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몬트리올’ 중세 흔적 녹아든 북미의 파리
■ 몬트리올(Montreal)
캐나다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몬트리올로 가는 길이다. 몬트리올이란 이름은 불어인 몽 헤알(Mont Real)에서 파생됐다. 북서쪽으로 145Km(캐나다는 마일 대신 Km사용) 1시간30분 거리다. 가는 길이 옥수수 밭의 연속으로 참 평화롭고 목가적이다.
몬트리올은 오타와 강과 세인트로렌스 강이 합쳐지는 지점인 몬트리올 섬에 위치한도시다. 캐나다 동남부인 퀘벡 주의 항구도시로 밴쿠버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모피 교역과 상공업의 중심지이자 유럽과 캐나다 각지를 연결해주는 교통의 중계지고. 프랑스계 주민이 압도적으로 많고 언어도 불어가 상용이다.
거리 표지판에도 남쪽은 Sud 북쪽은 Nord다. 도로는 6차선인데 중앙분리대가 예쁜 화단들로 꾸며져 도시의 얼굴에 곱상함을 보탠다. 가로수들은 역시 단풍나무가 많다. 참나무와 플라타너스가 주종인 뉴욕 주랑 달리 Silver Maple과 Norway Maple이고 Siberian Elm(느릅나무)도 많다.
몬트리올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양분돼있다. 구시가지인 올드 타운 자끄 까르띠에 광장으로 갔다. 약간 아래로 경사진 곳인데 일요일이라 사람들로 넘쳐난다. 거리에 면한 아담한 건물들이 오밀조밀하니 고풍스럽다. 어찌보면 촌스러울 야한 색깔을 입힌 창문들, 창문가의 꽃 화분 장식들, 한 마디로 다 예쁘다. 간판들도 색깔배합염두를 기본으로 했다.
가로등조차 검은 색의 쌍 등으로 옛날 영화에 나오던 가스등 같다. 식당과 카페들이 노천테이블을 내놓아 얼핏 파리분위기를 풍긴다. 초상화나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미술가들도 파리지앵 분위기다. 길바닥도 경박한 아스팔트대신, 파리의 샹젤리제거리처럼 각진 사각 돌로 포장된 로마식 가도라 고풍스럽다. 중세의 흔적이 녹아든 도시다. 북미의 파리라고 할만하다.
길 하나 두고 있는 신시가지엔 고층 현대식 빌딩들이 도열해있다. 밋밋한 마천루보다 무게 있는 고딕식이라 기품 있고 중후한 인상이 온다. 빌딩 사이사이로 분수와 동상들이 중세의 흔적에 스며든 거리의 격조를 더 살려주고 있다.
거리의 악사가 70년대 흘러간 팝송을 기타를 치며 메들리로 부른다. 아! 내가 좋아하는 ‘당신은 나의 모든 것
’ 도 부른다. 중년의 가수가 들려주는 귀에 그립던 노래들로, 오랜만에 로맨틱한 분위기에 젖어봤다.
상점의 쇼윈도엔 역시 로렌시아 고원에서 직접 만든다는 단풍모양의 병에 들어있는 단풍(Maple)시럽이 압도적이다. 그런데 기념셔츠들에 새겨진 글귀가 I’ ♥ Montreal이 아니고 J’ ♥ Montreal이다. 얼핏 I가 J로 잘못 인쇄됐나 생각했다가 불어란 짐작이 갔다. 불어로 I Love가 Je T’aime 란 걸 나중에 알았다.
신시가지라 관공서 건물이 많다보니 캐나다 국기가 여기저기서 휘날린다. 이상하게 흰 바탕에 청색으로 십자가 그려진 깃발이 감초처럼 끼어있다. 적십자 깃발도 아니고 뭔가 궁금해 했더니 퀘벡 주의 주기란다.
캐나다에서 분리탈퇴하려는 의지와 역사가 길다보니, 거의 불어표지판에다 주 깃발들이 저렇게 당당하게 펄럭인다. 산 능선이라 몬트리올 시내의 조망이 좋은 몽 로얄(Mont-Royal)공원으로 갔다. 나즈막한 동산 위지만 몬트리올에서 제일 높은 지점에 위치한 ‘성 요셉 성당’의 위용이 범상치 않다.
