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은근히 마음 한 구석이 켕긴다. 창문이 조금 흔들려도 바람 탓 같지 않고 자동차가 달리다가 한쪽으로 쏠려도 부주의 운전 탓 같지 않다. 시애틀 북쪽 산골마을 오소가 작년 3월 산사태로 쑥대밭이 됐을 때도 “호우 탓이 아니고 혹시?…”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었다. 금방 지진이 일어나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다는 뉴스가 신문에 날 것 같다.
한국일보가 다운타운에서 노스 시애틀로 이전한 직후인 2001년 2월28일 니스퀄리 지진이 워싱턴 주를 흔들었다. 신문사 건물지붕이 마치 파도처럼 들썩였다. 그 7년 전인 2004년 1월엔 더 끔찍한 노스리지 지진을 겪었다. 새벽에 집이 굉음을 내며 무너질 듯이 흔들려 혼비백산했다. 남가주의 집이 진원지인 노스리지에서 멀지 않았지만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일본 동북구 미야기 현에서 초강력(진도 9.0) 지진이 전대미문의 쓰나미를 유발시킨 것도 4년 전 이맘때였다. 모두 1만 5,878명이 죽고 2,713명이 실종됐다. 그 지역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누출된 방사능으로 해수가 오염돼 일본산 생선이 외면당하고 있다. 그때 바다로 쏟아져 나온 쓰레기들이 태평양을 건너 요즘도 미국 서해안에 심심찮게 상륙한다.
워싱턴주 최악의 자연재해였던 오소 산사태로 주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에 싸여 있을 때 공교롭게도 3D 재앙영화인 ‘폼페이’가 상영됐다. 로마의 번창한 항구도시였던 인구 1만여명의 폼페이가 인근 베수비우스 산의 폭발(AD 79년)로 지상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그린 이 영화는 노예 검투사와 귀족 딸이 부둥켜안은 채 화산재에 파묻혀 죽는 장면으로 끝난다.
최고 20피트 두께의 화산재 속에 1500년간 묻혀있던 폼페이의 일부 유적이 1599년 우연히 드러났다. 주민 2,000여명이 화씨 570도의 용암과 화산재에 생매장 됐었다. 걸어가거나 일하다 죽은 사람도 있고, 사원 참배나 데이트 도중 횡사한 사람도 있었다. 발굴자들은 사체가 묻혀 있던 화산재의 공동에 석고를 부어 이들이 비명횡사한 순간의 모습을 재현했다.
영화 ‘폼페이’는 석고모형 중 부둥켜안고 죽은 남녀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폴 앤더슨 감독이 독일-캐나다 합작으로 만들었다. 화산폭발에 앞서 지진으로 땅이 갈라져 사람과 말이 함께 함몰되고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쏟아지는 등 3D의 스펙터클한 장면은 볼만하지만 출연배우들의 엉성한 연기와 특히 스토리의 역사적 사실성 결여로 졸작이라는 비평을 들었다.
그런데, 그 영화에 버금가는 스펙터클한 전시회가 지금 시애틀 다운타운의 퍼시픽 과학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폼페이: 그 전시회’라는 타이틀로 5월25일까지 계속되는 이 마지막 미국 순회전시회는 폼페이의 비극은 물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2000년 전 까마득한 옛날 세계를 지배했던 ‘팍스 로마나’의 융숭한 문물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귀한 기회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로마시대의 조각 작품, 미술품, 가구, 보석, 화폐, 장신구, 연장 등 150여점의 유물과 석고로 뜬 6구의 인체 모형물을 볼 수 있다. 부둥켜안은 남녀모형은 없다. 별도로 스크린이 설치된 ‘극장’에선 방문객들이 자욱한 연기와 흔들리는 바닥 등 시청각 효과를 통해 2000여년 전 당시 폼페이 주민들이 겪었을 대혼란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서북미는 지진다발 지역이다. 지난 2주간에도 워싱턴-오리건 지역에서 152 차례(최고 진도 3.4)나 감지됐다. 지진과 동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산도 지척에 있다. St. 헬렌스 산이 1980년 5월18일 폭발해 57명의 사망자를 냈다. 수 만년간 되풀이 폭발해온 레이니어 산(눈산)은 1890년대 마지막으로 터졌다. 둘 다 재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활화산이다.
워싱턴대(UW)의 태평양-서북미 지진네트워크(PNSN)는 엊그제 지진 조기경보 시스템을 정부 관계기관과 일반기업체에 시험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보가 지진을 예방하지는 못한다. 각자 평소 지진대피 훈련과 비상용품 비축 등 준비를 해둬야 한다. 이를 전시회를 통해 세계에 알리는 폼페이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 지진과 화산이 살아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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