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휘슬러 ‘어머니의 초상’·세잔 ‘카드놀이…’ 등 감상기회
[노턴 사이먼, 19세기 말 인상주의 특별전]
패사디나의 노턴 사이먼 뮤지엄(Norton Simon Museum)에 지금 굉장히 귀중한 그림 3점이 걸려 있다. 파리의 오르세 뮤지엄(Musee d’Orsay)과의 교환대여 프로그램에 따라 프랑스로부터 날아온 19세기 말 인상주의 시대의 작품들. 에두아르 마네의 ‘에밀 졸라’(Emile Zola·1868)와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The Card Players·1892-96), 그리고 미국화가 제임스 애봇 맥닐 휘슬러의 ‘화가 어머니의 초상’(Portrait of the Artist’s Mother·1871)이 그것이다.
이 작품들은 3월27일부터 6월22일까지 ‘마주 앉아서: 오르세 뮤지엄에서 온 3개의 걸작’(Tete-a-tete: Three Masterpieces from the Musee d’Orsay)이란 제목으로 노턴 사이먼의 19세기 전시실 안에 각각 세 화가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노턴 사이먼 측은 교환으로 역시 3점의 명화를 오르세 뮤지엄으로 대여해 보냈는데 르누아르의 ‘퐁데자르, 파리’(Ponts des Arts, Paris·1867~68), 고흐의 ‘농부의 초상’(Portrait of a Peasant·1888), 에두아르 뷔야르(Edouard Vuillard)의 ‘첫 열매’(First Fruits·1899) 등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인상파 화가들이 프랑스에서 그린 그림들인데 1960~70년대 노턴 사이먼이 사들인 이후 한 번도 그곳에서 전시된 일이 없다고 한다.
오르세 뮤지엄은 파리 센느 강변의 철도역을 프랑스 정부가 개조, 루브르 박물관에 있던 인상파 작품들을 옮겨와 19세기 후반을 중심으로 하는 미술관으로, 1986년 개관한 이래 루브르와 마주 보는 파리의 명소로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노턴 사이먼 뮤지엄은 버클리대학 출신 유대인 사업가 노턴 사이먼(1907~1993)이 평생 수집한 미술품과 도산위기에 처한 패사디나 뮤지엄의 컬렉션을 사들여 설립한 사립 비영리 박물관으로, 소규모라지만 1만2,000여점에 달하는 소장 미술품의 수준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미술관이다.
이런 특별전시가 없어도 그냥 들어가기만 해도 너무나 행복한 곳으로, 특히 입구의 정원에는 로댕의 조각품들이, 안쪽 정원에는 기나긴 호수를 둘러싸고 헨리 무어의 조각품들이 곳곳에 놓여있어 눈이 더 이상 호사스러울 수가 없다. 미술관 규모가 크지 않은 것도 편안하고, 특히 19세기 전시실에 들어가보면 사람들이 누구나 좋아하는 인상파 그림들이 수없이 걸려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감상하게 된다. 고흐, 고갱, 드가, 모네, 마네, 르누아르, 보나르, 세잔, 피카소, 칸딘스키, 자코메티… 이번 기회에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기를.
Norton Simon Museum 411 W. Colorado Blvd. Pasadena, CA 91105입장료 9~12달러(18세 이하 무료). 화요일 휴관.
(626)449-6840, www.nortonsimon.org
■ 휘슬러의 ‘화가 어머니의 초상’
지금 미국 화단은 이 한 점의 그림 때문에 무척 흥분해 있다. 원제목이 ‘회색과 흑색의 배열 1번’(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No. 1)인 이 그림은 제임스 애봇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 Whistler)가 1871년 그린 후 1891년 프랑스 정부가 구입, 1925년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최초의 미국 화가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화가 어머니의 초상’ 또는 ‘휘슬러스 마더’로 불리면서 미국 어머니의 아이콘이 된 이 그림은 비록 해외에 걸려 있지만 미우정국이 1943년 그 이미지를 사용하여 ‘미국의 어머니’ 우표를 제작한 바 있다.
미국에는 그동안 다섯차례 나들이했으나 남가주에 오기는 1933년 LA카운티 역사·과학·미술박물관(현 LACMA와 내추럴 히스토리 뮤지엄의 전신) 전시 이후 처음으로, 당시 8만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휘슬러가 직접 디자인한 액자에 지금도 걸려 있다.
휘슬러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러시아서 자랐으며 20대에 파리로 이주, 활동은 주로 영국에서 했지만 미국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화가다. 그 역시 마네와 마찬가지로 살롱에서 낙선하고 그의 작품이 비웃음을 사는 등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의 솜씨를 알아본 모네와 시인 말라르메의 강력한 추천으로 프랑스 정부가 이 그림을 구입했다.
쿠르베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그는 차분하고 섬세한 색채들의 절묘하게 계산된 배열로 20세기 회화의 추상적 경향을 예고했고 젊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마네의 ‘에밀 졸라’
마네와 졸라의 우정이 잘 드러나는 작품. 당대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며 작가였던 에밀 졸라는 신문에 마네에 대해 옹호하는 글을 씀으로써 각별한 친분을 쌓았다. 마네는 당시 화단에서 풍기문란한 문제작들로 평가되는 그림들(‘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 등)을 발표해 엄청난 비난을 받았는데 졸라는 ‘미래를 여는 위대한 거장’이라며 마네를 지지하고 변호하는 글을 썼고, 그의 개인전 팸플릿에 글을 싣기도 했다.
이 작품은 마네가 감사의 마음으로 그린 졸라의 초상이다. 검은 재킷에 회색 바지를 갖춰 입은 졸라는 다리를 포갠 채 ‘화가의 역사’라는 책을 읽고 있다. 그의 왼편과 오른편에는 당시 파리를 풍미했던 일본문화의 영향인 일본 병풍과 에도시대 목판화가 걸려 있고, 그 옆으로 ‘올랭피아’ 복사본이 걸려 있다. 깃털 펜은 그가 작가임을 강조하고 있고 펜 뒤의 소책자는 졸라가 우호적인 서문을 써준 마네의 개인전 팸플릿이다.
■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현대 회화의 아버지’ 폴 세잔은 1892~96년 ‘카드 놀이하는 사람들’ 다섯 점을 남겼다. 당시 화단에서 외면당하고 인정받지 못했던 세잔은 프랑스 남부의 고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시골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곤 했는데 이 작품도 그 연작들 중 하나다.
1911년 세잔이 사망한 지 5년 후 루브르박물관으로 들어간 그의 첫 작품이 바로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이었으며, 1913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미 박물관 최초로 구입한 세잔의 그림도 이 연작 중 하나였다. 메트 소장품은 3인의 플레이어와 1명의 구경꾼을 그린 작품이고, 두 사람이 나오는 그림은 오르세와 런던의 코톨드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필라델피아 인근의 반즈 파운데이션이 소장하고 있고, 또 다른 작품은 그리스 선박재벌 게오르게 엠비리코스가 소장하다가 2012년 경매에 내놓아 카타르 국왕의 딸 셰이카 알마얏사 공주가 2억5,000만달러에 사들임으로써 세계 미술품 판매 최고가를 경신하며 화제가 됐었다.
카드놀이 혹은 도박하는 풍경은 17세기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회화에서 종종 나타나는 소재로, 술집을 배경으로 한 옛 그림들이 다분히 유희적인 반면, 세잔의 인물들은 매우 냉정하며 금욕적이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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