캐나다 수호성인인 성 요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북미의 성지이자 기적의 성당이다. 꼭대기 돔의 높이만도 97m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136m에 이어 두 번째 규모다. 르네상스 건축양식에 로마식 표현 형식을 곁들인 바로크시대 건물스타일이다.
그런데 고매한 성당 앞 잔디밭을 보다 질겁했다. 거의 상반신 누드로 일광욕하는 것까진 자유라 치자. 목하 연애 삼매경에 빠진 연인들의 애정행위가 영화장면처럼 적나라하다. 머리 위에 경건하고 엄숙한 성당이 내려다 보는데 껄끄럽지도 않나. 민망스러워, 고개가 돌려졌다. 숲에서 올라온 간 큰 너구리가, 감정표현에 적나라한 저 연인들 마냥, 사람들 시선에 안하무인이다. 겁 없이 군다고 귀엽다고 먹이를 줬다간 자그마치 1000불짜리 티켓감이다.
공원을 등지고 서서 멀리 아래쪽 로렌시아 강과 예쁜 다리를 눈에 담는다. 비취색 둥근 지붕의 건물이 눈을 확 사로잡는다. 1970년, 양정모 선수가 레슬링으로 금메달을 따서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태극기가 일순위로 올라갔던 바로 그 올림픽 스타디움이다. 그 당시 금메달 승전보에 온 국민이 얼마나 목메어했던가. 감격했던 그 순간이 상기돼 가슴이 찡해온다.
빙하와 백곰을 형상화해 지은 거라는데 원반 같은 지붕과 색상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우리와 연관된 값진 기억으로 친근감이 간다. 안타깝게도 45도 기울어지고 있다지만, 눈과 마음에 새기느라 보고 또 봤다.
버스를 타러 공원의 맞은편으로 길을 건넜더니 공동묘지다. 나무들이 우거지고 평지에 낮은 비석들만 있어 음침하고 으스스한 대신 아늑하고 평화롭다. 시 중심에, 유명한 공원과 성당아래 있으니 공원의 일부로 여겨진다. 길 하나 건너엔 산 자들이 선탠 중이라며 누드 가슴으로 엎드려있다. 지척간인 여기 밑엔 죽은 자들이 반듯하게 누워있다.
땅의 연장선상에서 어떤 자세로 누웠나, 땅위냐, 땅속이냐의 차이뿐이다. 삶과 죽음은 지척간이라는 깨우침을 상기시키려는 의도로 이 장소를 택했나? 유감인 건 묘지의 아래쪽은 서민들 묘지고 위쪽은 부자들 묘지라서 비석 등 모든 면에 급이 다르단다.
같은 지역의 땅속이라 땅의 질엔 등급이 없을 텐데 왜 굳이 구별해놓아야만 했을까. 왜 인간들은 하등 무의미한데까지, 죽어서까지, 등급을 나누지 못해, 편 가르고 패 나누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 똑같이 빈손으로 태어나 갈 땐 다 같이 빈손인데 말이다.
저녁을 먹고 호텔에 짐을 놓은 다음 친구들과 산책길에 나섰다. 자전거거치대가 요소요소라 색다르다. 1970년대쯤에서 멈춘 것 같은 몬트리올의 분위기에 젖어보고자 발길 닿는 대로 꽤나 오래 걸었다. 높은 빌딩 군에 싸인 시내중심가임에도 적막하고 깨끗하다.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없어 더 조용하다. 오랜 세월 이어진 프랑스문화와 캐나다의 감성이 혼합된 매력적이고 기품 있는 도시다.
오랜만에 이국의 정취에 빠지다보니 늘 보던 밤하늘도 달도 별도 달리 다가온다. 김소월은 ‘저 달이 이제금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읊었지만, 지금 내겐 저 달은 그리움이다. 영국 시인 토마스 흄의 <가을>이란 시구절도 떠올려진다.
