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의 돌출행동인가. 아니면 남남갈등을 부추기기 위한 조직적인 반미테러인가.
주한 미국대사가 동맹국인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피습을 당했다. 조미수호통상조약(1882년)이후, 그러니까 한국과 미국이 국교를 튼 후 처음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특명전권대사가 공격을 당한 것이다.
꽤나 충격적이었다. 마크 리퍼트 대사가 선혈이 낭자한 채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모습부터가 그랬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의 테이블에 놓여 있는 피가 흥건히 묻어 있는 수프 그릇. 그 광경은 쇼크, 그 자체였다.
‘미국 대사 테러는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다. 그리고 뒤이은 게 종북 세력에 대한 규탄이다. ‘박제된 종북주의자 486세대의 마지막 히스테리’다, ‘3류 사이비 민족주의의 만행’이다 ‘외로운 늑대’의 시대착오 성 울부짖음이다 등등.
“NL(민족해방)노선 추종자다. 북한을 수차례 방문했고 반미시위에 앞장 서왔다. 2010년에는 일본 대사를 공격했다. 그리고 김정일이 사망하자, 분향소를 설치하려 들었다….” 미국대사 습격사건 장본인인 김기종이란 사람의 프로파일이 하나 둘 드러나면서.
그리고 닷새가 지났나.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대한민국 초유의 이 미 대사 습격사건은 한 개인의 돌출행위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한미관계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미국 내에서 반한감정이 생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미국 내 지한파라고 할까, 그런 전문가들의 말이다.
하기는 비교적 차분하기만 한 게 리퍼트 대사 습격을 대하는 미국의 언론 자세다. 한국의 언론은 대뜸 ‘테러’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공격(Attack)이란 말을 사용했다.
그러면 대한민국 수도 한 가운데에서 벌어진 미국대사 습격사건은 일과성의 사건으로 그냥 잊히어 지고 말 것인가. 관련해 새삼 주목되는 게 AP통신의 보도다.
“한국의 전통 의상 한복을 개량한 옷을 입은 그가 리퍼트 대사 근처에 있다가 급습했다.” ‘독도지킴이 우리마당’ 대표라는 직함을 지니고 있다. 반일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그런 김기종이 한복을 입고 주한미국대사를 습격한 사실, 그 상징성에 특히 주목을 한 것이다.
한국의 전통 의상인 두루마기를 입은 정치 지도자 하면 떠올려지는 인물은 김구 선생이다. 두루마기는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 자주노선을 상징하는 드레스코드가 됐다. 그 한복차림이 언제부터인가 민중노선, 다시 말해 좌파의 드레스코드가 됐다.
무엇을 말하나. 본래 우파의 덕목이다. 그런 민족주의를 좌파가 선점했다. 민족주의란 말은 반일주의와 함께 좌파에 의해 납치되고 만 것이다.
왜 AP통신은 한복차림에 주목했을까. 한국형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령이 자동으로 발동한 탓은 아니었을까.
온통 촛불 투성이였다. 그 가운데 어른거리는 것이 미친 소였다. 그 촛불시위에 한국에 동정적이던 논객들까지 돌아섰다. 이성을 상실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한국국민의 불신. 결국 촛불시위는 한국 민족주의의 표현이란 지적과 함께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령이 발동됐던 것이다. 그게 7년 전의 일이다. 그 기억을 결코 잊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미국 언론의 시각은 그렇다고 치고, 반미구호와 함께 저지러지고 있는 폭력행위, 이는 이제 한국에서도 외로운 늑대의 시대착오성의 울부짖음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한마디로 밀실공포증세가 만연한 곳이 동아시아지역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발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 등 보편적 가치에 무관심하다. 역사의 아픈 상처만 들쑤신다. 충동적이고 배타적이다. 이런 정서가 대중의 정서로 자리 잡은 지역이 중국, 일본, 한국을 아우르는 동아시아지역이다.”
싱크탱크 스트랫포의 로버트 카플란의 진단이다. 배타적 민족주의가 그 어느 곳보다 만연한 곳이 동아시아라는 이야기다.
그 배타적 민족주의가 한국에서는 민족사회주의로 전이되고 있다. 민중노선을 추구한다. 그 민중노선은 반일감정으로 이어지고 반미감정과 결합하면서 한국형 민족주의는 민족사회주의의 모습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독소적인 민족주의가 유사종교의 양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 저주, 증오, 투쟁, 원한 등의 감정을 주입시키면서.
“그렇지 않아도 기성종교는 매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이 새로운 형태의 내셔널리즘이다. 그 내셔널리즘은 일종의 집단적 불멸성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체슬로브 밀로즈의 말이다.
철지난 종북주의자의 돌출행위에 불과하다고. 아니, 결코 그렇게 가볍게 볼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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