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카운티미술관(LACMA)의 50주년 기념전 프리뷰에 갔을 때 한점의 조각품에 매료돼 그 앞에 한참을 서있었다. 독일 표현주의 화가 에른스트 커슈너가 나무를 깎아 만든 작은 여인상인데 ‘목걸이를 한 무희’(Dancer with Necklace)란 제목을 달고 있었다.
몸을 비틀어 ‘똥배’를 내민 채 한 손을 들고 서있는 그녀는 그 독특한 자태와 거칠게 깎인 나무의 질감, 흙의 모성이 느껴지는 투박한 황토색으로 인하여 아프리카 조각상이 연상되는 원시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여인은 가만히 들여다보는 나에게 아주 간절하게 다가왔다. 할 수만 있다면 케이스에서 꺼내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그렇게나 감정이 동요되는 작품을 만나는 일은 살면서 그리 흔치 않다. 사진을 찍어 카톡에 올리는 것으로 겨우 나의 애정을 표현했던 이 작품은 그로부터 며칠 후 LA타임스에 나온 기사를 통해 좀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목걸이를 한 무희’는 커슈너가 서른살 무렵이던 1910년 26세의 연인 도리스를 모델로 만든 첫 조각작품이다. 당시 유럽 문화계에 소개됐던 아프리카 조각미술에 큰 흥미를 느낀 커슈너가 그리스적 고전미의 기준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 했던 작품이었을거라고 미술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 작품은 만든 지 얼마 안 돼서 한 독일인에게 팔렸고, 커슈너는 훗날 나치에 의해 ‘퇴폐화가’로 낙인찍히면서 600여점의 작품이 파괴되자 58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이 무희가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1983년. 독일표현주의 조각전을 준비하고 있던 라크마의 스테파니 배런 큐레이터는 함께 사진을 정리하던 직원으로부터 필라델피아의 친구네 집에 이 사진과 비슷한 ‘인형’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설마, 했으나 수많은 자료를 샅샅이 뒤지며 조사한 결과 그 인형은 진짜 커슈너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그 가치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독일 이민자 후손인 소유주는 작품을 라크마에 장기대여 해주었으며, 최근 매각의사를 밝히자 라크마가 50주년 선물로 사들인 것이다. 가치를 매길 수 없을만큼 희귀한 이 작품의 가격은 발표되지 않았으나 그보다 작은 사이즈의 비슷한 커슈너 조각이 2006년 런던 경매에서 270만달러에 팔렸다고 한다.
라크마의 50주년 기념선물전에는 또 하나 희귀하고 흥미로운 작품이 있다. 멕시코 화가 미겔 카브레라의 ‘스페인인과 모리인의 알비노 아기’(1763)가 그것으로, 이 작품 또한 발굴 스토리가 평범하지 않다.
북가주의 변호사 크리스티나 존스 잰슨은 자기 집 소파 밑에 돌돌 말려 오랫동안 보관해온 그림이 뭔가 중요한 작품일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멕시코 미술사에서 가장 진귀한 작품 중 하나이며 역사에 남을 발견이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버지가 생전에 “이 그림은 스페인에서 왔으며 아마도 박물관에 있었던 소중한 그림”일거라면서 어떤 작품인지 꼭 알아보라고 했던 당부를 잊지 않고 은퇴 후 그 출처를 찾기 시작했다.
매서추세츠 다트마우스 대학의 미술사학자에 이르러서야 밝혀진 결과는 이 그림이 멕시코에서 나온 ‘카스타’(casta) 그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카스타 그림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 멕시코의 인종문제를 담은 특이한 민속화로서, 스페인 사람과 인디오, 아프리카인이 통혼하여 이룬 다민족가정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의 모습을 일부러 조화롭고 행복하게 묘사한 그림을 말한다.
카스타 그림은 인종과 계급별 조합에 따라 16개가 한 세트로 그려졌는데 당시 최고 화가로 꼽혔던 카브레라가 남긴 16점은 이제껏 14점이 발견됐으나 2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8점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미국미술관에, 5점은 멕시코의 개인 콜렉션에, 그리고 1점은 노스리지의 다문화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잰슨의 그림은 카브레라가 그린 ‘카스타’의 6번째 작품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스페인에 있던 것을 1920년대 미국 부호가 사들여와 몇차례 옮겨진 끝에 그녀의 소파 아래 안착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라크마의 소장품이 되었다.
모든 미술품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모인 곳이 미술관이다. 라크마의 ‘50년을 위한 50점’(50 for 50: Gifts on the Occasion of LACMA’s Anniversary) 전시에서는 50개의 이야기가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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