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환>
미.영 전쟁이 시작된 1812년경에는 짐을 가득 실은 큰 마차를 말 네 필이 끌고 매사추세츠의 Worcester에서 1,000마일 떨어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톤까지 가려면 75일이 걸렸다고 한다. 우편물은 이보다 조금 더 빨랐을 정도이었다. 이러한 미개적 통신과 교통수단으로 이 큰 땅덩어리를 미국이라는 통일국가로 유지할 수 있을까하고 우려했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이때의 길은 많은 사람들과 마차들이 오가면서 생긴 샛길이나 자연도로 이었다. 초기 개척자들이 서부로 이동해 갔을 때 “길을 만들면서” 지나간 규격도 없이 지형에 따라 편편하거나 돌부리 투성이었을텐데. 이런 길들을 trail이라고 불렀다.
1800년대에 들어오면서 다소의 규격에 따라 만든 도로(road)나 유료도로(turnpike)가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이때쯤 영국에는 사설로 유료도로를 만든 후 중간 중간에 도로사용료 징수소인 톨게이트를 만들어 놓았고 이 톨게이트 앞에는 뾰족한 못을 (spike)박아 놓은 원형목판(Turntable)을 설치해놓고 도로사용자가 통행료를 내면 못 박힌 목판을 돌려 지나가게 하였는데 이 유료도로를 턴파이크(TURNPIKE)라고 불렀었다고 한다.
미 최초의 턴파이크는 워싱턴 대통령 제2차 임기 중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와 랭커스터를 연결한 62마일 길이의 유료도로였는데 지금까지 현대식 도로로 개조되어 쓰이고 있지만 그때는 통나무를 잘라 맨땅인 도로위에 깔아놓은 것이었다. 통나무들 위로 마차가 지나갔을 것을 상상해보면 마차탑승자들의 척추에 금이 몇 개나 갔을까? 싶은 궁금증도 들지만 최소한 이 신작로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이 유료도로의 성공사례를 보자. 사설 턴파이크들이 사방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1825년경에는 뉴잉글랜드 지역과 중부주들의 대도시 간에는 대게 유료도로들이 건설되었었다. 가끔 주정부나 지방정부가 도로건설에 도움을 주기도 하였으나 큰 액수는 아니었다.
1802, 3년에 이르러서야 연방정부는 전국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절실함을 깨달아 연방정부 소유의 땅 판돈을 투자해서 1811년부터 본격적으로 턴파이크를 건설하기 시작하여 1852년경에는 주요 도시간의 턴파이크가 거의 완성되었다. 이 턴파이크의 중간 중간에 미쳐 다 완전히 잘라내지 못한 굵은 가지나 뿌리덩이가 1피트씩이나 솟아나와 있는 엉성한 도로이기는 했었지만 이제는 서부의 농산물들이 동부로, 동부의 공산품들이 서부로 큰 지장 없이 운송될 수 있는 길들이 생긴 것이다.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키울 혈액순환이 이루어졌는데 문제는 유료통행료가 당시의 서부인 오하이오, 일리노이스 등 대부분의 영세농민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까닭에 도로가 제대로 생기기 전에는 농사를 미시시피 강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지었고 수확된 농산물을 뗏목에 실어서 강류를 따라 뉴올리언스까지 운반하여서 팔고는 머나먼 trail로 집에 걸어 돌아갔었다고 한다.
육로로는 별로 멀지 않은 곳에도 운반하기가 쉽지 않아 땅이 얼은 후에 썰매에 실어서 운반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유로도로 가 생긴 후에도 서부농산물들이 동부에 오기가 쉽지 않았고 같은 뉴욕주안에서도 버팔로의 농산물이 뉴욕시에 판매되기가 아주 어려웠었다.
뉴욕시장을 다섯 번이나 지내고 1812년 대통령선거에서 Madison에게 패배했던 DeWitt Clinton이 1816년에 뉴욕주지사를 하였는데 그는 노예해방주의자, 빈곤채무자 보호주의자, 자연탐험가, 천주교도들에게도 투표권을 주자는 것을 주장하는 등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통이 크게도 Erie 호수에 있는 버팔로로부터 허드슨 강에 있는 올바니까지 장장 363 마일 (1,450리) 의 대운하를 건설하자고 주장하기 시작하여 1817년에 주 의회로부터 700만 달러를 받아내었다.
그때까지 미 전체에 통산 운하가 백마일이 되지 않았으며 가장 긴 운하도 2마일이 넘는 것이 없을 때이었다. 8년 동안 대부분 아이리시 이민들의 손으로 파내진 이 Erie canal은 1825년에 완공되었다. Clinton 은 청렴한 사람이었던지 오랜 공직생활 중에 갑자기 사망했을 때에 부채가 6,000달러나 있었다고 한다.
