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십 년 전 이야기지만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모교에서 교편을 잡을 정도로 실력 있는 사람이 미국에 와서 아마도 열 번쯤인가 그의 전문 분야 자격시험에 실패를 연거푸 맛본 다음에 이해하기 어려운 피해망상증에 걸려 고통당하던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자기가 세이프웨이 같은 가게에 물건을 사러 들어가면 즉시 도둑이 들어왔다고 자기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뒤따라 다니라고 구내방송을 하는 것이 귀에 들려 괴로워 죽겠노라는 것이었다.
FBI와 CIA에서 자기 머릿속에 트랜지스터를 집어넣고는 자기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조종한다고 고집을 세우는 통에 이 직장 저 직장에서 쫓겨났을 뿐 아니라 부인마저 잠적을 해버린 경우도 보았다. 자신이 보기에는 너무 억울하게 당하다 보니 온 세상이 자기를 해치고자 한다는 피해망상증이 심각해진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환청(幻聽), 환시(幻視), 환각(幻覺)에 사로잡혀 고생을 하게 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본인 고생으로 끝나는 것은 약과이고 자기를 괴롭히는 원수들을 “다 죽이겠다”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 대량 살인 사건으로까지 악화되어 피해자들이나 사회에 무시무시한 해악을 초래한다.
최근 2, 3년 사이의 사건들만 생각해 보자. 콜로라도의 오로라 영화관 관객들을 무차별 사격하여 12명을 죽이고 58명에게 중상을 입혀 도합 177건의 살인과 살인 미수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자는 박사과정 대학원생이다.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범죄였을 것이다. 과학 문명시대 시대에 한영 소사전에서도 사라진 표현인 ‘마귀’가 씌웠기 전에는 정상인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흉악 범죄다.
그 대학 보건소의 정신과 의사가 그를 치료하던 중 범죄 감행의 위험성 때문에 캠퍼스 경찰에 연락을 했었지만 프라이버시 존중 때문이었는지 범죄 예방을 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큰 안타까움으로 남아있는 사건이다. 작년 3월 워싱턴 해군 기지를 공포로 몰아넣은 대량 학살 사건의 범인도 정신 분열증으로 치료받던 제대 군인이었다. 범행에 사용된 .45구경의 권총을 사던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의 영적 평화는 다 사라져 버렸다. 나는 증오로 가득 차 있다. 이제는 마귀가 나를 장악하고 있다고 믿는다”라는 글을 남긴 것으로 보도되었다.
2009년의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 때 민주당 후보이던 크레그 디스 상원의원의 20대 아들이 아버지의 얼굴을 난자해서 중상을 입히고 자살 한 사건도 정신 병력과 관계가 있다. 아버지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대학에 휴학계를 내고 열심히 뛰었던 그는 “완전한 아들”로 불릴 정도였지만 정신 분열증 등으로 통원 치료를 받고 있었다.
정신병 중증 환자들의 문제를 다루는 이유는 물론 독일의 루프트한자 소속 저먼윙스 항공기 9525의 부조종사 루비츠(이하 독일 신문의 프라이버시 존중 관습에 따라 L로 칭함)가 기장을 조종실에서 나가게 한 후 문을 잠가 못 들어오게 하고는 급강하 장치를 눌러 8분 사이에 비행기가 급전직하로 알프스 산에 추락하게 만들어 149명의 승객들을 산산조각이 되게 한 천인공노 할 행위를 저지른 사건 때문이다.
보도에 의하면 L의 여자 친구는 “L이 세계적인 항공사 루프트한자에서 장거리 노선을 운행하는 대형 여객기를 모든 게 꿈 이었다는데 건강 문제로 꿈이 좌절되자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애당초 L이 조종사 훈련을 받았다가 중단했던 이유도 우울증 등의 정신병 관계 진료를 받았었기 때문이었다. 루프트한자 쪽에서 그 사실을 알면서도 조종사 훈련을 끝낸 후 저가 항공 자회사의 에어버스가 부조종사로 고용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회사의 과실이 149명의 생명 손실에 일정 원인이 됐음이 분명해진다.
루프트한자에서 이 사건에 관계되는 비용으로 3억달러를 계상했다는 보도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9525기에는 독일의 한 고등학교 스패니시 클럽 소속 7명의 학생들이 두 명의 인솔 선생들과 동승하고 있었다. 또 바르셀로나 오페라에서 격찬을 받아온 오페라 가수들도 있었다. 갓난아이 둘을 포함한 여러 층의 나이와 직장인들이 있었다. 기장이 손도끼로 조종실 문을 깨부수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는 몇 분 사이 승객들의 아비규환은 상상을 초월하는 처참한 광경 자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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