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환>
미국의 농산물수확량은 자국민을 다 먹이고 세계 여러 지역에 수출하고 원조하고도 남아돌아서 연방정부에서는 많은 액수의보상금을 주어가면서 농산물들의 과잉생산을 억제하고 있다. 미국은 다른 자연자원도 자국민들이 자급자족하고도 남아 수출하고 있다.
없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다. 1800년대 초까지 한 가지 모자라는 것이 있었다면 인력, 노동력이었다. 유럽 여러 나라에 미국의 축복받은 기후와 자연자원에 대한 과대광고, 때로는 허위광고 까지 보내서 이민유치를 했던 적도 있었다. 미국 사방에서 모자라는 것이 노동력이었다.
아마 인류역사상 미국처럼 성공한 Nation of Nations 는 없었던 것 같다. 뿌리와 언어가 다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쌓아온 것이 바벨탑이 아니고 아직까지는 전 세계에 모범적 광명을 비쳐주는 높은 등대이다. 전 세계 모든 인종이 다 몇 명씩이라도 미국에 와있지 않은 인종이나 나라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며 뉴욕에는 전 세계의 토속음식점들이 최소한 한 개씩은 다 있으리라고 짐작된다.
우선 제1차로 대량 이민을 온 아일랜드 사람들과 독일 사람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써보고자 한다. 모두가 기회의 나라를 찾아오기는 했지만 그들은 이민역사 40여년 정도인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조금 성분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1900년대 초에 하와이, 멕시코, 쿠바 등지의 농장노동자로 왔던 분들을 제외하면 일반평균으로 볼 때 근래의 우리나라 이민자들은 교육이 높고 이민 오지 않았어도 본국에서 좋은 터전을 잡을만한 엘리트들이 많고 타국이민자들에 비해서는 완전히 털털이로 온 사람들의 비율이 비교적 낮았다고 생각한다. 미국동포들은 본국에 가서는 가끔 미국거지라는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타민족들에 비해서 비교적 빨리 미국에 자리도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딱히 우리민족이 우수해서라기보다는 이민 수준이 타민족들보다 높았던 것이 주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오랫동안 영국의 강압적인 통치로 압박과 설움에서 살아온 아일랜드 사람들은 당시로는 엄청난 액수인 $12.50 내지 $25이나 되는 뱃삯을 내며 미국으로 매년 수천 여 명씩 이민을 오고 있었다. 그러다 1845년에 그들의 주식인 감자에 병이 들어 감자농사 3분의1이 모두 썩었는데 1846년에는 전국적으로 감자가 전부 폐사하였고 이런 농작물 흉년은 1850년도까지 계속되어 수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수십만 명은 굶다가 병이 들어서 죽었었다.
먼저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이 본국에 보낸 편지에 “미국은 천국이다. 빵과 감자는 풍부하며 매일 돼지고기도 먹는다. 매일의 식단이 크리스마스 때와 마찬가지라고 쓴 것을 보고는 너도나도 일 년에 수만 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1848년에서 1860년 사이에 뉴욕항구를 통해서만 아이리시들 백만 명이 넘게 왔는데 이 숫자는 그 기간의 전 유럽 이민자들의 절반이나 되는 것이었다.
