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이 예일 법과대학원을 졸업하고 공직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74년 닉슨 탄핵을 주도한 연방 하원 법사위원회 연구원으로 일하면서부터다. 힐러리는 존 도어 주임과 버나드 너스바움 선임위원의 지도를 받으며 탄핵 절차와 요건 등을 연구했다. 닉슨은 탄핵이 확실해 지자 그해 8월 사임했다. 힐러리는 닉슨 탄핵에 일조하는 것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이 때 힐러리가 하나 분명히 배운 것이 있다. 탄핵을 하기 위해서는 증거가 있어야 하고 증거가 없이는 탄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입증하는 녹음테이프가 백악관에 있었고 제출을 명령받자 닉슨은 자기가 관련된 부분을 삭제한 채 내놨다. 이 테이프가 분실됐다고 끝까지 우겼더라면 아마 그는 탄핵을 모면했을지 모른다.
힐러리는 퍼스트레이디로 백악관에 있으면서 다시 한 번 탄핵과 인연을 맺게 된다. 남편이 르윈스키 사건과 관련해 위증을 했다는 이유로 탄핵당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빌 클린턴은 처음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부인하다 성관계를 입증하는 ‘블루 드레스’가 나오면서 사실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증거물만 없었더라도 탄핵 소동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두 차례의 경험을 통해 힐러리는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는 결코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국무장관이 된 힐러리는 처음부터 국무장관으로 행한 직무에 관한 이메일도 모두 개인 이메일을 사용했다. 이는 고위 공직자는 반드시 정부 이메일을 사용하도록 한 오바마 행정부의 지침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그리고는 국무장관 재직 중 주고받은 이메일 반환을 요구받자 “개인용”으로 사용했다는 수 만 통의 이메일을 삭제한 채 반환했다. 연방 하원의 벵가지 미 영사관 습격 사건 진상 규명위원회가 클린턴이 집에 두고 있는 서버를 조사하겠다고 나서자 변호사를 통해 이메일이 이미 모두 삭제됐기 때문에 조사해 봐야 소용없다는 답변만 보냈다.
이 “개인용” 이메일은 나중에 추억거리로 살펴보려고 따로 모아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볼 수 없게 영구 삭제된 것이다. 국무장관 재임 기간 동안 추억에 남을 이메일이 하나도 없었거나 아니면 이를 공개했다 생길 시빗거리를 원천 봉쇄해 버린 것이다. 전자보다는 후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닉슨과 빌,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은 다른 정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많다. 모두 중하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 도움 없이 자기 힘만으로 정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Tricky Dick’ ‘Slick Willie’란 별명처럼 모두 권모술수에 능하고 맷집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의지가 강하다. 60년 대선에서 지고 62년 가주 주지사 선거에서 또 지고도 68년 대선에 도전해 끝내 백악관을 차지한 닉슨이나 숱한 여성 스캔들에 화이트워터에 탄핵까지 이겨내고 민주당의 원로로 군림하고 있는 빌 클린턴 모두 보통 사람은 아니다.
그의 아내 힐러리가 지난 주말 드디어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힐러리는 웰레즐리대 졸업식에서 학생으로는 처음 졸업 연설을 했고 재학 시절 동료 학생들로부터 ‘여성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학생’으로 뽑혔으며 ‘미 변호사 저널’지에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변호사 100인’으로 두 번이나 선정된 인물이다.
그럼에도 ‘공동 대통령’이라 불린 8년간의 영부인 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2000년 퍼스트레이디 시절 연방 상원에 도전해 당선됐으며 2008년 다 차려놓은 밥상을 까마득한 후배 오바마에 빼앗기고도 그 밑에서 국무장관을 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모두 대권으로 가기 위한 빈틈없는 수순으로 봐 무리가 없다.
만약 힐러리가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민주당은 첫 흑인 대통령에 이어 첫 여성 대통령을 배출하는 위업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과연 힐러리가 어떤 방책으로 침체에 빠진 경기를 살리고 추락하는 미국의 위상을 높일지 불분명하다. 실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한 때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던 2008년 오바마의 매력은 힐러리에게는 없다. 미국 선거판이 슬슬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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