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먼윙스 여객기의 알프스 추락은 부조종사가 저지른 고의적 범행으로 드러났다. 엔진결함이나 악천후가 아니라 한 인간의 병든 영혼이 초래한 비극이었다. 상상조차 못한 참사였기에 충격은 더욱 크다.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비행기 타기는 더욱 두려운 일이 됐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이유로 공포를 느끼는지 연구해 온 리스크 전문가들이 공포 측정 공식을 만들어냈다. ‘공포의 크기=통제 불가능성+상상 가능성+고통+피해의 규모+부당성’이 그것이다. 이 공식은 왜 사람들이 비행기 타는 것을 특히 두려워하는지 잘 설명해 준다.
비행기 운항은 우리의 통제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조종사를 골라 조종간을 맡길 수는 없다. 지상을 운행하는 버스나 택시라면 운전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중간에 내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공중을 나는 비행기는 그럴 수 없다. 비행기에 타는 순간 우리의 목숨은 온전히 조종사에 내맡겨진다. 이런 통제 불가능성이 두려움을 키워준다. 이것은 수치나 확률의 문제가 아니다.
이처럼 공포와 두려움은 통제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무력감에 의해 생겨난다. 모든 것이 남의 손아귀에 맡겨져 있다는 생각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반면 우리가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 즉 통제감은 긍정적 정서의 바탕이 된다. 두려움뿐 아니라 심리적 웰빙 전반에 통제감은 큰 영향을 미친다.
흔히들 행복의 조건으로 경제력과 지위 등을 많이 꼽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행복의 직접적 요소라기보다 통제감을 높여주는 간접적 수단으로 보는 것이 옳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지위가 높으면 행복할 확률이 높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객관적 조건들과 개인적 통제감이 항상 비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령 좋은 처우를 받고 괜찮은 자리에 올라 있으면서도 항상 윗사람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한다면 긍정적 정서를 유지하기 힘들다. 반면 성격적으로 자긍심이 높거나 자율성이 보장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열악한 상황이라도 웰빙지수는 얼마든 높을 수 있다. 가난하지만 개인적 통제감이 높은 사람들이 10점 만점의 삶의 만족도에서 7.85를 나타낸 반면 부자지만 통제감이 낮은 사람들은 불과 5.82의 만족도를 나타냈다는 영국의 연구는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한국의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들이 격무에 시달림에도 멀쩡한데 반해 대통령 참모들이나 회장 비서들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쉽게 무너지는 이유를 한 정신과 전문의는 이렇게 분석한다. “대통령이나 기업 총수들은 자신들의 내적인 세계를 온전히 장악할 수 있는 자기 통제권을 갖고 살지만 참모들은 본질적으로 그것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동일 상황에서도 자기 통제권을 가진 리더에 비해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훨씬 많은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런 현상을 ‘우리 회장님의 놀라운 건강 체질과 강철 같은 의지’ 따위로 해석하는 것은 어리석다.” 회장님의 넘치는 에너지에 담긴 비밀은 확고한 통제감이다.
통제할 수 있는 ‘객관적 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통제하고 있다는 ‘주관적 느낌’이다. 전문가들이 ‘통제의 환상’이라 부르는 이런 느낌은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더 잘 이겨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물론 통제의 환상이 지나치면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른다.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해 비극을 부르는 독재자들이나 자기는 꼭 돈을 따게 될 것이라는 환상에 빠지는 도박사들이 그런 부류들이다.
그럼에도 적당한 통제감을 갖는 것은 우리의 정신적 안녕을 위해 필수적이다. 뿐만 아니라 신체적 건강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면역기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냉정하게 보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신의 생각이 전부다. 결국 통제감의 크기는 누가 자기 삶이라는 비행기의 조종석에 앉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회장님들이 누리는 통제감이 우리 것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내가 내 삶이라는 비행기의 조종석에 앉아 생각의 조종간을 잡으면 된다. 두려움 속에 비행기를 타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른 이에게 내 생각의 조종간을 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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