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버스가 어느 집 앞에서 멈춘다. 휠체어의 젊은 여자를 태우고 재활치료소로 가는 모양이다. 이 여성은 루게릭병을 앓고 있다. 뉴욕 양키스의 유명한 야구 선수였던 루 게릭이 이 병을 앓아서 붙여진 이름이고 현존 유명인으로는 우주 블랙홀의 생성이론과 그 기능을 설명한 스티븐 호킹 박사가 있다.
이 병은 운동신경 세포에 이상이 생겨 몸 전체의 근육들이 하나하나 위축되고 종말에는 음식을 삼키고, 말하고, 숨 쉬는 근육들을 마비시켜 심한 고생을 하다가 보통 10년도 못 넘기고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반면 지각신경은 죽음 직전까지 말짱하여 더 고통을 받는다. 병의 확실한 원인은 모르지만 유전성이 강하므로 집안 내력을 잘 살펴보고 진단과 치료를 해야 한다.
너싱홈에 루게릭병 환자들이 종종 있다. 거의 모두 신체적 고통으로 오는 불안, 두려움, 우울, 분노, 자살경향이 있어 정신과 의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나에게 의뢰된 젊은 여성 환자는 입 주위 근육의 운동신경 손상으로 말을 하려고 하면 신음하는 것 같고 가끔 말이 터지지 않아 고함을 치듯 얼굴을 찡그린다. 그러나 손발에 약간의 운동신경 기능이 남아있어 글씨를 써서 대화를 나눈다. 환자의 유일한 취미는 책을 읽는 것이다. 평균 일주일에 한번은 음식을 삼키다 질식하거나 한밤중에 갑자기 숨이 막혀 응급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우리가 장애인을 대할 때면 연민과 동정심이 생긴다. 그냥 안 됐구나 하는 감정만 가지는 사람도 있고 불쌍하다는 감정을 넘어 행동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다. 신경생물학적으로 우리의 뇌에 거울 뇌신경세포(Mirror neuron)가 있어 다른 사람이 괴로워하면 자신도 괴롭게 느끼도록 유도한다. 성서의 굿 사마리탄은 거울세포가 많은 사람에 속한다.
사회적으로 동정심은 또한 사치가 아니라 인간이 되기 위한 필수 요소(달라이 라마)이며 진화론적으로도 인간에게 동정심이 없었으면 인간성도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개인 중심적이고 감정적으로 지쳐있는 현대사회는 동정심에 대한 관심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 장애인을 불쌍하게 여기면서도 장애인 시설이 동네에 들어오려고 하면 한사코 반대한다. 또한 어느 사회에나 신체적, 지적, 정신적 장애인만을 골라 욕심을 채우려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반사회적 인격이나 자애성 인격 소유자지만 개중에는 사회적 지위와 명망을 지닌 사람도 간혹 있다. 아마 심한 스트레스를 벗어나 유혹적인 삶의 스릴을 맛보려는 충동적 행동이란 생각이 든다.
너싱홈 루게릭병 환자의 증세가 몇 주 동안 나빠졌다. 응급상황도 자주 생기고 더 초조하고 불안해 보였다. 이유를 물어도 아무 일 없다고만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기억력이 오락가락하는 옆 치매환자로 부터 “어느 남자가 저 여자를 만졌다”는 말을 들었다. 환자복만 걸친 신체적 장애를 가진 여자환자를 만지기는 쉬운 일이다.
치매환자가 지적한 남자는 고위직에서 은퇴한 자원봉사자로 환자들을 잘 돌보아 병원에서 존경받는 분이다. 그는 가끔 루게릭병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밖으로 나가곤 했다.
CCTV가 병원 복도에만 있지 환자들의 방안에는 설치되지 않아 증거도 없다. 유일한 목격자가 치매환자다 보니 조사를 한다 해도 자원봉사자 말을 믿게 되어있다. 그러나 치매환자라도 아주 심한 케이스가 아니면 가끔은 기억이 되살아나 정상적 대화를 하는 경우를 본다. 일반적으로 성적학대 희생자들은 부끄러움과 자신의 잘못이란 자책감 때문에 그냥 가슴에 묻어두고 만다. 너싱홈 루게릭 환자도 부인은 하지만 병원 측과 의료진은 치매환자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대안이 별로 없어 자원봉사자를 조용히 불러 병원에 나오지 말라고 부탁했을 뿐이다.
장애인들, 특히 시설에 상주하는 장애인들은 주위 사람들로 부터 신체적 정신적 성적 학대나 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매우 심각한 법적 사회적 문제지만 대부분의 케이스는 쉬쉬하며 관계기관에 보고도 되지 않은 채 넘어간다.
우리 모두는 진정한 동정심(Compassion-라틴어로 ‘함께 고통받는다’는 의미)을 품고 장애인들을 대해야 한다. 자신과 타인을 일심동체가 되게 하는 거울세포들이 많은 인슈라란 뇌 영역을 활성화하는 약물의 등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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