 더 바람직한 공화당 후보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은 곳곳에서 제기되었다.
부시의 막강한 ‘돈과 가문’이 휘청대는 그의 위치를 회복시키는데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도 공화경선의 흥미로운 관전포인트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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