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공화당의 시각은 사안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이민행정명령 발동권한은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남용’이라고 맹공격하면서도 대통령 스스로 제한하겠다는 전쟁수행 권한에 대해선 “왜 손발을 묶으려 하느냐”고 질책하며 전권 승인을 고집한다.
휴가에서 막 돌아온 연방의회가 주 초부터 상당히 분주하다. 국토안보부 예산을 볼모로 잡은 이민행정명령 저지를 둘러싼 대결로 한밤중 회의를 거듭하는 한편, 테러집단 IS(이슬람국가) 격퇴전쟁을 위한 대통령의 무력사용권 승인결의안 관련 청문회도 본격 개최하기 시작했다.
오바마가 의회에 무력사용권 승인을 요청한 것은 두주 전인 지난 11일이지만 IS 격퇴전쟁은 이미 6개월 전에 시작해 2,000여 차례 공습을 단행한 뒤이니 소급 승인인 셈이다. 대통령이 의회에 보낸 승인안 내용을 담은 초안엔 고심의 흔적이 역력하다. 무력사용권의 제한과 재량권을 동시에 요청했다.
격추 조종사 구출 등의 특수상황을 제외하곤 “지속적인 대규모 지상전투 작전”은 금지한다는 제한, 군사행동에 3년 시한 설정, 2002년 이라크 전쟁 당시 통과된 승인안 폐지 등을 담아 군통수권자의 전쟁권한에 제약을 가했다. 그러나 2001년 9.11 테러이후 발효된 무력사용권 승인 결의안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현재 진행 중인 IS 격퇴공습은 2001년 승인안에 근거한 것이다.
“제 손에 수갑 채우기를 제안하면서도 그 수갑의 열쇠는 남겨두었다”고 뉴욕타임스가 꼬집은 오바마의 요청은 전쟁권한에 대한 자신의 모호한 양면적 심리의 반영이기도 하고 양극화된 의회에서 최대한의 지지표 확보를 위한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스스로 강조한 것처럼 2001년 승인안에 의해 무력사용권을 갖고 있고 지난 6개월 동안 행사해 왔다. 그런데 왜 새 승인안을 요청하는가. 14년 전 작성된 승안안에 의존하는 대신 새로운 전쟁에서 헌법에 명시된 의회의 승인권한을 존중하는 한편 미 군사작전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국제사회에 과시한다는 의미가 있다.
국제문제에서 의회가 보다 강력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은 여야를 막론한 의회의 주장이지만 오바마의 요청에 대한 의회의 반응은 환영보다는 반대가 강하다. 공화당도 시큰둥하지만 심상치 않게 거센 것은 민주당의 반대다. 대규모 진보의 반란을 예고한다.
사실 오바마처럼 스스로의 권한에 제약을 가한 전임자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무력사용권을 최대한으로 행사하려 했다. 해리 트루먼은 의회에 전쟁선포권을 요청하지 않은 채 한국전에 미군을 파견했고 린든 존슨은 통킹만 결의안에 시한을 설정하지 않았으며 빌 클린턴은 의회 승인 없이 코소보 전쟁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번 오바마 초안에 대한 양당의 불만에도 각각 일리는 있다.
민주당 의원들의 고민은 ‘반전’ 신념에서 출발한다. 상당수가 이라크전 반대 여론의 지지로 워싱턴에 입성한 이들에게 오바마의 초안은 대통령의 전쟁권한을 너무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백지수표’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지상군 투입을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오바마의 약속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시작되면 그 자체만의 논리와 모멘텀으로 전개되는 전쟁의 속성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급진 리버럴 의원들까지도 자칫 제3차 이라크전쟁의 수렁으로 빠져들지 않을까하는 우려와 잔혹한 테러에 대처해야할 의무, 자신들 못지않게 전쟁을 반대해온 자당 대통령에 대한 충성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한다.
공화당 의원들의 비판은 오바마에 대한 불신을 배경으로 한다. 격퇴시켜야할 적의 실체에 대한 확신도, 철저한 대응 의지도 결여되었다고 지적한다. 현실적으로 지상군 투입 없이는 테러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믿는 공화당 의원들은 제한된 권한만을 원하는 오바마가 승리 의지도 없이 소극적으로 치르는 전쟁에서 실패할 경우 공화당이 그 책임을 공유해야할 것도 불편해한다. 두 개의 승인안이 아직 유효한데 새 승인안을 통과시켜야 하느냐는 반문까지 나왔다.
민주당은 오바마의 초안에 더 제한을 가하려 하고 공화당은 제한을 대폭 줄여 전권을 허용하려 한다. 양 진영의 합의가 이루어져야 승인 결의안이 작성되고 상하 양원 본회의에서 표결에 회부된다. 요즘처럼 양극화된 의회에서 초당적 승인 결의안이 작성이나 될 수 있을까.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은 “당파적 대결의 와중에서 무산되지 않기를” 희망했다.
양당의 반대에 대해 백악관도 별 입장표명이 없다. 누구도 별로 서두는 기색이 없다. 승인안의 지연이나 무산이 현재 진행 중인 IS 격퇴전쟁에 실질적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 하원 외교위 청문회에 참석한 존 케리 국무장관은 오바마 테러전쟁의 목표는 IS의 ‘약화와 파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지난 주 이라크에 다녀온 민주당 세스 몰턴 하원의원은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테러리스트들이 날뛰는 그곳에서 미국의 노력이 얼마나 낭비였는지를 목격하며 절망스러웠다”고 전했다.
IS에 대대적 공격을 가할 4~5월 모술 탈환작전의 승리에 대한 회의론이 벌써부터 대두되는 것이 현지의 상황인데 몰턴의원은 “IS 격퇴에 설사 성공한다 해도 이라크정부가 제 기능을 못하면 그 정치적 진공상태에서 또 다른 테러집단이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덧붙여 묻는다. “그런데 그곳으로 또 가려 하는가”
오바마 테러전쟁의 현주소는 아직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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