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출가에 따라 다른 매력 흥미... 현재 ‘거울 뒤의 앨리스’ 작업 중
▶ ‘그로마이어상‘ ‘쇤베르크상’ 수상… 세계 최고 반열에
랠프 스테드만의 ‘흰 토끼’ 일러스트레이션.
현대 음악계가 신작을 가장 기다리는 작곡가 진은숙. <사진 Priska Ketterer>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작곡가 - 진은숙]
2년 전 ‘그래피티’초연 차 LA를 방문한 진은숙씨를 인터뷰했을 때,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이하 ‘앨리스’)가 2015년 LA 필하모닉에 의해 미 서부 초연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었다. 펄쩍 뛰며 흥분한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지났고, 그렇게도 기다리던 공연 날짜가 내일과 모레(2월27, 28일)로 다가왔다.
진은숙의 작품 초연에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네 번째인데, 이 오페라는 좀 더 특별해서 근래 이렇게 흥분해 보기도 처음인 것 같다. 공연을 앞두고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질문 하나하나마다 얼마나 성실하게 답변해 주었는지 그 내용을 다 옮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놀라운 것은 한국어로 질문서를 보냈는데 영어로 답변을 보내온 것이다. 한국어가 모국어이고, 독일에 오래 살아 독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영어까지 고급 문체로 완벽하게 소통하는 것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LA 필하모닉 초연은 수산나 말키(Susanna Malkki)가 지휘하고, 네티아 존스(Netia Jones)가 연출·의상·조명·디자인을 총지휘하며, 앨리스 역은 이 역을 여러 번 노래한 라셸 길모어(Rachele Gilmore)가 맡는다.
워낙 다양한 동물들이 나오기 때문에 출연자도 많은데 바리톤 윤기훈이 사형집행인과 오리 역으로 출연하고, LA 오페라코러스와 LA 어린이합창단도 나온다. 티켓은 이틀 공연 모두 오래 전에 거의 매진됐고, 아주 시야가 좋지 않은 자리만 몇 개 남아 있다.
www.laphil.com, (323)850-2000
- ‘앨리스’는 원래 LA 오페라의 위촉작이었는데 독일에서 초연됐고, 8년이나 지나서야 LA에서 공연하게 됐습니다. 작곡가로서 감회가 어떤지요?
▲ 오페라보다 먼저 쓴 ‘앨리스’ 연작가곡(‘snagS&Snarls’)이 2006년 LA 오페라와 켄트 나가노 음악감독에 의해 오하이 페스티벌에서 초연됐습니다. 하지만 전체 오페라가 LA에서 공연되기는 처음이니 당연히 홈커밍 느낌이 있지요. 굉장히 기대가 크고, 그동안 나의 음악들(‘그래피티’ ‘수’ ‘칸타트릭스 소프라니카’)을 훌륭하게 연주했던 LA 필하모닉이 이 오페라를 공연하게 돼 굉장히 기쁩니다.
- ‘앨리스’를 여러 곳에서 공연했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프로덕션은 무엇인지요?
▲ 아직 LA 프로덕션은 보지 못했지만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힘 프라이어(Achim Freyer)가 뮌헨 초연 때 연출했던 프로덕션입니다.
그것은 나의 구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고, 프라이어는 나의 무대적 지시를 거의 통째로 바꿔버렸어요. 하지만 매우 심리학적이었던 그의 프로덕션은 위대한 예술이며 매혹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그 이미지들은 절대로 잊히지 않는 것들이어서 지금도 내 마음을 떠나지 않습니다.
- 오페라와 프로덕션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세요.
▲ 오페라는 아주 복잡한 기계와 같습니다. 작곡가는 자기 작품과 무대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갖고있죠. 그런데 거기에 연출가가 들어와 아주 다른 무대를 만듭니다. 그의 비전이 강렬하고 일관성이 있을 때는 작곡가의 생각과 모순되더라도 작품에 또 다른 레벨이 더해집니다. 프라이어의 케이스가 그랬어요. 한 작품이 여러 프로덕션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은 매혹적이죠. 중요한 것은 퀄리티입니다.
- 디즈니홀은 오페라하우스가 아니라 콘서트홀이고, 여기서 영상을 이용한 전혀 새로운 스타일로 공연하게 됩니다.
▲ 특별한 공연장인 디즈니홀에서 나의 오페라가 공연되는 것이 무척 흥분됩니다. 라이브 공연이 멀티미디어, 인터렉티브 매체와 함께 하는 네티아 존스의 프로덕션도 굉장히 기대되죠. 따지고 보면 ‘앨리스’도 대체현실이며 신기루와 미로들로 가득 찬 상상의 세계입니다. 보이는 그대로인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매일의 현실과 물리법칙은 부조리, 역설, 그리고 꿈같은 논리의 비약에 의해 초월되는 것이니까요.
