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대전 후 미국의 가장 뼈아픈 손실을 들라면 중국의 공산화가 첫손가락으로 꼽힐 것이다. 1945년 전쟁이 끝난 직후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전력은 병력과 장비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부패와 무능에 물든 국민당은 중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공산당에 밀려 4년 후 본토를 내주고 대만으로 도망가고 만다.
도대체 ‘누가 중국을 잃었는가’는 그 후 두고두고 미국 정치의 논쟁거리가 됐는데 그 책임은 공산주의에 유약한 민주당 탓으로 돌려졌다. 트루먼이 1950년 북한의 남침에 신속 대응한 것이나 케네디가 월남전 참전을 결심한 것 모두 이런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서였다.
1972년 2월 공화당의 닉슨은 중국을 전격 방문해 모택동과 역사적인 회담을 갖고 관계 정상화를 논의했다. 닉슨의 중국 방문은 그가 공화당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민주당 대통령이었다면 ‘중국에 굴복했다’는 비난이 무서워 감히 이런 획기적인 행동을 시도조차 못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 후 20여년이 흐른 1993년 빌 클린턴이 이와 비슷한 일을 해냈다. 민주당의 전통지지 기반인 노조가 극력 반대하는 북미 자유 무역 협정(NAFTA)의 의회 비준을 받아낸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의 무역 장벽을 헐고 북미 지역을 한 시장으로 묶은 이 협정은 세 나라의 교역 증대와 경제 효율성 진작을 위해 필요한 조치였지만 멕시코의 싼 임금을 따라 일자리가 사라질 것을 우려한 노조의 반발을 샀다.
그럼에도 이들을 지지하는 의원들을 달래고 설득해 상하 양원의 승인을 받았다. 찬성 쪽에 민주당보다는 공화당 표가 더 많았지만 공화당이 백악관을 차지하고 있었더라면 통과에 필요한 민주당 표가 나왔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미국에 닉슨과 클린턴이 있다면 한국에는 노무현이 있었다. 그 역시 당시 열린 우리당의 지지 기반인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고 한미 자유 무역 협정(FTA)을 추진해 임기 내 타결시켰다. 당내 일각에서 지지층의 반대를 우려하자 노무현은 “오로지 국익만 보고 추진하라”고 협상 팀을 격려했다 한다. 일부 야권의 격렬한 반발 속에 올해로 시행 3주년을 맞은 한미 FTA는 한국 상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일본 상품의 점유율은 계속 줄고 있다.
이제 오바마가 이들 대통령들이 한 일을 하려 하고 있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연방 의회는 지난 주 오바마에게 현재 진행 중인 환태평양 파트너십(TPP) 협정 추진 시 무역 진흥권한(TPA)을 주는데 합의했다. 이 권한을 부여받고 체결된 협상에 대해서 의회는 가부만을 결정할 뿐 수정안을 달 수 없어 통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본과 뉴질랜드, 칠레와 베트남 등 환태평양권 11개 국가와의 무역 장벽을 철폐해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것을 골자로 한 이 협정은 다른 모든 자유 무역 협정과 마찬가지로 시장을 넓혀 무역을 늘리고 경제의 효율을 높이며 경제 성장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관세 장벽을 없애면 그동안 그 보호막 안에서 안주하던 산업은 설 자리를 잃게 되지만 경쟁력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성장 동력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체질은 개선되고 소비자들은 양질의 상품을 더 낮은 가격에 살 수 있게 된다.
오바마가 당내 반발을 무릅쓰고 이를 추진하기로 결정한 것은 환태평양 국가와의 무역 확대 없이 미국의 번영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또 이 지역을 방치할 경우 중국의 영향력이 날로 커질 것은 명확하고 장차 미국이 태평양 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할 것이란 걱정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정치인이 전통적 지지 기반의 반발을 각오하고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TPP가 체결되고 의회의 인준을 받는다면 이는 오바마 재임 8년 중 최대 업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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