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는 대한민국 총선이 치러지고 내후년 말에는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재외한인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역사적인 조치가 시행된 이후 재외 유권자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한 제도개선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잠정적인 미주지역 유권자 수는 86만여명. 판세를 좌우할 정도의 크기는 아니지만 박빙구도에서는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할 수도 있는 만만치 않은 숫자다.
문제는 투표 참여율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투표율은 “내가 던진 한 표가 무의미하지 않다”는 유권자들의 확신이 클수록 높아지게 돼 있다. 그런 점에서 진정 대의민주주의 정신을 살리고자 한다면 유권자들이 ‘사표 심리’ 때문에 투표장을 찾지 않는 현상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 선거관리위원회가 2016년 총선과 관련한 개정안을 지난주 국회에 제출했다. 내년 총선은 현행 선거구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일치 판결을 내리면서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한 상황. 선거구가 재편되면서 지역구는 크게 줄어들고 대신 비례대표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그렇게 된다면 거대 양당의 틈새에서 생존을 위협받아 온 소수당들의 숨통을 어느 정도 틔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 그동안 꾸준히 필요성이 제기돼 왔던 런오프(runoff)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런오프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1, 2위 득표자가 치르는 결선투표이다. 로컬선거를 통해 한인 유권자들에게도 친숙한 시스템이다.
지난 2012년 프랑스 대선의 경우를 보자. 1차 투표에서 사회당의 올랭드는 28.4%의 표를 얻었다. 2위는 현직이었던 사르코지로 득표율은 27%였다. 두 사람은 한 달 뒤 런오프에서 맞붙어 올랭드가 승리했다. 1차로 끝났어도 올랭드가 이겼겠지만 그에게는 ‘28% 대통령’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을 것이다.
1987년 직선제 이후 한국의 대선결과를 보면 왜 이 제도가 필요한지 보다 분명해진다. 지난 대선에서 51.6%를 얻은 박근혜를 제외하곤(국정원 선거개입으로 순도는 떨어졌지만) 단 한 명도 50%를 넘지 못했다. 노태우는 불과 36.64%로 대통령이 됐다.
런오프를 처음 도입한 나라는 프랑스로 1958년 우파 드골정권 시절이었다. “절대 과반수가 돼야 국민의 의사라고 볼 수 있다”고 했던 계몽사상가 루소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또 프랑스하면 다양성의 상징국가 아니던가. 런오프 덕에 후보 난립에 따른 선거결과 왜곡 우려 없이 다양한 후보들이 1차 투표에서 유권자들 앞에 나설 수 있다.
런오프는 정치적 무관심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투표율과 정치적 관심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런오프가 없을 경우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당선되기 힘들다고 여긴 유권자들은 아예 투표를 포기하게 된다. 사표 심리 때문이다.
하지만 런오프가 있다면 소수의 지지율도 연대와 타협을 통해 정치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 선진국의 투표율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유독 프랑스의 대선투표율만 80%를 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그래서 런오프에는 ‘드골이 만들어 낸 정치 명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한국 선거에도 이런 ‘정치 명품’ 도입을 고민해 볼 때가 되었다. 그동안 ‘야합’은 한국정치의 후진성을 대표하는 단어였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갈등과 담합 등 온갖 구태가 반복돼 왔다. 후보 난립으로 필패가 불보듯 뻔한 상황에서는 고육책이겠지만 유권자들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런오프는 이런 ‘야합의 정치’를 ‘연합의 정치’로 바꾸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런오프를 도입하면 민의에 따른 후보 단일화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 선거제도보다 민주주의 본질에 더 부합한다.
두 번 투표하는데 따른 비용 지적이 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위정자가 엉뚱한 데 헛돈 쓰는 어리석음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충분히 감당할 만하다. 한국 국회에서 이뤄질 논의를 통해 총선과 대선에 런오프를 도입하는 문제가 진지하게 다뤄지기를 기대한다. ‘국민의 대표’라는 타이틀에 확고한 정통성을 부여해 주기 위해서도 런오프는 꼭 필요하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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