‘가을밤에 싸늘한 감촉/밖으로 나서니/얼굴이 붉은 농부처럼/불그레한 달이 울타리 너머로 보고 있었다/ 나는 말을 건네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가장자리에는 생각에 잠긴 별들이/도시의 아이들처럼 창백했다.’
이역에서 보낸 마지막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기억은 머리로 느끼지만 추억은 가슴으로 느끼는 거란다. 언젠가 그리울 오늘 밤, 내 인생의 보너스 같은 시간이자 추억이다.
■ 오저블 케이즘(Ausable Chasm)
새벽 기상도 아닌 느긋한 날이다. 맥도널드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면세점에 들렸다. 한민족에게 ‘감격시대’를 선사해줬던 기념으로 올림픽 스타디움 마그네틱만 몇 개 샀다.
미국행 입국장에 서있는 노란기둥은 체온과 맥박 검사로 불법체류자인가 아닌가를 선별한단다. 까다로운 출국심사가 없으니 역시 내 집으로 가는 길은 다르다. 미국 땅으로 들어선 순간, 푸근하고 안도감이 든다. 사는 곳도 고향이 되나보다.
곧장 뉴욕으로 안가고 오저블케이즘이란 데를 들렸다. 오저블케이즘은 뉴욕주 최고 휴양지로 북부 산악지대에 자리 잡은 동부의 삼림욕장이다. Ausable Forks지역을 거쳐 흐르는 Ausable 강의 협곡에 있다. 약 2억 년 전에 형성된 거대한 협곡은 래프팅을 즐길 정도로 물길이 아주 급하고 센 여울이 많다. 백미는 협곡의 장관 사이사이에 조성된 트레일을 걸으며 자연의 신비와 아슬아슬함에 빠져보는 거다.
입구 쪽 옆으론 샛강이 흐르는데 넓고 낮은 계단식폭포 또한 압권이다. 그 샛강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도 참 단아하고 시골스럽다. 다리 위론 난간 외에 어떤 구조물도 없다. 대신 다리 아랜 반원형의 철 구조물이 다리 양쪽을 이었다. 다리 밑과 철 구조물공간엔 철 기둥들이 일렬로 도열했고. 퍼뜩 ‘콰이 강의 다리’를 연상시키지만 훨씬 더 예쁘고 계곡 또한 깊다.
산책로로 접어드니 편무암과 사암의 수직형 절벽들과 까마득히 아래로 쏟아지는 급류가 심상치 않다. 가슴이 순식간에 요동친다. 그래도 미동부의 그랜드 캐넌이니 브라이스 캐넌이니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내가 캐넌을 직접 보기 전이었다면 두 캐넌의 축소판이란 평을 당연히 인정했을 거였다. 그만치 이제껏 봤던 그 어느 계곡보다 기암절벽과 주상절리들이 거대하고 늠름했으니까. 협곡도 아찔할 만큼 깊었고 물살도 무서운 속도로 곤두박질치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의 두 캐넌에 갖다 붙이기엔 웅대한 규모면에서 역부족이다. 맛이야 다르지만 캐넌들이 알면 다소 모욕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요리조리 돌아가는 통나무길 산책로는 곳곳에 설비된 전망대와 함께 스릴만점이다. 간간히 까마아득한 아래 여울목에서 휘도는 황토급류를 응시하니 자칫하면 물속에 빨려 들어갈듯 아찔하다. 시야를 멀리 해 관망하면 도도하고 오만한 협곡의 자태가 ‘인디아나 존스’마냥 탐험가기분이 들게도 해준다. 산책코스가 끝나니 빨강색의 꼬마버스가 입구까지 공짜 서비스다. 여행 끝의 여운 있는 마무리론 손색이 없다.
며칠 동안 정들었던 우리버스로 갈아탔다. 어느 여행기에선가 은희경이, ‘여행은 낯선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탄력의 게임’이라 했다. 인제 나도 게임을 끝내고 진짜 집으로 가는 길이다. 추억을 가졌다는 한 가지만으로도 가치 있는 인생이란다. 이번 여행으로 가슴 한 쪽에 간직할 추억이 추가됐다. 그럼 인제 내 인생도 조금은 값있어졌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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