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9.11 테러 직후 미 전국과 마찬가지로 분노와 충격에 휩싸인 연방의회가 일사천리로,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테러대응책이 애국법(Patriot Act)이었다. 정보기관에 대해 무제한에 가까운 수사권한을 허용하면서도 당시엔 아무도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고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우려되기 시작한 과잉권한의 부작용은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에 의해 명백한 사실로 드러났다.
그중에서도 모든 미국인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누가 언제 누구에게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랫동안 전화 했는지” 방대하게 통화기록을 수집 보관해온 국가안보국(NSA)의 감시 프로그램은 지난 2년간 끊임없이 ‘안보와 사생활 보호’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불러왔다. 민권단체들은 연달아 소송을 제기했고 연방의회는 안보와 자유를 적절하게 균형 잡는 애국법 개정안 마련에 고심해 왔다.
통화기록 무차별 수집은 공화당 부시행정부가 시작했지만 민주당 오바마행정부에 들어와 더욱 확대되었으니 워싱턴의 양당 이념대립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 오히려 오바마 대통령과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자유법안을 함께 지지하는가 하면 공화당의 티파티 극우파와 민주당의 리버럴 극좌파가 손을 잡고 애국법을 아예 폐지시켜버려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다.
연방하원이 어제 ‘미국자유법안(USA Freedom Act)’을 통과시켰다. 논란 많은 NSA대규모 감시 프로그램 중단을 포함한 초당적인 애국법 개혁안이다. 하원이 자유법을 통과시킨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가을에도 통과시켰으나 상원에서 무산되었다.
이번엔 상황이 다소 나아졌다. 무차별 정보수집의 법적 근거로 삼아온 애국법 215조의 시한 만료가 6월1일로 다가온데 더해 지난주 연방항소법원에서 NSA의 감시프로에 대해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오는 등 애국법 개혁 필요성에 힘이 실린 것이다.
어제 오후 338 대 88이라는 압도적 지지로 하원을 통과한 자유법은 무차별 정보수집 등 일부사안만을 개정하면서 사실상 애국법을 2019년까지 연장시키는 법안이라 할 수 있다. 2명의 공화의원과 2명의 민주의원이 백악관과 민권단체, 보수와 진보의 의견을 신중하게 반영하여 작성한 타협안이다. 아슬아슬하게 맞추어 놓은 국가안보와 사생활 보호의 균형을 깨뜨릴까 우려되어 본회의 표결에 앞서 어떤 수정안 발의도 용납하지 않았을 정도다.
현행 애국법 하에선 NSA가 수백만 미국민의 통화기록을 매일 전화회사로부터 수집하여 자체 데이타베이스에 보관하고 있지만 애국법을 개혁한 자유법 하에선 통화기록 수집과 보관은 민간 전화회사 소관이되며 NSA는 수상한 특정인물의 통화기록을 원할 경우 해외정보감시법원의 사전허가를 받아 전화회사에 요청하게 된다.
사실 자유법의 하원통과는 이미 예견되었었다. 그러나 상원은 다르다. 다수당대표인 미치 맥코넬을 선두로 애국법 약화를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안보 매파들의 의지가 강경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매파의 입지는 허약하다. 상원이 가진 옵션들이 이들에게 그리 우호적이 아니다.
첫째, 6월1일까지 아무 표결도 안한다.
시한만료로 애국법이 폐지되고 랜드 폴등의 자유주의자들과 민권단체들이 환호할 것이다.
둘째, 현행 애국법을 개혁 없이 그대로 통과시킨다. 매파들이 적극 추진하는 옵션이지만 상원통과에 필요한 지지표수가 부족할 뿐 아니라 하원이 절대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므로 현재로선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 애국법 215조는 NSA의 무차별 정보수집을 허용하고 있지않다는 지난주 법원 판결이 나왔으므로 정보수집을 ‘합법적’으로 하려면 현행 애국법의 단순연장이 아니라 정보수집 권한 확대를 명시하는 수정을 가해야 한다.
셋째, 하원처럼 자유법안을 통과시킨다.
국가안보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올 자유법안 통과로 정보력을 약화시킬게 아니라최신 테크놀로지에 맞게 업데이트 시켜야한다는 것이 매파의 주장이다.
넷째, 시간을 벌기위해 몇 달의 단기 연장안을 통과시킨다. 자유법 지지자들은 찬성할 수 있을지 몰라도 랜드 폴 등 폐지론자들은 장기든 단기든 애국법 연장안에 대해선 필리버스터를 강행하여 표결 자체를 막겠다고 이미 경고한 상태다.
이제 공은 상원으로 넘어갔다. 5월 마지막 한 주는 의회의 메모리얼데이 휴회이므로 사실상 애국법 처리기간은 23일까지다. 다음 주 안에 네가지 옵션 중 하나를 택해 처리하지 않으면 애국법은 폐기된다. 이번엔 개혁하든 연기하든 매듭을 지어야 한다.
테러위협은 날로 고조되는 상황이다. 지난주엔 미국내 군기지들이 경계단계를 상향조정했고 최근 테러의 공포를 체험한 프랑스와 캐나다도 정보기관 감시법안을 대폭 강화 중이다. "안보를 위해선 얼마간의 자유는 포기해야한다”는 여론도 꾸준히 40~50% 선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얼마간’이 구체적으로 어디까지이냐다.
안보와 사생활 중 하나만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가지를 동시에 완벽하게 보장하는 대안을 찾기도 힘들겠지만 두 가지 목표가 언제나 정면으로 상충하는 것도 아니다. 안보에 별 손상을 끼치지 않고 미국의 근본가치인 개인의 자유도 보호할 수 있는 초당적 첫걸음을 상징하는 것이 ‘애국법’에서 ‘자유법’으로의 탈바꿈이다.
상원 매파의 고집은 정부의 과잉권한을 키울 뿐이다. 과잉권한의 남용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