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랫만에 베이 지역에 폭풍을 동반한 비가 내렸다. 겨울 가믐이 심했던터라 아무리 날씨가 을시년스러웠어도 반가웠다.
아침에 일어나니 구름사이로 찬란한 해가 솟아오르는 모양을 보니 언제 보아도 역시 떠오르는 태양은 장엄하고 아름답다. 아침 저녁으로 내가 즐겨 걷는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언제 피었는지 한떼의 구군들이 희고 노오란 작은 꽃들을 앙징맞게 피워내고, 진한 보라색 자목련이 활짝 피어서 그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아! 봄이 왔네!’ 나는 탄성을 지르면서 길가에 핀 분홍빛 진달래며 구름처럼 핀 흰 배꽃이며 이제 막 멍울을 맺은 벗꽃 나무도 바라보며 봄의 향연에취해 본다. 봄! 얼마나 따뜻한 낮말인가.
이곳 캘리포니아는 이월이 오면 벌써봄이다. 미국 전역이 아직 꽁꽁 얼었는데 우리는 벌써 아름다운 꽃들을 보고,그 냄새에 취하고, 아무튼 그래서 나는이 캘리포니아를 사랑한다.
봄이 오면서 마치 봄의 전령처럼 여기저기서 좋은 소식들이 들려온다. 그동안 사십이 넘도록 홀로서기를 하던가까운 친구의 아들이 드디어 올 여름에 장가를 가게 되었다. 이 넓은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찾지를 못했던 평생의 짝을 먼 타국에서 만나 일사천리로 결혼까지 진행이 된것이다.
친구들은 그 소식을 듣고 모두 자신의 일처럼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그 아들은 친구네 부부만이 아니라 우리가 보아도 정말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미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대령의 계급장을 달고 있는데 인연이 되려니까 자신의 근무지인 월남의 한 교회에서 예비신부를 만났다고 한다.
이런 것을 속세에서는 인연이라 하고,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기적, 축복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가끔 인간의 힘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불가사의한 일들을 만들어 내신다. 조건만 본다면 한때는 그렇게 잘나가던 신부감들이 많았었는데 다 거절하고 왜하필 그 먼 월남땅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돕던 한 여자를 만날 수가 있을까.
아무튼 이 미스테리한 일들을 보면서 간절한 어머니의 기도는 절대로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다라는 것을 다시한번 믿게 된다. 내 친구는 지난 이년간두 교회를 섬기느라고 참 고생을 많이했다.
아마 하나님은 이 지극한 친구의마음을 보신 것이 아닐까. 우리가 모두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눈에 띠는 것은기억력의 감퇴로 금방 했던 일도 금방까먹는다. 어제 점심을 누구와 먹었더라하는 것도 가물가물하고 기억하기가 힘들어진다.
내 친구는 건망증이 좀 심해서 늘 안경이나 자동차 키나 휴대폰을 잃어 버리고 그것들을 찾느라고 난리 법석을피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신기한 것은 여학교때 배운 가곡들의 가사는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어서 가끔 나를놀라게 만든다.
잃어버린다는 것은 사는데 좀 불편할 뿐이지만, 잊어버린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된다. 결국 우리가 무서워 하는‘치매’라는 병은 한사람이 자신의 영혼을 몽땅 도둑 맞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아픈 여자도 아니며 버림 받은 여자도 아니며 잊쳐진 여자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다.
이곳 라스모어에서 사는 것 중 가장즐거운 일은 누가 ‘커피 마시러 와!’하고 전화가 오면 ‘오케이!’하고 약 오분이면 모든 곳으로 달려갈 수가 있다는것이다. 말하자면 한울타리에 사는 가족 같은 관계다.
요즘은 인터넷 세상이라 여러가지 재미있는 사건들이 이메일로 온다. 그중에 하나가 백세 시대라고 아리랑 노래에 부쳐서 온 가사다. 육십대는 "만약저 세상에서 나를 오라고 한다면 난 아직 젊어서 못가네" 칠십대는 “만약 저세상에서 나를 오라고 한다면 난 아직할일이 많아서 못가네" 팔십대는 “난아직 이곳이 살만해서 못가네" 구십대는 “만약 저 세상에서 나를 오라 한다면 난 내가 알아서 좋은 날 좋은 시에가려네"라고 말했다.
이제 다음 주면 나도 한살을 더 먹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떠들어대도 마음 한구석이 씁쓸한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 역시 칠십대에할일이 많아서 아직은 갈 수가 없다.
늙어서 바쁘게 산다는 일은 축복이다. 더구나 우리처럼 신나게 산다면 구십을 바라보아도, 백세까지 살아도, 건강만 있다면 매일매일이 즐거운 일이아닌가.
어디선가 겨우내 살이 통통하게 오른 다람쥐 한마리가 발밑을 포르르하고 달려 간다. 다람쥐 한마리도 저렇게살려고 기를 쓰는데 하물며 우리 인간들이 늙었다고 함부로 살면 안될 것 같다. 이제는 하루하루가 귀한 날들이다.
우리가 앞으로 더 몇번이나 아름다운봄을 맞으며 살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인생이란 이 작은 순간들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가꾸고 만들며 살아가는몸짓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아!봄이왔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