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국제시장’이란 영화가 옛 향수를 자극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눈물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시대적 아픔을 몸소 보고 자랐던 우리들로서도 알 만큼은 다 아는 내용들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 용산구의 산(山)자가 붙은 동네였다.
대단한 직장… 돈벌이 하나 변변치 못했던 아버지께서 어떻게 그 속에 끼어 집 한 채나마 장만하고 살았는지는 지금도 미지수다. 다만 번지수 앞의 山자 말하주듯, 아마도 언덕배기를 빙돌아… 피난살이를 하던 판자집을 어떻게 오며가며 하나 얻어낸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이다.
언덕배기 아래로 미 8군 , 보광동 ‘오산 미군 부대’ 등이 있었고 주말이면 껌이라도 하나 얻어먹을까… 미군 찦차 주위로 아이들이 까맣게 몰려들던 모습은 결코 드문 풍경이 아니었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힘들고 외로웠던 시절… 소일거리라는 것이 있을리 만무했다. 그저 남남끼리, 낯선 사람들끼리 한 동네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8형제’니 무슨 ‘5형제’니 하며 의형제를 맺고 형님아우하며 지내곤 했다. 외로움을 잊고자하는 고육책(?)이었겠지만, 때문에 웃동네 아랫동네로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가 모두 7분이나 생겨났는데 마치 진짜 피를 나눈 형제처럼 왕래가 잦았고, 형님 아우하며 막걸리판을 벌이기 일쑤였다.
그당시 부모님 (세대)들이 할 줄 아는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그저 젖가락 장단에 맞춰 피난살이… 혹은 이미자 등의 노래를 목청돋구어 부르는 것이 오락이라면 오락의 전부였는데, 가사의 내용들을 보면 지금도 다소간 양미간이 찌푸러지게 만드는 것이 대부분이다.
무슨 육지를 그리다가 검게 타버린 처녀라느니… 석양빛에 기폭을 걸고/흘러가는 저 배는… 아아 구슬퍼라… 돛단배 하나라도 한을 품지 않고는 바라볼 수 없었던 그 시절…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다보면 참 많은 엘레지들이 삶의 고달픔, 한을 우회적으로 노래하며 등교길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곤 했다.
그럼에도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닌, 삶의 동반자로서… 즉 갖지 못한 자에 대한… 그나마 굶지 않는 자들로서 그렇지 못한 자… 슬픔 당한 자들에 대한 우리민족 특유의 가득한 인정을 머금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슬픔에 길들여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기도 하지만 또 그 슬픔을 노래로 승화할 줄 안다는 것은 우리 민족만이 가진 슬기였을 것이다. 당시의 노래들을 큰 소리로 따라부르며 자란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손을 잡고 보곤하던 ‘홍도야 울지마라’ … 그런 칙칙한 영화들과 함께 가요의 이미지들이야말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삶의 흔적… 한인이면 누구도 간직하고 있는 자라온 유산의 한 부분이라 아니 할 수 없는 것들일 것이다.
특히 (엘레지의 산 역사)이미자의 노래들이야말로 그 자체로 시대요, 삶의 한 부분이었다할 수 있겠는데 특히 ‘흑산도 아가씨’와 같은 노래는 노랫말 속에 들어있는 말할 수 없는 그리움… 한이 느껴지는 특이한 한 가지의 일을 떠오르게 만들곤 한다.
같은 동네에는 나와 동갑내기로 학교도 가지 않고, 문밖 출입 조차 금지된 소녀가 있었다. 이유인즉슨, 심한 척추 장애 때문에 그녀의 부모들이 결단코 그녀를 단 한 발자국도 문밖으로 내 보내지 않은 때문이었다.
그녀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단 한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어쩌면 대문 밖으로 스쳐가며 봤을지도 모르지만) 꽤 신비하고 곱상하게 생긴 아이였던 것같다.
중학교에 입학한 뒤, 개구장이처럼 심하게 뛰어 놀다 크게 다쳐 몇 개월간 입원살이를 끝내고 퇴원했을 때 그녀의 어머니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리고 펑펑 울면서 자신은 왜 못나 빠져 자식 하나 제대로 지키기 못했을까하고 통곡했다.
그녀는 이유없이 13세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과 하직했다. 간혹 그녀의 집 근처를 지날 때면 어쩌면 시대가 낳은 비극이었을… 우리 한국민들만이 간직한 상처와 같은 그 안타까운 모습이 어른거리던, 당시가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번만번 밀려 오는데/못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바라보다 검게 타버린…살아 왔던 흔적… 한이요, 트렌드… 아픈 발자취가 어찌 노래이기만 할까? 한껏 날개치고 싶었을… 아프게 살아온 그 때 그 시절… 그 수많은 세월의 추억들을, 휘파람의 노래 속에 담아 휘날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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