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영어서원 백운재 대표]
an old fool / 늙은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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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s no fool like an old fool.
늙은 바보같은 바보가 또 있으랴.
백운재 이삿짐 정리를 마무리하는 중입니다. 책장 아래를 더듬다가 불현듯 ‘옛날 옛적 고려 적’ 개역성경을 만납니다. 읽던 페이지에 휴지 쪼가리가 꼽혀 있는데 거의 산화 직전의 종잇가루 모습입니다. <잠언> 마지막 쯤인데 감색 지분(紙粉) 사이로 이렇게 읽힙니다. "대저 젖을 저으면 뻐터가 되고 코를 비틀면 피가 나는것 같이 노[怒]를 격동하면 다툼이 남이니라."고색창연한 <성경전서>는 대한성서공회 발행 1956년 보진재 인쇄본이었습니다.
근 환갑을 맞는 성경입니다. 나잇살로 갈라진 가죽제본 속에서 배어나오는 옛 종이 냄새가 어릴적 향수를 뭉클하게 합니다. 종잇장에 코를 가까이 대고 고향(故鄕)에 취해봅니다.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2.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3.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4.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5.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이어지는 <잠언> 말씀은 다름아닌 그 말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1:7]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but fools despise wisdom and instruction. 만연체 문장에, 느리게 읽어야 뜻이 들어오는 오묘한 말씀들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그렇게 한참 ...... <잠언> 삼매에 몰입하던 중, 쌓여있던 책무더기에서 자그마한 단행본이 한권 툭! 떨어집니다. <101 American English Proverbs>란 제목의 아담한 책입니다. 오랫만이군, 낯익은 옛친구! 그런데, 오늘은 왜 "Proverb"란 말이 연거푸 다가오는 걸까? 먼 20여년 전, 수사학 강의를 위해 참고했던 이 책이 지금(至今), <잠언>에 몰입된 내 존재 속으로 ‘홀연’ 들어오다니! 지금은 없어진 "BORDERS" 책방 영수증이 꽂힌 페이지가 절로 열리는데, 거기 수록된 격언은 "There’s no fool like an old fool!”
There’s no fool like an old fool.
늙은 바보같은 바보가 또 있으랴.
"Synchronicity[씽크로니~쓰티]?” 뭔가 서로 연관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니 말입니다. ‘동시성의 원리’라고도 하고 ‘공시성(共時性) 법칙’이라고도 합니다. 이름이야 어쨌건, “홀연!” 정신 차리게 하는’의미있는 우연’을 말합니다. ‘Meaningful Coincidence, ‘우연’이지만 ‘의미있는’ 사건이니 주의(注意)하라는 겁니다. 왜 오늘 "Proverb"란 말이 ‘잠언’과 ‘격언’으로 동시에 다가오는지? Watch out! 주의(注意)할진저!세상에 ‘나이든 바보’같은 바보가 또 있으랴! 나이먹은 ‘주제에’ 아직도 바보라니! 어리석음은 나이를 알지 못한다더니, 공자님 말씀에 나오는 "종심소욕불유구 (從心所欲不踰矩)"란 과연 누구를 일컫는 말이든가? 나이 70에 이르매, "마음의 뜻대로 행해도 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던 공자님은 실로 현명한 노인이었겠으나,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여즉’ 어리석은 노인같은 바보가 세상에 또 있겠냐는 격언이 황망합니다.
우연히 접한 ‘고리짝’ 성경의 <잠언>을 읽다 또한 ‘우연히’ 접한 영어격언집의 그 한마디! 다만 ‘synchronicity’라 넘어가기엔 뭔가 심오한 뜻이 있겠지 하며 다시 고지(古紙) 향기 물씬한 <성경전서> 잠언삼매로 회향합니다. 그리고, 곱씹어봅니다.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자고로 사람이 뭔가’안다’ 할 때에, 그 앎의 시작은 곧 주[主]를 알고 경외(敬畏)하는 것이니라.
There’s no fool like an old fool.
늙은 바보같은 바보가 또 있으랴.
어떤 모습으로 알던,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던, 사람에게 주[主]는 경외의 대상입니다. 주[主]를 모른다는 사람도 나아가 주[主]는 알 바 없다는 사람도 ‘그 순간’ 바로 그 절체절명의 순간엔 주[主]를 찾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늦게 비로소 결국 알게 될 주[主]를, 지금은 애써 모른다 하는 게 바로 바보짓이니라, 그렇게 <잠언>은 전하고 있습니다.
는 "주[主]를 두려워 하는 것이 앎의 시작"이라고 되풀이 되풀이 가르칩니다.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그리고, 나이를 먹어서도 끝내 그걸 깨우치지 못한 바보를 지독한 바보라 합니다. 미련한 자는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끝까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There’s no fool like an old fool. 늙은 바보는 진짜 바보니라!그렇게 반나절 ‘바보 안되기 묵상’을 마치고 책상에 앉아 컴을 켜니, 남가주 윤 목사님의 "잠언 강해"가 턱 올라와 있네요. 이래저래 오늘은 <잠언>을 피해가긴 글른 날이거니! 내친김에 오늘 하루는 만인의 성경이라는 <잠언(箴言)>을 달고 지내며 ‘나이든 바보’를 면하도록 주의(注意)하렵니다.
Shal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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