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르사이유 궁 재현 100만달러... 합창단 등 80여명 출연 최대
▶ 마리 앙투아네트에의 헌사... 코믹·침울 넘나드는 음악 압권
마리 앙투아네트는 용서를 통해 평화를 찾고 보마르셰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코믹 오페라의 절정을 이루는 터키 대사관 장면. 패티 루폰이 사미라로 등장한다.
[LA 오페라 ‘베르사이유의 유령들’ 개막]
7일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개막된 LA 오페라의 ‘베르사이유의 유령들’(Ghosts of Versailles·이하 베르사이유)은 ‘피가로 3부작’의 완결편이라기보다는 비련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애도이며 헌사라고 해도 좋을 작품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참수돼 죽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원혼을 풀어주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한 작품으로, 코믹한 오페라 부파와 비극적인 그랜드 오페라가 혼합된 대작이자 걸작이다.
작곡가 존 코릴리아노와 대본가 윌리엄 M. 호프만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100주년 기념으로 위촉받아 만든 이 오페라는 1991년 초연 때는 평가가 크게 엇갈렸다고 한다. 그러나 미 서부 초연이었던 이번 LA 오페라 공연은 대성공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우선 재미있고 볼거리가 많은데다 음악과 공연이 수려해 오랜만에 진수성찬을 받은 기분이다. 베르사이유 궁을 재현한 무대와 의상이 100만달러 넘게 들었다는 호화 프로덕션(감독 다르코 트레스냑)도 그렇고, 수많은 배역과 합창단, 무용수 등 출연진만 80명이 넘는데 이는 LA 오페라 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무대에 오른 기록이란다. 오케스트라도 다른 공연 때보다 훨씬 많은 80명 규모로 꾸며졌는데, 웅장하고도 입체적이면서 다양한 표정을 가진 연주를 지휘자 제임스 콘론이 가수들의 노래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어찌나 잘 빚어내는지, 많은 시간 무대 위보다는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피트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곤 하였다.
‘베르사이유’는 프랑스 극작가 보마르셰가 쓴 3개 희곡-1부 ‘세비야의 이발사’, 2부 ‘피가로의 결혼’에 이은 3부 ‘죄 많은 어머니’에서 내용을 차용한 현대 오페라다. 따라서 ‘베르사이유’를 감상하려면 1부와 2부의 내용을 기본적으로 아는 것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된다.
무대는 프랑스 혁명 때 목이 잘린 루이 16세와 신하들의 유령들이 배회하는 베르사이유 궁전, 주인공은 작가인 보마르셰와 마리 앙투아네트다. 왕비를 사랑하는 보마르셰는 자신의 비참한 죽음을 슬퍼하는 왕비를 위로하기 위해 새로운 오페라를 만든다. 이 오페라를 통해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고, 왕비를 다시 살려내겠다는 것이다.
오페라 속 오페라에는 피가로와 수잔나,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 케루비노 등이 등장하고, 백작 부부가 각각 혼외정사에서 낳은 레온과 플로레스틴, 악당인 비지어스가 새로 합류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피가로가 각본에 있는 대로 마리 왕비 구출작전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급해진 보마르셰는 자기가 오페라 속으로 뛰어 들어가 일을 바로잡아보려 이리 뛰고 저리 뛴다.
1부 후반에 나오는 터키 대사관 신은 두고두고 회자될 명장면이요, 오페라 사상 가장 재미있는 신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잠깐이지만 배를 잡게 만드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이국적인 춤과 음악, 배경과 의상, 곡예까지 모두 이국적인 터키 풍으로 꾸며지면서 코믹 오페라의 절정을 이룬다. 여기에 핑크색 코끼리를 타고 등장하는 요부 사미라는 일종의 카메오 같은 재미난 역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타인 패티 루폰(Patti LuPone)이 출연해 기막히게 섹시하고 코믹한 노래와 연기로 모두의 혼을 빼놓는다.
문제는 1막이 너무나 재미있고 화려하게 끝난데 비해 2막은 푹 가라앉고 처져서 시종 슬프고 우울한 장면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1막의 즐겁고 들뜬 분위기가 가시기도 전에 침울한 분위기에 빠져들므로 부담스런 면이 있고, 어수선한 혁명의 소용돌이와 끔찍한 기요틴의 재현이 그렇게 여러 번 강조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참수당한 사람들을 머리 따로, 몸통 따로 표현한 한인 디자이너 린다 조의 의상이 기발하다. 두 사람이 짝을 지어 목 잘린 한 사람을 이루는 연출인데 한 사람은 목 아래로 검은 의상을, 다른 사람은 머리 부분만 검은 색 네트를 뒤집어써서 조명 아래 움직이면 머리 따로 몸통 따로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가장 좋았던 것은 존 코릴리아노의 음악으로, 콘템포러리에서 바로크까지 여러 음악 스타일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대작 오페라를 엮어낸 솜씨가 놀라웠다. 특히 오페라 속 오페라로 넘나들 때는 ‘세비야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 주제 선율이 뒤섞이면서 조 바뀜과 음계의 변화가 현란하게 이뤄지는데 수많은 선율이 섞이고 겹치며 교차하는 음악이 매혹적이다.
마리 앙뚜아네트 역의 소프라노 패트리샤 라세트(Patricia Racette)도 열연이고, 보마르셰 역의 바리톤 크리스토퍼 몰트맨(Christopher Maltman)과 피가로 역의 바리톤 루카스 미쳄(Lucas Meachem)이 무척 잘했는데 가장 눈에 띈 가수는 로지나 역의 중국 소프라노 관쿤 유(Guanqun Yu)였다. 그녀의 실크처럼 부드럽고 풍성하고 서정적이며 아름다운 목소리는 다른 모든 소프라노들을 제압하는 특별한 것이었다.
남은 공연 일시는 2월18, 21, 26일 오후 7시30분, 15일과 3월1일 오후 2시.
티켓 17달러 이상. (213)972-8001.
www.laopera.org
<정숙희 기자>
<사진 LA 오페라 Craig Mathew>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