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나 미국이나 빈부격차가 계속 커지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부유층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빈곤층은 점점 더 빈곤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온 것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상황이 더욱 악화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연례 국정연설에서 ‘중산층 살리기’를 강조한 것도 미국의 중산층 붕괴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2016년 대통령 선거의 초점도 중산층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에 맞추어질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세계 정치/경제 지도자들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연례회의에서 전 세계적인 빈부양극화 현상이 인류가 당면한 최대과제 중의 하나라고 선언하고 있다.
한인들이 많이 이민 왔던 1970-80년대에 미국으로 온 사람들은 그 때의 미국과 지금의 미국이 여러 면에서 크게 달라진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빈부격차의 심화가 크게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소득양극화와 분배불균형에 관한 숫자들을 잠시 살펴보면 과연 미국의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내 주택보유율이 지난 10년간 계속 감소해 왔다(불량 주택저당 파동으로 야기된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 500만 채가 넘는 주택 소유자들이 집을 잃었다). 미국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가치는 최근 3년 동안 거의 40%나 줄어들었고 반면에 가계부채는 계속 증가해 왔다. 그 결과 미국의 빈곤율은 지난 3년 간 연속해서 15% 이상 증가하여 현재 근 5,000만에 달하는 미국인들이 빈곤상태에 살고 있다.
미국인들이 지고 있는 크레딧카드 빚은 평균 1만5,000달러가 넘고 주택융자 빚도 평균 15만 달러에 달하고 있다. 미국 근로자들의 절반 이상(53%)이 3만 달러 미만의 연간소득으로 살고 있다. 한마디로 최근 수년 사이에 수백만 중산층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그들의 수입은 계속 감소해 왔는데 부채는 사상 최대 수준으로 증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빚 갚느라 허덕이다 보니 비상금, 여유자금, 은퇴자금을 비축할 힘도 없고, 가족들이 아플 때 의료비를 대기도 힘들어지고, 그래서 휴가 가는 것, 새 차 사는 것도 다 미루고 있다.
요즘 미국에는 “부자 아니면 가난한 사람만 있고 중산층은 사라졌다” 는 말을 많이 한다. 예전에는 미국인들의 60-70%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최근에는 그 비율이 반도 안 된다고 한다. 개개인이 잘 살고 못 사는 것, 즉 개인의 운명을 개인 스스로가 개척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전통적 가치관이라고 하겠는데, 이제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빈곤의 문턱에 놓이게 되자 개인책임주의를 떠나 정부가 심각한 소득불평등을 줄이는데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이 달라지고 있다는 말이다.
사실 소득양극화, 분배불평등은 미국만이 아니고 대부분의 나라들이 다 겪고 있는 문제이다. 정확한 통계인지 모르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최상위 1%의 사람들이 가진 재산이 나머지 99%가 갖고 있는 모든 재산보다 크다고 한다. 원래 자본주의라는 것이 글자 그대로 자본이 중심이 되는 체제이다 보니 자본(돈)을 가진 사람이 더 돈을 벌게 마련이다. 가난한 사람은 자본이 없다 보니 돈을 더 늘리지 못하고.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은 자본주의에서 특히 맞는 말이다.
반면에 각자가 가진 것에 관계없이 공동체(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소비하자는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에서는 이론상 빈부격차라는 말이 나올 수 없다. 자본주의에서 빈부격차는 처음부터 예상된 것이라고 한다면 자본주의 종주국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미국에서 그것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자본주의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소득불평등, 빈부격차를 개인들의 기부행위 같은 자발적 사회참여 기능으로 어느 정도 해소해오던 미국이 이제 불평등의 도가 지나치자 그 전통적 가치관을 수정해야 할 때가 됐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제는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많이 걷어서라도 소득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미국답지 않은) 주장이 들리고 있다. 아직도 정통 보수 세력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지만 과연 얼마나 버틸지.
미국의 중산층이 이미 괴멸했다고 부고장을 내는 것은 과장이지만 문제가 심각한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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