Erie운하는 운항통행료로 9년 만에 공사비를 회수하였으며 운하개통 전에 1톤당 1마일에 20전씩 들던 버팔로로부터 뉴욕시까지의 운반료가 1전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버팔로 지역의 농산물들이 제값을 받게 되었다. 호수를 지나 Erie 운하로 뉴욕시에 물자를 운송할 수가 있게 된 5대호상의 도시들인 버팔로, 클리블랜드, 디트로이트, 시카고 등은 경제적으로 급성장할 수 있도록 되었고 뉴욕시는 미국의 무역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Erie운하의 성공으로 미국에는 운하건설 붐이 일어나서 1840년까지에 동서부 에서 3,326 마일이나 되는 운하건설을 위해서 당시 돈으로 1억2,500만 달러가 투자되었다. 이 운하건설 붐은 1837년 경제공황이 오자 대부분 중단되었으며 자금조달계획을 분명히 세우지도 않은 채 운하건설을 시작했던 펜실베니아와 인디애나 주는 파산위기에 까지 몰렸다고 한다. 이 여파로 많은 주들이 채권발행으로 운하나 다른 대규모공사를 금지하는 조항을 주 헌법에 삽입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운하 붐 파동의 또 다른 결과는 1840년, 1850년대에 시작된 철도건설이 거의 정부의 보조가 없이 전부 민간투자만으로 이뤄지게 되었었다.
미국의 운하의 성공과 실패경험이 있은 지 꼭 200여년 후에 우리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운하를 건설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라는 애매한 주장을 해오면서 큰 비용을 들여 ‘4대강 사업’이란 것을 끝내놓고 물러간 뒤 빚 덩어리를 안고 있는 국민들이 이제는 생태계가 파괴되었음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Robert Fulton은 영국에서 증기엔진을 수입해서 배에 설치한 증기기관 동력선을 1807년에 만들었다. 그는 미 독립전쟁 중에는 총기제조 고급기술자인 gunsmith 이었는데 미국독립이후에는 화가로서 활동하였다. 재주가 많았던 사람이었던지 수중어뢰도 발명하였고 잠수함과 비슷한 배도 만들었었다고 한다. 그가 만든 증기동력선이 뉴욕시에서 올바니까지 32시간 만에 강의 역류를 헤치고 도착함으로써 증기동력선이 상업용 수송선이 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그 4년 후에 오하이오 강에서 증기동력수송선이 운항되기 시작하였다. 운항료가 비싸다고 생각되어 아직도 뗏목으로 농산물을 뉴올리언스까지 운송한 사람도 농산물을 팔고 난후 그전처럼 그 먼 거리를 걸어서 돌아오지 않고 물레방아 바퀴같이 생긴 추진기들이(side wheeler) 배 양편에 설치된 “호화스러운” 수송선을 편안히 타고 32시간 만에 올바니까지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 수송선들은 올리버 에반스라는 필라델피아 사람이 발명한 가벼운 고압증기엔진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이 고압증기엔진은 연료인 장작을 더 많이 태워야 하기는 하였지만 엔진이 더 가벼우나 마력은 더 높아서 배의 속도가 더 빨랐다. ‘더 빨리!’가 생활구호이었던 이 개척민들은 엔진제조규정보다 더 많은 출력을 얻기 위한 고압증기를 만들기 위해서 애초에 안전밸브를 부착하지 않은 엔진도 있었으며 밸브가 있는 엔진은 아주 밸브를 막아버리기도 하는 무지한 짓들을 하였다고 한다.
그때에 가장 위험했던 것이 증기선들 삼분의 일에 일어나는 보일러 폭파 사건이었다고 한다. 혹시 같은 방향으로 두 수송선이 나란히 가게라도 되면 선객들이 선장들에게 속도경쟁을 하라고 난리를 쳤다고 한다. 이 경쟁을 하다가 보일러 폭발사고가 자주 났다고 하며 그래서 승객들은 엔진과 거리가 먼 뒤쪽에 타려고 하였다고 한다.
이무렵 영국에서는 증기기관차가 발명되어 주요 운송수단으로 쓰이고 있었다. 유럽이 조그마한 작은 나라들로 갈라져 있어서 열차운행이 얼른 보급될 수 없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광활한 땅덩어리가 국경의 장애가 없이 한나라였던 까닭에 열차운송이 가장 이상적인 나라이었다.
운하의 혜택을 보지 못하던 보스턴, 볼티모어, 찰스톤 등의 대도시는 당장 철도를 놓아야만 할 처지가 되었다. 또 서부로 새 땅들이 개척되어 나가기 시작하자 어제의 황무지가 오늘은 사람들로 우글거리기 시작하였고 이들에게 생활필수품들이 수송되어야 하였으며 이들이 생산하는 물자들을 동쪽으로 옮겨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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