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26일 밤 9시15분 대한민국 해경은 백령도 인근을 항해 중이던 천안함으로부터 “물이 샌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불과 7분 뒤 천안함은 가라앉고 46명의 해군 장병도 목숨을 잃는다. 이 짧은 시간 일어난 사건은 그 후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사건 발생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침몰원인을 놓고 선체 피로파괴설, 암초설, 기뢰설, 미군 잠수함 충돌설 등 온갖 설들이 구구하게 나돌았다.
이중 흥미로운 것은 미군 잠수함 충돌설이다. 선체가 부서진 모양을 보고 이것이 잠수함과 충돌해 생긴 것이라고 추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왜 하필 미군 잠수함인가. 미군 잠수함이 부딪쳐 낸 상흔은 러시아나 중국 잠수함이 낸 것과 다른 특징을 남기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돌이켜 보면 러시아 잠수함이나 중국 잠수함과 부딪쳐 가라앉았다는 주장은 한 번도 나돈 적이 없다.
북한 어뢰설도 그렇다. 북한은 6.25 사변을 일으킨 이후 무장간첩 파견, 요인 암살, 아웅산 테러, 김포 공항 테러 등 수많은 만행을 저질러왔고 천안함 이전 연평 해전 참패를 설욕하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계속 무력화시키려고 애쓰는 북방 한계선 인근에서 순찰을 돌던 대한민국 함정이 침몰했으면 일단 북한에 의한 보복 공격을 의심해 보는 것이 상식이 있는 인간일 텐데 그 수많은 음모론 가운데 북한의 어뢰 공격설을 주장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성향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직 대한민국 정부만이 천안함 침몰 시점에 맞춰 북한 잠수함이 기지를 떠났다 돌아왔고 사건 발생 시점에 백령도 초소에서 폭발음이 들리고 물기둥이 목격됐다며 북한 어뢰설을 외롭게 주장했으나 수많은 음모론과 괴담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야당은 야당대로 정부를 믿지 않았고 국민 상당수도 괴담을 더 의지했다.
그러던 중 2010년 5월15일 사고 발생 인근 지역에서 어선에 의해 북한산이 거의 확실한 어뢰 추진체가 발견됐다. 넓디넓은 서해 바다에서 웬만한 가구보다 작은 어뢰 추진체가 나온 것은 해운대 백사장에서 좁쌀만 한 다이아몬드를 발견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어뢰 추진체가 발견된 이상 가능성은 둘 중 하나뿐이다. 이것이 그냥 하늘에서 떨어졌을 리는 만무고 북한이 어뢰를 쐈거나 아니면 대한민국 정부가 조작된 증거를 바다에 심어놓고 헛소동을 벌인 것이다. 신기한 것은 북한에는 무한히 관대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그토록 믿지 못하는 인간들 가운데도 아직까지 증거를 조작한 정부를 규탄하거나 증거 조작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차마 이들도 대한민국 정부가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천안함은 북한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할 터인데도 괴담 세력들은 아직도 어뢰 추진체에 쓰인 글씨체가 북한 서체가 아니라는 등 핑계를 대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12년 대선 후보로 나온 야당의 문재인도 천안함을 “침몰”이라고 했다가 “폭침”이라고 했다가 오락가락 하다가 대선에서 지고 말았다. 만약 그 때 그가 천안함의 침몰은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대선 토론회 때 이정희가 “박근혜를 떨어뜨리러 나왔다”고 말한 것을 꾸짖었다면 지금 청와대의 주인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그 문재인이 천안함 폭침 5주기를 맞아 최근 “천안함 침몰은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다시 대선에 나올 생각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늦기는 했지만 다행이다. 천안함이 왜 가라앉았는지를 아직도 모르는 사람은 대통령은 그만 두고 한국에서 정치할 자격도 없다.
그럼에도 괴담 세력들은 남북 관계 파탄 책임을 이명박에게 돌리며 5.24 조치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설사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 하더라도 그 책임은 대비를 소홀히 한 이명박 정부에 있다는 것이다. 강도에 맞아죽은 사람은 평소 호신술을 철저히 익히지 않은 잘못이 있기 때문에 강도는 무죄라는 해괴한 논리다.
북한은 지난 수년간 천안함을 가라앉히고 금강산 관광객을 살해하고 연평도에 포탄을 퍼붓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도 사과는커녕 진상 규명이나 재발 방지 약속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풀라는 사람들은 제 정신인가. 문재인의 이번 천안함 발언을 환영하며 이것이 천안함 음모론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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