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둘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왔을때 그애들의 나이는 열한살과 열세살이었다. 내 남편은 그때 겨우 스물 아홉살 밖에 되지 않은 청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큰 짐을 젊은 그에게 짊어지게 했다.
남의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보통 팔자가 센사람이 아니다. 잘해주어도 욕먹고 못해주면 더 욕을 먹는다. 자신의 피붙이처럼 똑같이 해주어도 무언가 늘 부족한 것처럼 느껴진다. 나도 남편이 아이들을 야단칠 때마다 자기 자식이 아니라서 저러나 하는 조금은 섭섭하고 조금은 야속했던 적이 많이 있었다.
아이들이 처음 왔을 때 우리집은 늘 시끌벅적 했다. 영어를 모르는 아이들 때문에 나는 중간에서 한국말로 통역을 해야 했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언어 문제로 답답하고 갈등이 생겼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때 내 이웃에서 살던 친구의 남편이 귀가 번쩍 뜨이는 충고를 해주었다. "야단을 치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해! 무관심이 정말 무서운 것이거든, 내 의붓 아버지는 내게 눈꼽만치도 관심이 없어서 늘 냉정했어. 그게 사람을 잡는거야. 난 열일곱살 때 결국 집을 뛰쳐 나왔어"그가 한숨을 쉬면서 한 말이다.
나는 가끔 그 충고를 생각한다. 관심이 있어서 사람들은 참견하고 야단도 친다. 관심은 사랑의 첫걸음이다. 사랑을 먹고 자라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우리 손주들만 보아도 그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심지어 삼촌과 숙모들에 쌓여 많은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자란다.
어제 한 일주일 보지 못한 네살짜리 손주 녀석을 어린이 집에서 픽업을 하고 돌아오는데 차 안에서 그 녀석이 하는 말이 "그랜마! 유 네버 플레이 윗트미! 유네버 바이 미 아이스크림!”하면서 쫑알댄다.
이젠 하루하루가 달라져서 말도 잘하고, 이제는 제법 불만도 토로한다. 그러나 아이는 불만을 아무리 해도 제 할미가 모든 응석을 다 받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 받는 아이의 자신감이다.
이제 많은 세월이 흘러가고, 내 두 아들들도 자신의 아이들을 기르게 되었다. 얼마나 우리 모두가 힘든 세월을 지나왔는지, 그리고 자신들을 기른 이국의 아버지가 얼마나 감사한지 다들 알고 있다.
"엄마! 대디도 잘 계시죠? 자주 연락을 못해 미안해요. 그래도 엄마는 우리들 마음을 알지요? 우리가 얼마나 엄마 아빠를 사랑하고 감사해 하는지?"그렇게 그애들이 말할 때마다 나는 야단을 친다.
"야! 이놈아! 사랑은 액션이야. 말만 하면 뭐하냐? 행동으로 보여줘야지.나쁜 놈들!"그렇게 말하고 툴툴대도 속으론 기쁘다. 잊지 않고 가끔 전화를 해주는 그들의 마음씨가 기특하다. 우리 남편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별로 없다. 자신의 생일날이나 아버지 날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때, 그들이 전화로나 카드로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작은 선물을 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우리 막내 쟌은 남편에게 아들이요 유일한 친구다. 아들이 컴퓨터 프로그래머여서 우리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이 안되면 만사 제쳐 놓고 달려와서 손을 봐준다. 보통 때는 말을 잘 안하는 사람이지만, 쟌만 만나면 남편의 얘기는 끝이 없다.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어 놓고 기다린다.
나는 늘 바쁜 편이다. 운동도 해야지, 친구도 만나야지, 틈틈히 글도 써야지, 교회 일도 신경을 써야지 하루가 모자라게 돌아간다. 집에 돌아와 보면 어느땐 남편이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잠들어 있다. 그 모습이 이젠 점점 처량하게 보이고 불쌍하게 보인다.
늙어가는 부부는 예전처럼 진한 애정 표현은 않하지만, 서로를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바로 정이고 사랑이다.
"나는 참 한세상 잘 살았어"남편은 가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점점 자신의 건강에 자신을 잃어가는 남편의 푸념이요 넋두리인 것 같다.
"푸어 대디!" 아이들은 남편을 늘 불쌍하게 생각한다. 한번도 "오! 푸어 마미!"라고 말하는 아이들은 본 적이 없다. 그들에게 난 늘 씩씩하고 강한 엄마다. 우리 남편은 젊어서 일을 할 때 변변히 점심 한번 마음 놓고 사먹은 적이 없다. 늘 브라운 백에 샌드위치를 싸 가지고 다녔다.
"대디는 정말 우리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했어요"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시간이 더 많이 흘러 저희들이 우리 나이가 됐을때 그들은 지금의 우리 심정을 알까. 그것이 가끔 궁금해진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