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자극하는 LP판 중에 라파엘 쿠벨릭이 지휘한 말러의 교향곡 1번이 있다. 도이치 그라마폰이 제작한 2등급 음반으로서, 당시 ‘Privilege’라는 레벨이 붙은 $4.99짜리 싸구려 음반이었는데 그 음반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언제쯤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상급)음반들을 마음껏 들을 수 있을까’그런 생각을 하곤 했었다. 먼 훗날, 닳아져 잡음만 무성한 그 때의 음반을 다시 한번 들어보았다.
그 당시 간과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 작품을 연주했던 악단이 바로‘바바리안 라디오 심포니’였다는 점이었다. 무슨 베를린 필도 아니고 그렇다고 뉴욕, 런던 등 대도시의 명문 악단도 아닌, 일개 방송 교향악단이 하면 얼마나 할까…
그렇게 생각하고 음악을 듣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은 독일에 ‘베를린 필’이 있다는 것은 알아도 이에 버금가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바바리안 라디오 심포니)이 있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한다.
왜? 최고의 기준을 명성이나 상표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카라얀의 베를린 필이야말로 상품으로는 손색이 없다. 정교하고도 깨끗한 선율… 그러나 예술적인 끼… 내공으로 내뿜는 감동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의 경우, 베를린 필은 절대‘아니올시다’이다. 얼마 전(2008년) 독일 도이치 그라마폰이 세계 교향악단의 수준을 연주력 등을 토대로 등급을 매긴 적이 있었다.
베를린 필(2위), 암스텔담 콘서트헤보우(1위) 비인 필(3위), 런던 심포니(4위), 시카고 교향악단(5위), (바바리안은 6위)순위였다. 순위가 발표되자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 1, 2위가 바뀐 것은 그렇다쳐도 필라델피아, 뮌헨, 몬트리올 심포니 등이 빠진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클리블랜드(7위), 샌프란시스코 (13위) 등을 꼬집는 가십도 있었는데 사실이야 어떻든 오케스트라의 정확한 순위를 매긴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사실 그후 10위 권내의 오케스트라들은 불튀 나는 마케팅을 기록한 반면 20위도 기록하지 못한 오케스트라들은 평탄치 않았다고 한다) 그라마폰 처럼 연주 활동, 음반 횟수, 영향력 등을 빼고 순전히 ‘감동’으로만 평가 순위를 매기라면 어떨까?
나의 경우, 실력파 단원보다는 지휘자와의 호흡이 잘 맞는 악단이 가장 맘에 든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지휘자의 지휘봉에 꼭두각시처럼 춤추는 악단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120%를 해내는 악단이 있다. 베를린 필 처럼 한 사람의 손에서 닳고 닳아진 소리란 늘상 같은 감흥을 들려 줄 뿐이다. 살아 있는 소리라면 역시 바바리안 라디오 심포니가 세계 최고다.
아무리 같은 음악도 단 한번도 같은 소리를 내는 적이 없다. 번스타인, 스타인버그, 클렘펠러… 쿠벨릭에 이르기까지 제아무리 지독한 슬로우 템포, 폭군적인 지휘라해도 예리하게 반응하는 순응력… 그것은 소위 말하는 완전한 복종이 아닌, 피나는 세월의 내공으로만이 이룰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헌신… 하모니의 본 모습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바바리안 라디오 심포니는 1949년 뮌헨 거점의 나치 시기 방송 관현악단 생존 주자들을 중심으로 창단됐다. 당시 뮌헨에는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뮌헨 필 등 유서깊은 악단들이 있었지만 바바리안 라디오가 단기간에 이를 능가하는 명문 오케스트라로 성장하게 된 것은 초대 상임 지휘자 요훔과 단원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다.
누구나 최고를 바라지만,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이야말로 열정과 氣… 내공을 선물받은 악단이었다. 요훔 이후 라파엘 쿠벨릭, 콜린 데이비스 등으로 지휘 바톤이 이어졌지만 클렘펠러, 스타인버그, 솔티 등 객원지휘자들과도 수많은 명반, 명연주들을 남겼다.
베이지역을 방문키로 했던 서울시향의 미주 투어가 전격 취소됐다고 한다. 사유는 재정문제라지만, 실제적 내막은 정치적 이슈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지휘자가 정치적으로 놀아났다’, ‘황제처럼 돈을 쓰고 다녔다’… 이런 류의 가십에 놀아날 정도면,‘지휘자는 늘상 정치적 희생양’이라는 변명을 늘어 놓기 전에 일단 자신(들)의 내공을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진정한 오케스트라는 그 어떤 스타 (지휘자) 한 두명으로 결코 만들어 질 수 없다는 것을… 바바리안 라디오 심포니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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