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로 온 나라가 들떠 있을 때 흥분을 가라앉히고 어떻게 최소의 비용으로 내실 있게 대회를 치를지 차분히 고민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올림픽은 분명 큰 잔치지만 그 짜릿함은 아주 잠시일 뿐, 올림픽을 개최했던 도시와 나라들이 거의 예외 없이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려 왔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평창과 강원도가 과연 올림픽이라는 매머드 행사를 잘 치러낼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살짝 든 것도 사실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그런데 몇 년 전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는 조짐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올림픽 조직위와 지방 정부, 그리고 중앙 정부의 불협화음과 엇박자로 경기장들을 어디에 얼마를 들여 지을 것인가 조차 완전히 확정되지 않은 상태며 재원도 불투명하다.
일부 경기장은 환경파괴라는 비판 속에 건설이 강행되고 있으며 특히 개폐회식 6시간 사용을 위해 인구 4,000명 시골 마을에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스테디엄을 건설하려 하고 있다. 대회 후 시설 사용방안은 거의 전무한 상태다. 솔직히 불길한 기운까지 느껴진다.
IOC는 물론 한국 내에서까지 평창 동계올림픽 분산개최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분산개최론의 요지는 국내 다른 지역 시설들을 이용함으로써 시간적 압박과 재정 부담을 대폭 줄이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올림픽의 저주’를 피하려면 분산개최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분산개최는 경제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상당히 타당성이 있는 주장이다. 문제는 올림픽 개최권을 가지고 있는 평창과 강원도의 입장. 이들로서는 쉬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당연하다. 올림픽을 위해 오랜 시간 너무 많은 것들을 쏟아왔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분산개최는 지금까지 쏟아 온 투자와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결정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경제학에서 ‘매몰비용’이라 부르는, 이미 쏟아 부어 되돌릴 수 없는 비용에 대한 아까움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감정적 매몰비용은 어떠한가.
‘매몰비용’이라는 경제학 용어를 사용했지만 쉽게 풀이하자면 ‘본전 생각’이다. 본전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궤도를 수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본전에 대한 미련 때문에 더욱 더 큰 손실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계속 고집하게 되기 쉽다. 이라크 전쟁은 매몰비용에 매몰된 지도자의 고집 때문에 지속된 바보 같은 전쟁이었다.
진흙탕 이혼소송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한국의 유명 여성앵커 김주하씨가 폭력예방교육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이 지난주 들려왔다. 김씨는 최근 한 강연에서 결혼생활과 이혼을 통해 “인내가 미덕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가정폭력 피해사실을 세상에 드러내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냈다며 “이것은 가리고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냄으로써 더 줄이고 예방해야 할 일이구나 라는 걸 깨달았다”고 심경을 밝혔다.
가정폭력을 당하면서도 참았다는 김씨. 그녀 입장에서는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쏟아온 노력과 시간이 아까웠을 것이다. 또 가정문제가 드러날 경우 자신의 평판에 미칠 영향도 두려웠을 터. 그녀가 매 맞으면서도 인내한 것은 결혼 유지를 위해 쏟아온 매몰비용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불행한 결혼생활을 더 연장시켰을 뿐이다.
이처럼 매몰비용의 오류, 즉 본전 생각 때문에 저지르는 판단 실수는 비단 국가 대사와 기업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일상에서 내리는 판단과 결정들의 상당수가 본전생각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절반가량이 그렇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그래서 대표적 행태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네만은 “매몰비용 오류 때문에 사람들은 열악한 일자리, 불행한 결혼, 전망 없는 프로젝트에 계속 집착하고 매달린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올림픽의 저주’를 피하려면 분산개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평창은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오롯이 평창과 강원도의 몫이다. 하지만 감정과 본전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아주 냉정한 시각과 분석으로 결정을 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너무 무리해서 잔치를 치를 경우 잠깐은 짜릿할지 몰라도 아주 길고도 고통스런 후유증을 각오해야 한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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