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한국일보에 대형 광고를 게재하는 미국 기업체들이 있다. 보잉도, 마이크로소프트도, 스타벅스도 아니다. 인디언 원주민부족의 카지노다. 신문사 편집국 창문을 통해 보이는 맞은편 건물 위의 초대형 빌보드도 카지노광고다. ‘나의 게임, 나의 생활’이라고 쓰여 있다. LA 코리아타운엔 카지노 버스들이 주기적으로 찾아와 한인노인들을 모셔 간단다.
인디언 카지노들은 규모가 라스베이거스 급이지만 장삿속은 주정부의 복권사업(lottery)에 족탈불급이다. 전국의 44개 주와 워싱턴DC가 매주 자체적으로는 물론 연대적으로 복권을 판매한다. 이들 주와 DC는 작년 한 해 동안 평균 17억달러 씩 총 700억달러를 웃도는 복권매출을 기록했다. 미국의 전체 성인이 한 사람 당 260달러어치 씩 복권을 산 꼴이다.
복권은 40년 전까지도 모든 주에서 불법이었다. 하지만 적자재정에 시달리는 주정부들이 주민 반대로 세금을 못 올리자 세수증대의 편법으로 너도나도 복권을 팔기 시작했다. 아직도 복권을 팔지 않는 주는 ‘본토’가 아닌 알래스카와 하와이, 도박업계의 로비가 막강한 네바다와 미시시피, 도박을 죄악시 하는 종교인이 많은 유타와 앨라배마 등 6개 주뿐이다.
와이오밍은 이웃 몬태나와 아이다호에 달려가 복권을 사는 주민들이 많아지자 지난해부터 자체 복권을 팔기 시작했다. ‘바이블 벨트’에 속한 오클라호마, 테네시, 남북 캐롤라이나도 이웃 주의 복권매상을 올려주는 주민들의 쌈짓돈을 지키기 위해 2000년대 들어 복권사업을 시작했다. 요즘 극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앨라배마도 조만간 복권을 팔 조짐이다.
당첨확률이 일반복권은 1,398만분의 1, 메가 밀리언 복권은 2억5,559만분의 1로 벼락에 맞을 확률보다 적다. 그런 복권을 대개 영세민들이 팔아주며 정부에 ‘가외 세금’을 기꺼이 낸다. 일확천금의 횡재를 바라기보다는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일종의 희망 처방전을 위한 투자다. 복권이 그런 정서적 보상을 준다면 비싸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난 주 1달러짜리 스크래치 복권을 산 뉴저지의 건축인부는 평생 매주 2,500달러씩 받게 됐다.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주민은 편의점 주차장에서 주운 1달러로 복권을 구입해 15만달러에 당첨됐다.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의 한 히스패닉 여인은 지난 주 500달러, 5,000달러에 이어 100만달러짜리 잭팟에 당첨돼 ‘세 번 잇달아 벼락에 맞는’ 진기록을 세웠다.
복권이 저주인 경우는 더 많다. 텍사스의 한 홈디포 종업원은 3,100만달러 잭팟 당첨금을 20개월 만에 탕진하고 자살했다. 플로리다의 한 문맹남자도 3,000만달러 잭팟에 당첨된 후 천사를 가장한 동거녀에게 살해당했다. 캘리포니아의 한 중년여인은 130만달러 복권당첨을 숨기고 남편과 이혼했다가 나중에 들통 나 당첨금을 고스란히 전남편에게 넘겨줬다.
인디언 카지노의 빌보드 광고가 ‘도박의 생활화(My Game, My Life)’를 부추기지만 한국인들은 오래전부터 ‘고스톱’을 생활화해왔다. 세 사람만 모이면 언제, 어디서든 판을 벌인다. 하지만 근래 전혀 다른 꼴불견 도박이 등장했다. 총리인선 놀이다. 대통령에 의해 총리후보로 지명 받은 인사들이 잭팟에 당첨된 듯 의기양양하다가 줄줄이 ‘루저’로 전락한다.
이완구 총리의 사임으로 박근혜 정권 출범 후 26개월 만에 여섯 번째 총리후보가 도박판에 서게 됐다. 그도 인준청문회에서 판돈을 잃고 루저가 될지 걱정이다.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은 지명 닷새 만에 사퇴했고 안대희 전대법관과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청문회까지 가지도 못했다. 억지춘향으로 당첨된 이완구 총리는 취임 2개월여 만에 강판했다.
박근혜대통령의 서투른 베팅솜씨를 탓하는 사람도 있지만 ‘위너’가 될 인물이 워낙 없다는 게 더 문제다. 부정부패, 파벌의식, 지역정서, 한탕주의 등 온갖 부조리에 이념투쟁까지 겹쳐 반세기 이상 복닥대온 혼탁한 세태에 기성세대가 대부분 오염돼 있다. 리관유 식의 철두철미한 사회정화가 선행되지 않는 한 한국의 청백리 총리 선출은 백년하청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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