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크루즈는 여러모로 독특한 정치가다. 워싱턴 입성 불과 2년, 44세 젊은 초선 상원의원으로 그만큼 강렬한 애증의 대상이 된 경우는 아마 찾기 힘들 것이다. 기득권층에 대한 도전과 저항으로 상원에선 ‘가장 미움 받는’ 왕따가 되었고, 풀뿌리 표심을 사로잡는 강력한 호소력으로 강경보수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전투적이다. 공화당 지도부의 초당적 타협 추진을 “물러터진 중도”라고 거부한다. 비상한 두뇌와 뛰어난 웅변으로 극우 선동가이자 워싱턴 아웃사이더로서의 입지를 굳혀왔다. 파괴적이고 근시안적 극단주의 전략을 서슴지 않고 구사해 동료의원들을 아연케 하는가하면 당 지도부의 눈 밖에 난지도 오래다. 오바마케어 시행저지를 노려 21시간 필러버스터를 감행하며 의회의 발목을 잡았고, 2013년 정부 폐쇄사태의 주모자로 활약했다.
16일간의 정부폐쇄로 공화당의 이미지는 훼손되고 지지율은 사상 최저를 기록했지만 크루즈 개인은 기성정치에 염증 느낀 보수 유권자에 뜨겁게 어필하며 인기가 급등했다.
이번 주 초 크루즈가 2016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관례였던 조사위 구성 같은 뜸들이기 준비단계는 다 생략해 버린 채 곧바로 본론으로 돌입한 것이다. 자신의 출신지인 텍사스가 아닌 버지니아의 미 최대 기독교대학에서 복음주의 기독교 표밭을 겨냥한 30분간의 출마 연설에서 그는 ‘상상해보라(imagine)’란 단어를 무려 38번이나 동원했다 :
“수백만 용기 있는 젊은 보수주의자들이 함께 일어나 한 목소리로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요구한다’고 외치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요… 수백만 믿음의 사람들이 투표소에 나와 우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투표하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요”오바마케어가 폐지되고 IRS가 폐쇄되며 단일세율이 적용되고 동성애와 낙태, 이민개혁에 제한이 가해질 ‘테드 크루즈 대통령’의 세상을 약속한 그의 출마 선언에 대해 진보진영이 ‘상상하기도 끔찍한 악몽’이라고 크루즈 때리기에 나선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공화당의 반응도 냉담하다. 보수신문 월스트릿저널은 “힐러리에 도움 될 것”이라고 지적했고, 피터 킹 하원의원은 “말만 앞서고 해놓은 것 없다”고 깎아내렸으며 상당수가 당선 가능성에 의구심을 표했다.
사실 크루즈의 승산은 공화당 경선에서도 희박하다. ‘테드 크루즈 대통령’은 상상의 여지조차 없다. 현재로서는 그렇다. 일단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지도가 바닥이다. 지난주 실시한 CNN조사에서 16%로 1위를 차지한 젭 부시에 훨씬 뒤지는 7위 4%에 그쳤다.
본인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2012년 연방상원 공화당 경선에서도 3% 지지율로 출발해 기득권층 후보에 역전승을 거둔 경험을 상기시킨다. 리버럴 블로거들은 크루즈 출마를 서커스 정도로 일축하기도 하지만 “과소평가하지 말라”는 선거 전략가들도 적지는 않다.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텍사스 주 최연소 검찰차장을 역임하며 대법원에서 9번이나 변론을 맡았던 그의 명석한 두뇌와 강한 추진력, 이슈를 활용하는 판단력과 끈질긴 야망 등은 정적들도 인정하는 그의 강점이다. 그러나 불필요하게 집요한 경쟁심과 오만하고 거친 매너, 초강경 보수주의를 밀어붙이는 극단적 작전으로 불화를 빚어 그에겐 원내 지지자가 없고, 기득권층에 지지자가 없다는 것은 그의 캠페인의 가장 큰 약점이다.
공화당 대선후보까지는 몰라도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에서의 선전 가능성은 기대해볼 수도 있다. 대표적 보수지역 아이오와는 그가 선택한 캠페인 여정에서 가장 비옥한 투표영역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1위로 올라선다면 크루즈는 티파티·복음주의 기독교·사회적 보수 등을 모두 통합해 보수진영의 챔피언으로 등극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랜드 폴, 마이크 허커비, 마르코 루비오 등이 속속 뛰어들어 뜨겁게 가열될 보수유권자 확보경쟁에서 기선을 제압해야 하는데…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후의 승패와는 관계없이 크루즈의 행보는 지켜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 ‘분열적 선동가’의 캠페인이 경선 전체를 공화당이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보수적으로 우경화 시킬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공화당의 대선후보 지명전을 자칫 “누가 더 강경한 보수인가”의 콘테스트로 바꿀 소지가 다분하다는 뜻이다.
특히 프린스턴 대학시절 전국대회에서 우승하며 갈고 닦은 토론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후보 공개토론에서 젭 부시를 비롯한 라이벌들에게 강경보수 입장을 취하도록 몰고 갈 것이다. “낙태를 반대하느냐?” “동성결혼을 찬성하느냐?” “불법이민 사면을 지지하느냐?” 돌직구 질문으로 압박하며 본선에 진출했을 때 후회할 지나치게 보수적인 답변을 끌어낼 수도 있다.
다음달 7일로 예정된 또 한명의 티파티 총아 랜드 폴 상원의원의 출마 선언에 잇달아 2016년 대선 주자들이 줄줄이 출사표를 던지며 미국은 다시 치열한 선거의 계절로 들어설 것이다. 이제 대선까지는 613일이 남았다.
예상대로 압도적 선두주자인 힐러리 클린턴과 ‘대통령 가업’ 잇겠다는 젭 부시의 ‘가문 대결’이 될지, 아니면 극우보수의 얼굴, 테드 크루즈와 극좌진보의 기수, 엘리자베스 워런의 흥미진진한 ‘이념 대결’이 될지…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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