보스턴이나 뉴욕으로 온 아이리시들은 딴 데로 이주해갈 비용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농사일에는 신물이 난 사람들이기도 했기 때문에 대부분 먼저 온 아이리시 사람들 틈에 끼어 미국 동부 항구도시들에 정착하였다 나중에는 서부 쪽으로 농토를 찾아 옮겨가기도 하였으나 많은 사람들은 그때쯤부터 활발하게 건설되기 시작하던 운하와 철도건설에 땀을 흘렸다. 당시 미국의 동력원은 수력, 증기력, 아이리시라고 말했었다는 데 그중에서 아이리시가 가장 꾸준한 동력원이라고 했었다고 한다. Erie Canal이 시작된 1817년에는 아이리시가 별로 많지 않았으나 공사가 끝난 1825년쯤에는 Irish Contractor들이 모집해서 일하던 아이리시가 많았으며 그 공사가 끝난 후에는 다른 운하공사장과 철도건설에 일했다. 이들은 점차 서부 도시들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아사를 면하기 위해서 고국을 등지고 온 이들의 후손 중에서 미국의 대통령과 하원의장이 나오고 주지사들이 나왔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기전인 1860년도까지 아이리시 다음으로 대거 이민 온 사람들은 독일 사람들이었다. 백인들 입장에서만 본다면 미국의 빈 땅들이 노동력이 모자라 개발되지 못하고 있었을 때에 유럽에 내려진 천재지변이나 정치 사회적 혼동은 미국으로의 이민이 급증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본국에서의 삶이 만족스러운 사람들이 이민을 올 턱이 없는 것으로써 미국은 지금까지 억압받고 굶주린 자들의 피난처가 되어오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 중에는 더러 유럽의 왕후장상의 후손들도 없지는 않지만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사람들 대부분은 출신이나 신분상의 이유로 본국에서는 큰 출세를 상상해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1816년 여름에 독일에는 대홍수가 나서 라인 강이 범람하고 농촌의 창고들과 가축들까지 모두 휩쓸려갔고 가을까지 계속된 폭우는 과수원의 과수들까지 휩쓸어 가버리는 천재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아사하는 참상이 있었다. 다음해인 1817년에 약 8,000명의 독일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또 1829년과 1830년은 유럽 사상최악의 혹한이 독일을 덮쳤는데 땔감이 없어서 동사하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식량은 귀해지고 물가가 오르고 살기가 힘들어지자 1832년에는 한해에 만여 명의 독일인들이 이민을 왔다. 농촌의 참상을 정부가 전혀 구제하려고도 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자 매년 수만 명씩 미국으로 이민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런 이민이 180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다. 1854년에는 일 년 동안 25만 명이나 왔었는데 이 숫자는 전 유럽이민자들의 절반이 넘는 숫자였다고 한다. 밤사이에 미국으로 이민하기로 작심하고 그 다음날 이민 길에 오르는 등 대홍수 같은 이민 물결이 있었다.
이와 같은 재앙이 농촌에 내리고 있는 동안에 독일은 극도의 엄청난 정치적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1815년에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자 유럽에는 왕정복귀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독일은 오스트리아 통치하의 폭군정치를 감수하게 되었다. 1832년에는 25,000여 명의 군중들이 모여서 공화정부를 주장하였고 지하학생운동, 납세거부 운동들을 하다가 드디어 1848년에는 공화국정부를 수립하려는 혁명이 시작되었으나 무력진압으로 실패하자 수청명의 혁명주동자들과 참가자들이 국외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는 Carl Schultz 같은 지도자도 있었는데 그는 미국에 망명 온 후 밀워키에서 변호사가 되어 링컨의 대통령선출에 기여하였으며 남북전쟁이 나자 북군의 장군으로 게티스버그 전투에 참전하였고 그 후 주스페인 미국대사, 미주리 주 연방 상원의원, Secretary of Interior 등으로 미국 정계에서 활약하였다. 실제로 밀워키 등은 독일이민들이 세운 도시로써 미국의 맥주양조산업중심지가 되었다. 이들 독일계 이민들은 점차적으로 전국으로 옮겨가서 농부, 교사, 교수, 변호사, 의사, 언론인등으로 활동하였다. 그들은 대사업가가 되기도 하였으며 대부분이 자유주의자들이었던 이 독일계이민들은 남북전쟁 때 북군에 참가하였다.
독일계 이민자들이 미국의 교육제도를 개선하였다. 독일이민자들이 오기 전에는 미국의 학교에 체육교육이 전혀 없었는데 독일계 체육교사들이 이민 오면서 체육시간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학교마다 체육관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전까지는 아이들이 글 읽기를 배울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는 학교에 보내지 않았었는데 독일계 이민자들이 독일에서 하던 대로 킨더가튼(Kinder Garten)이라 불리던 유치원에서 네 살짜리부터 놀면서 배우는 학교를 시작하자 그 본을 따서 미 전국에 유치원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1810년부터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반세기동안에 아일랜드 사람들과 독일인들 이외에도 수천 명의 이민자들이 스칸디나비아 나라들, 네덜란드, 벨지움, 스위스, 프랑스, 이태리 등의 나라들에서 미국으로 옮겨와 아일랜드 사람들과 독일인을 뒤따라 운하를 파고 도로를 건설하고 철도를 건설하였다. 이들 이민자들도 공장을 세우고 농토를 개발하고 종국에는 미국이 세계 최강의 공업국가가 되는데 공헌하였다. 이들 후기 이민자들에 대해서는 차후에 또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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