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면 이상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듣기 거북하고 어려운 음악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냐는 것이다.
맞다. 현대음악은 어렵고 듣기 불편하다. 쉽게 말하면 ‘멜로디도 박자도 없이 괴상한 음과 리듬이 난무하는 소리’, 어렵게 말하면 ‘전통조성을 벗어난 화음기법, 변형된 화성구조, 박자의 변화가 가져온 추상적인 다성음악체계’다.
기악이나 관현악 곡만 그런게 아니라 성악과 오페라도 마찬가지여서 어떤 때는 노랜지 괴성인지 발성연습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간격 넓은 불협화음을 횡행하는 ‘노래’를 계속 들으며 귀가 혹사당하기도 한다.
고전음악이 ‘쾌’라면 현대음악은 ‘불쾌’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현대음악 연주회에 갈 때는 혼자 가는 일이 대부분이다. 아무도 같이 가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웬만한 음악회에 잘 따라다니는 아들도 프로그램이 콘템퍼러리 뮤직이라고 하면 슬그머니 빠진다. 왜 꼼짝 없이 앉아서 고문을 당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현대음악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나를 가만두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감성과 이성과 지성에 도전하며 온통 들쑤셔놓는 그 파격이 나를 매혹시킨다. 때문에 현대음악 연주회에서는 좀체로 조는 일이 없다. 예기치 못한 음들이 마구 튀어나오기 때문에 졸기는커녕 용을 쓰며 듣다보면 ‘음악을 감상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애를 쓰며 감상해야하는 음악을 자꾸 듣다보면 나에게 도전하지 않는 음악은 어쩐지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귀에 익숙한 고전음악을 듣노라면 어느 틈엔가 감상보다는 딴생각을 하게 되기 일쑤인 것이다.
현대음악 중에도 20세기 초반의 모던 클래식(근대음악)은 참 아름답다. 사실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바르톡, 베베른 등의 음악은 지금 수준으로 보면 현대음악도 아니다.
하지만 이들로부터 시작된 무조음악과 음렬주의가 100년 동안 진화하면서 전위음악과 미니멀리즘을 거쳐 오늘의 현대음악을 형성했고, 지금은 전자음악과 컴퓨터음악,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음악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 행위와 음악의 경계도 없어졌는데 얼마전 리처드 용재 오닐이 카메라타 퍼시피카와 함께 연주한 비올라협주곡 ‘인 아더 워즈’(후앙 루오 작곡)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여기서 용재는 인간의 소리가 아닌 괴성을 지르며 비올라를 연주한다. 다른 연주자들도 움직이거나 목소리를 내고 부채로 얼굴을 가리기도 하는 등 일반 클래식 음악회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 연출된다.
LA 필하모닉 단원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조셉 퍼레이라(타악기 수석)는 작곡가이기도 한데, 언젠가 그의 연주회에 갔더니 웃통을 벗은 채로 타악기들을 두들기다가 한 움큼의 쌀을 악기와 무대에 흩뿌리며 공연하는 일종의 행위예술을 선보여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현대음악을 불편해하는건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일지도 모른다. 18~19세기 서유럽클래식 같은 것이 음악이라는 생각을 우리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 더해지면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불협화음에 대해선 귀를 닫아버리는게 당연하다.
음악은 소리를 재료로 하는 시간예술이다. 그 소리에는 모든 것이 포함되고, 현대음악은 소음까지 포함시킨다. 현대의 작곡가들이 쾌하지 않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현대사회가 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음악이 나오던 시대와 지금 시대는 세상이 천지개벽한 것처럼 다르다.
자동차, 비행기, 전화, 냉장고, 오디오, 컴퓨터, 인터넷… 불과 100여년전만 해도 세상에 없던 것들을 지금 우리는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끝을 모르고 진화하는 기계문명, 빠르고 복잡하고 스트레스 심한 삶, 하루 종일 땅을 밟아볼 수 없는 콘크리트 건물 속의 작곡가들에게서 모차르트처럼 조화로운 형식에 맞춘 음악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싫은 음악을 억지로 들으시란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시대 음악가들이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마음과 귀를 열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다음주(2월27~28일) LA필이 초연하는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3월8일 LA 매스터코랄이 초연하는 백낙금의 ‘계승’은 다시 만나기 힘든 기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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