- ‘앨리스’는 동화지만 성인들도 매혹되는 소설입니다. 작곡가에게 ‘앨리스’는 어떤 작품인가요?
▲ ‘앨리스’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나이와 문화를 떠나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세계적인 문학이라는 점이죠. 시공을 초월하는 너무 많은 차원과 수많은 레벨이 그 안에 있습니다. 철학자, 심리학자, 수학자, 신경심리학자, 양자물리학자, 물리학자, 영화인, 모두 앨리스에 깊이 빠져버립니다. 그런데 아이들도 이 책을 읽어요. 굉장히 드문 일입니다.
- 현재 작업 중인 ‘거울 뒤의 앨리스’는 어떤 오페라이며 어디서 초연하게 됩니까?
▲ 2018~19시즌에 런던 로열 오페라에 의해 초연됩니다. ‘거울 뒤의 앨리스’ (Alice Through the Looking-Glass)는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이는 세상을 그리고 있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보다 더 추상적이고 수학적인, 훨씬 더 어려운 작업입니다. 하지만 원론적으로는 같은 이야기로서 상상의 세계와 대체현실이 우리의 인식세계와 벌이는 충돌에 관한 것입니다.
- 그 외에 지금 쓰고 있는 음악은 무엇입니까?
▲ 지난해에 2개의 초연이 있었어요. 하나는 ‘사이렌의 침묵’으로 내가 상주 작곡가로 있는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사이먼 래틀 지휘, 바바라 해니건의 노래로 초연됐습니다. 또 하나 ‘클라리넷 콘첼토’는 알란 길버트 지휘로 뉴욕 필하모닉이 초연했지요.
지금 쓰고 있는 곡은 새로운 오케스트라 피스 ‘마네킹’(Mannequin)인데 4월에 런던의 사우스뱅크센터에서 초연되고 보스턴 심포니를 비롯한 다른오케스트라에서도 공연됩니다.
- 작곡에 영감을 주는 새로운 자극을 어디서 찾습니까?
▲ 작곡하는 과정은 굉장히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몇 주 동안이나 텅 빈 종이를 노려보기만 할 때도 있고, 시작부터 안 되거나 여러 번 지연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또 갑자기 돌파구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런 모든 것들은 정말 예측할 수가 없답니다. 연주만 하는 음악인들이 부러워요. 물론 그들이 하는 일도 굉장히 어렵겠지만, 적어도 완성된 악보를 놓고 시작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나에게 작곡이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추상적인 과정입니다.
■ 작곡가 진은숙은 누구
진은숙(53)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작곡가의 한 사람이다. 피아노를공부하다 서울대 음대에서 강석희 교수에게 작곡을 배운 그는 독일로 유학, 세계적인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를 사사했으며 1985년 권위 있는 가우디아무스작곡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2004년 ‘바이얼린 협주곡’으로 음악계의 노벨상 ‘그로마이어상’을 수상, 세계 최고의 작곡가 반열에 오른 진은숙은 2005년 생존 작곡가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상인 ‘아놀드 쇤베르크상’을 수상했다. 사이먼 래틀(베를린 필 상임지휘자)이 ‘세계작곡계를 이끌 차세대 5인 중 한 명’으로 지목한 바 있는 그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독특한 음악 스타일로 세계 음악계의 열광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진은숙이 20여년 전부터 음악적 영감을 받아 왔던 텍스트로,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연주되는 ‘말의 유희’도 이 동화를 소재로 한 것이다. ‘앨리스’를 꼭 오페라로 만들고 싶었다는 그는 “나의 모든 경험을 농축시켜 집어넣을 수 있는 오페라, 현대 오페라와 뮤지컬의 중간쯤 되는 작품, 고도로 지적이면서 동시에 아주 단순하고 청중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원래 LA 오페라 위촉작이었다(대본은 극작가 데이빗 헨리 황). 그런데 켄트 나가노 음악감독이 독일 바바리안 스테이트 오페라로 옮기면서 이 작품을 가져가 2007년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세계 초연했다. 280년 역사의 바이에른 오페라극장에서 여성 작곡가의 작품이 개막작으로 초연된 것은 처음이며, 유럽 주요 오페라극장에서 한국인의 작품이 초연된 것은 1972년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 이후 35년 만이었다.
독일의 오페라 전문지 ‘오페른벨트’가 2007년 ‘올해의 초연작’으로, LA타임스가 2007년 베스트의 하나로 꼽았던 ‘앨리스’는 이후 스위스 제네바 등세계 여러 곳에서 공연됐고, 미국에서는 2012년 세인트루이스 오페라가 초연했다. 이번 LA 필 프로덕션은 공연 후런던으로 가져가 3월8일 바비칸 홀에서 BBC 심포니 연주로 영국 초연된다.
<정숙희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