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가게 점원으로 출발한 청년 정주영은 자동차 정비공장을 인수해 운영하다 3주 만에 발생한 화재로 전 재산을 잃고 큰 빚까지 지게 됐다. 빈털터리가 된 그는 정비공장을 인수할 때 돈을 빌렸던 사채업자를 찾아가 당시로선 큰 금액인 3,500원을 다시 빌려 빈 땅에 천막을 치고 무허가 공장을 운영했다.
비록 예상치 못한 화재가 발생해 빌린 돈을 갚지 못한 상태였지만 또 찾아간 용기와 다시 빌려준 사채업자의 배짱은 평소 정주영이 얼마나 두터운 신용을 쌓았는지 알 수 있는 일화다.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 경쟁업체보다 신속한 정비로 유복한 생활을 하기에 충분한 돈을 벌었지만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자동차 수리비를 받으러 관청에 가면 자신이 30만~40만원을 받을 때 건설업자들은 수천만원대를 받아가는 걸 보면서 어차피 같은 시간을 쓸 바엔 매출이 큰 건설업에 진출하기로 결심한다. 부침이 심한 건설업의 특성과 인플레이션이 극심하던 전후 한국의 경제여건에서 2~3년이 소요되는 큰 공사 수주는 여러 번의 부도위기를 몰고 왔지만 사업은 신용이 전부라는 믿음과 특유의 뚝심으로 극복하며 현대건설을 한국 최고의 회사로 성장시켰다.
73년 오일쇼크는 세계 경제를 큰 충격에 빠뜨리고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한국 경제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치솟은 오일달러가 산유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상황을 목격한 정주영 회장은 중동 진출을 결심했지만 회사 내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현대가 수주한 해외공사들 대부분은 막대한 손해만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부정적 시각이 회사 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우리가 그동안 해외공사에서 적자를 본 건 실패가 아니라 소중한 경험을 쌓은 거다. 지금까지 공사의 적자 원인은 현지 인력을 써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었지만 중동시장은 우리 인력을 데려다 쓸 수 있으니 국가 경제에도 기여하고 회사도 반드시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며 그들을 설득했다.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최저 예정가가 15억달러가 넘는 20세기 최대의 건설 프로젝트였다. 세계 유수의 건설사들이 사활을 걸고 대결한 입찰경쟁에서 현대는 예상가보다 훨씬 낮은 9억3,000만달러에 수주했다. 모두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덤핑 수주로 현대가 망할 것이라고 했지만 철 재킷을 울산에서 제작해 바닷길 1만2,000킬로미터를 끌고 가 현장에서 조립하는 대범하고 창의적인 발상으로 공기를 8개월이나 앞당겨 완공시켰다. 비관론자들의 우려와 달리 당대 최대의 공사를 완벽하게 마무리해 현대를 세계적 건설사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조선업에 진출할 때도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땅 위에 지으면 건설이고 물 위에 띄우면 건조가 된다. 큰 물탱크에 엔진을 달아 움직이는 게 선박이니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고 대응했다. 기후와 법률 그리고 풍습이 다른 해외 수십 곳의 건설현장을 관리하면서 발생하는 어려움들을 한 곳에서 건조해 인도하는 선박을 만들면 단번에 해소할 수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발상에서 조선업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는 조선소 건립을 위해선 차관에 의존해야 하던 시절 돈을 빌리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웠다. 조선소도 없는 상태에서 선박을 먼저 수주해야 하는 외국 은행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고 조선소 착공과 선박을 동시에 건조하는 사상 초유의 발상으로 은행과 선주를 설득하여 조선소가 완공되던 날 26만톤급 유조선 두 척을 동시에 취역시키는 기적을 현실로 만들었다.
슘페터는 꾸준한 혁신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이라 정의했고 피터 드러커는 포착한 기회를 위험을 무릅쓰고 사업화 하려는 모험과 도전이 기업가 정신이라 했다.
정주영 회장은 수리경험을 살려 현대 자동차를 설립하고 그의 공사판 노무자 경험이 현대건설을 만들었다. 건설에서 얻은 경험은 다시 조선으로 이어지고 이는 철강 등 또 다른 사업으로 연계 확장하는 식이다. 무엇인가 작은 가능성만 보여도 적극적으로 파고들었으며 아무리 소소한 경험이라도 적극 확대해 유사한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도전했다.
어떤 사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이 서면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창의적 전술로 극복해 모두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올해는 정주영 회장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분의 기업가 정신을 다시 새기며 더 큰 도약의 기회로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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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김 / 터보에어 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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