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마지막 주말 ‘가미카제 폭포’ 산을 등반했다. 용암절벽을 타고 까마득하게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이었는데, 산 이름 탓인지 날씨가 종잡을 수 없었다. 가미카제는 일본어로 ‘신풍(神風)’이다. 13세기에 일본을 정복하러 나선 고려-몽고 연합군의 함대를 침몰시킨 괴상한 돌풍을 칭한다. 2차대전 때 진주만을 기습한 일본군 자살특공대의 폭격기 이름이기도 하다. 그날 우리 일행은 비옷을 입었다, 벗었다 반복했다. 입으면 그치고, 벗으면 또 빗방울이 떨어졌다. 신풍 탓이든, 아니든 그런 건 문제가 안 된다. 집에 있으면 비 맞을 일도 없다. 하지만 방안에서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괴물이 있다. 지진이다. 심술 비가 좀 뿌렸을 뿐인 바로 그날 네팔에서 대지진이 일어나 5,000명 이상이 횡사하고 국토가 쑥대밭이 됐다.
공교롭게도 그 사흘 전에 시애틀과 LA 인근 패사디나에서 지진전문가들이 참석한 주요 학술회의가 열렸다. 그 두 모임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사뭇 비관적이다. 현재 미국의 전 국토에서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인 1억5,000여만명이 지진 취약지역에 살고 있으며, 워싱턴주 인근의 태평양 해저에서는 최근 상당규모의 화산이 폭발했다는 증표가 있다고 했다.
패사디나에서 열린 연례 미국 지진학회 총회에서 한 연구팀은 미국 본토에서만 2,800여만명이 생애에 ‘격렬한 진동’을 겪게 될 것이라며 그런 지진이 유발하는 전물피해액만 평균 45억달러에 달하고, 그중 80%가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등 서부해안 주에 집중될 것이라고 보고했다. 지진다발 지역인 하와이와 알래스카는 이번 보고서에서 제외 됐다.
세계 지진전문가 80여명이 참석한 시애틀 모임에서는 워싱턴대학(UW)이 2억달러를 들여 작년가을 서북부 태평양 바닥에 깐 새로운 해저 지진측정 케이블의 성과가 발표됐다. 실시간 정확하게 지각변동을 탐지하는 이 측정기가 지난 23일 하루에만 8,000여회의 진동을 기록, 머지않아 해저 아닌 내륙에서도 상당규모의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미국에선 이번 네팔지진과 맞먹는 강진이 두 차례 발생했다. 1811년경 일어난 미주리 지진 때는 중부지역이 온통 들썩이고 미시시피 강이 역류했다. 당시엔 지진계가 없었다. 전문가들은 그때 진도가 7~8규모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1906년엔 샌프란시스코에서 8규모의 강진이 일어나 3,000여명이 사망했다. 이들 두 지진은 세계 7대 지진에 낀다.
다른 5개 지진은 1923년 도쿄의 7.9 강진(사망자 14만2,000여명), 1960년 칠레의 9.5 강진(사망 1,600여명, 쓰나미 파고 11.5미터), 1970년 페루의 7.9 강진(사망 6만6,000여명), 2004년 인도네시아의 9.1 강진(사망 22만 7,000여명, 주변 12개국에 쓰나미 파급) 및 2011년 일본 동북부의 9.0 강진(사망 1만5,000여명, 핵발전소 방사능 누출) 등이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평균 2만여 차례의 지진이 보고된다. 하루 50건 이상이다. 하지만 모르고 지나치는 약한 지진은 수백만 건에 달한다. 잘 알려진 대로 이들 지진의 80%가 ‘불의 굴레’로 불리는 환태평양 국가에서 일어난다. 이 지역에 452개의 화산이 있고 그중 75%는 활화산이나 휴화산이다. 워싱턴주의 명산 Mt. 레이니어가 대표적 활화산으로 꼽힌다. 지진은 예방할 수 없다. 피해를 줄이려는 사전대책이 있을 뿐이다. 지진의 사후대책이 바로 이재민 구제다. 경제대국 일본이 4년 전 대지진을 겪었을 때 전 세계에서 성금이 답지했다. 네팔은 일본과 비교가 안 되는 극빈국이다. 관광업에 근근이 의존한다. 그 관광업의 ‘밑천’인 에베레스트 산이 이번 강진으로 높이가 줄어들었을 수도 있다니 그 또한 걱정이다.
한국일보 미주본사가 네팔 이재민 돕기 성금을 모으고 있다. 신비의 땅 ‘샹그릴라’에 비유되는 네팔은 한인 등산객과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다. 전쟁보다 더한 참상에 빠진 700여만 명의 이재민들에게 지구촌 곳곳에서 구호의 팔이 뻗치고 있다. 이들을 위해 한인의 온정도 쓰나미처럼, 가미카제처럼 일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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