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축구가 기사회생하며 자존심을 살렸다. 아시안 컵을 놓고 홈팀인 호주와 31일 오전 1시(LA시간) 결전을 벌인다. 브라질 월드컵이후 급격히 무너져 내리던 한국 축구로서는 기적 같은 일이다. 그것도 무실점으로.
한국은 1956년 홍콩과 1960년 서울 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55년 동안 한번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우승뿐 아니라 결승전 진출 역시 1988년 카타르 대회 이후 27년 만에 처음이다. 2002년 월드컵 신화를 만들었던 당시에도 아시안 컵 결승에는 오르지 못했다.
랭킹만으로는 한국이 국제축구연맹(FIFA) 69위로 100위의 호주보다 강하지만 호주의 홈경기 이점으로 본다면 승리를 장담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이번 아시안 컵 한국 축구의 관전 포인트는 우승 여부가 아니다. 브라질 월드컵 이후 팬들에게 절망감만 안겨다준 한국 축구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결승까지 진출했다는 게 중요하다.
한국 축구는 누가 봐도 변두리 축구로 전락하던 중이었다. 이런 한국 축구가 아시안 컵 결승까지 올라갔다. 첫 번째 이유를 꼽으라면 슈틸리케 감독이다.
지난해 말 슈틸리케가 한국 팀 사령탑으로 영입될 때 만 해도 대다수의 한국 언론들은 부정적 평가 일색이었다. “대표팀 감독 경험이 없다”“이렇다 할 성적이 없다”등등 앞서가기 좋아하는 한국 언론의 매질이 계속되면서 슈틸리케의 리더십에 의구심이 증폭됐었다. 더군다나 지휘봉을 맡은 지 3개월 만에 치러지는 아시안 컵에 희망을 걸기는 힘들었다. 그랬던 언론들이 요즘은 칭찬으로 정신이 없다. ‘실용주의’ 축구라느니, 진정한 리더십이라느니 언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찬사를 그에게 쏟아내고 있다.
축구를 좋아하는 나도 LA시간으로 밤 11시와 새벽 1시를 오가며 열리는 한국 경기를 볼 때마다 나날이 향상되는 한국축구팀의 경기력에 피곤함도 모르고 신바람을 내고 있다. 대회 초반 ‘동네 축구’를 구사하던 한국 축구가 조직력에 공격적인 축구로 변모해 결승까지 치고 올라갈 때마다 마음이 다 후련해진다. 우승후보 호주를 포함해 예선 3경기를 1대0 살얼음 승리로 장식하더니 8강과 4강에서 난적 우즈베키스탄과 이라크를 연파하고 무실점 경기를 이어왔다. 지도자 한명이 팀을 확 바꿔버린 것이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탄생 시킨 히딩크 감독은 한국팀을 “기술부족이 아니라 체력 부족”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한국 팀의 부족한 기술을 체력과 정신력으로라도 극복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한국팀을 이끌었던 한국 감독들이 이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한국 감독들은 외국에서 들여온 용병 감독만큼 성적을 내지 못할 까. 언론들은 히딩크의 투명성에 힘을 실어 준다. 선수는 전적으로 실력으로만 뽑는다는 원칙이다.
당시 박지성, 이영표, 김남일, 최진철이란 이름은 축구팬들에게 생소했다. 이들을 뽑은 히딩크를 보고 말들이 많았다. 간판 홍명보와 황선홍도 처음에는 히딩크호에서 배제돼 언론들의 시빗거리가 됐다. 기득권에 대한 경고였다. 특정 학연, 인연, 배경이 아니라 철저한 실력을 바탕으로 한 탕평책이 산화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슈틸리케 역시 투명성을 강조했다. 월드컵 대표팀에 이름도 못 올렸던 차두리를 재기용해 폭풍 질주로 두 경기에서 두 개의 어시스트로 위기의 한국팀을 구해내게 했다. 이정엽, 남태희 등등 벤치에나 앉아 있을 선수들이 슈틸리케에 발탁돼 거침없이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골을 터뜨리고 영웅 탄생을 알렸다. 이름 있는 선수도 뒷걸음질 치며 게으른 선수는 가차 없이 벤치에 주저앉힌다.
한국의 한 언론은 슈틸리케 감독을 ‘똑게’ 감독이라고 표현했다. ‘똑게’란 똑똑하고 게으르다는 뜻으로 2~3년 전 소셜 미디어에서 상사와 부하와의 궁합을 설명하는 ‘궁합표’에서 나온 말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똑게’ 감독으로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부하와 만나면 찰떡궁합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똑똑하지만 혼자서 다 일을 처리하지 않고 수하들에게 맡기는 스타일이다. 이런 감독의 믿음을 믿고 감독의 말을 부지런히 따르는 똑똑한 선수들 때문에 패배주의에 빠져들던 한국 축구가 되살아났다는 해석이다.
세계 최악의 지도중 하나로 꼽히는 캄보디아의 폴 포트는 프랑스 유학파로 인텔리였지만 스탈린이나 모택동 식 교조주의만을 쫓다가 이데올로기나 자신의 이상에만 빠져 수백만의 인명을 학살하는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성경의 모세는 불평 많던 250만 이스라엘 민족을 뛰어난 리더십으로 애굽에서 이끌고 나와 세계의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을 그들과 비교한 다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그가 한국축구를 이끄는 경영철학만은 이들과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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