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트성의 화단.
2년 후, 약속대로 노부부는 볼트에게 뉴욕왕복승차권이든 초청장을 보냈다. 그리곤 볼트를 뉴욕 5번가의 호화스런 빌딩 앞으로 데리고 가 “당신을 위해 짓겠다던 호텔”이라고 했다. 그 유명한 더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의 탄생이었다. 그 호텔의 총 지배인이 된 볼트는 노부부의 딸인 루이스(Louise)랑 결혼까지 하고 호텔업의 왕이 됐다. 그런 꿈같은 반전이 이뤄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소설 감인데 그 이후의 스토리는 더 극적이다.
아내 사랑이 지극했던 볼트는 아내가 난치병에 걸리자, 사랑의 선물로 하트 섬에다 중세의 성을 본 따 성을 짓기 시작했다. 최고의 기술자들에 최고의 자재들을 써서 거의 완공단계에 이를 즈음, 아내의 병세가 급속히 악화됐다.
볼트는 공사를 중단 시키곤 아내를 성으로 초대했다. 입맛을 잃은 그녀를 위해 준비한 새 드레싱이 아내의 미각을 흡족 시켰다.(마요네즈, 칠리소스, 케첩, 피클 다진 것을 넣은 이 드레싱은, 볼트성 주방장의 솜씨란 설과 이 근처 낚시가이드의 부인이 개발한 작품이라는 설도 있다.) 분명한 건 볼트가 최초로 ‘사우전 아일랜드’란 이름을 지어 호텔 메뉴판에 올림으로써, 그 드레싱이 유명하게 됐다는 점이다. 공사 시작한 지 4년째인 1904년이었다.
지하의 실내수영장서부터 꼭대기까지 127개의 방들이 엘리베이터로 연결된 초호화 6층 건물의 마무리단계일 때, 루이스가 그만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볼트는 즉시 ‘공사중단’이란 전보를 보내곤, 다시는 이 섬에 발길을 안했다. 단 한 번도. 졸지에 300여명의 기술자들은 떠나버렸고 성은 73년간이나 방치됐다. 유적처럼 낙후된 성을 1977년 사우전아일랜드다리공사가 매입해 1400만 달러를 들여 개보수를 했다. 그럼에도 외양은 저리 번듯하지만 내부는 아직도 미완성인 채 그대로다.
유람선을 대는 선착장이 넓고 기념품점, 아이스크림점도 있다. 거대한 성은 언덕위에 우람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정원으로 나있는 문으로 들어가니 건물의 지하층이다. 창 쪽으로 타원형의 실내풀장이 있다. 보기엔 자그마한 연못인데, 수면 위 연꽃 같은 동그란 받침대에 개구리 한 마리를 만들어놓았다.
고도의 심리전(?)에 말린 사람들이 개구리를 과녁으로 행운의 동전던지기를 반복한 결과, 바닥엔 동전들이 두텁게 깔렸다. 층계를 올라가니 로비다. 촛대의 심지도 어느 날 이후 타다만 채, 그랜드피아노와 의자도 접근금지 리본에 매여 있는 채, 모든 게 ‘정지’의 인상이다. 그럼에도 큰 통 유리창, 모자이크, 천장을 수놓은 화려한 그림들로 얼핏 베르사유 궁전이 떠올려진다.
옆의 큰 홀은 볼트처럼 깊고 영원한 사랑을 원해서인지 결혼식장으로 인기 만점이란다. 일층엔 도서관과 당구대도 있다. 들여다보는 방들마다 전통적인 지중해스타일로 리모델링해서 귀족들이 사는 집처럼 고아하다. 볼트의 아내를 위한 지극정성이 얼마나 깊었던지, 조가비나 거북이 등딱지로 장식된 방, 쇠로 조각된 발코니, 이태리제 특제 대리석등 호화로움과 아름다움의 극치다.
그러나 층을 올라갈수록 가구커녕 실내장식이 전연 안 돼 있다. 엘리베이터마저 미작동이다. 그냥 공사가 중단된, 마치 이사 오기 전의 방, 그대로였다. 맨 꼭대기 층은 아예 다락방보다도 못할 만치 황폐하다. 강이 보이는 창만 있다. 사람들이 사랑의 증표삼아 장난처럼 새긴 낙서, 이름, 하트그림 등이 벽지역할을 하고 있다. 완전 ‘유령의 폐성’ 이다.
건물 뒤 언덕바지엔 고즈넉한 이탈리아풍의 정원이 강의 풍광과 어우러져 완전 딴 세상이다. 분수대와 화강암으로 구획된 화단엔 온갖 특이한 꽃과 꽃 고추 등의 향연이다. 주인은 생전에 이런 아름다움을 보지도 누리지도 못했다. 임자는 간데없고 꽃들만 만발했다 싶으니 애잔하고 허무하다.
문득 박정만 시인의 <작은 연가>시 구절이 다가온다. ‘사랑이여, 보아라/ 꽃 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꽃 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해질 녘엔 저무는 강가에 와 닿는다./......./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강가에 있는 전력생산건물이라는 Power House로 들어가 봤다. 지붕가의 장식이 고딕식 성탑모양인데 테라스와 전망대도 있다. 아치형의 다리도 로마의 기념문을 모델로 해 멋지다. 변전소 건물까지 저렇게 예술적으로 계획해놓곤 유종의 미를 못 봤으니... 유람선에서 점점 멀어지며 작아지는 볼트성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부부의 사랑은 애절하게 끝났고 볼트성만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성은 숱한 방문객들에게 볼트의 능력, 꿈, 부부애를 감명 깊게 증언하며 기억나게 해줄 것이다. 고로 그 둘의 사랑은 영원불멸로 승화됐다.
미완성인 성도 세기적인 아내사랑의 기념비적인 금자탑이 됐고. 에머슨의 <성공이란 무엇인가>시 구절이 상기된다. ‘...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세상을 조금이라도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하나의 다른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볼트성만 빼곤, 꿈을 꾸는 것과 이루는 것이 동의어였던 볼트. 그는 진정한 성공인이었다. Ottawa 캐나다의 수도이자 온타리오 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오타와로 간다. 워싱턴DC, 브라질리아, 캔버라와 같이 대표적인 신대륙의 행정수도다. 국경다리를 건너 캐나다의 입국심사소로 갔다. 우리 앞에 그레이하운드버스만 없으면 행운이라는데 마침 트럭한대만 있다. 모두 버스에서 내려 영주권과 여권의 사진과 대조하며 개별면담이다. 꽤나 까다로워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정말 그레이하운드가 있었다면 황금 같은 시간만 연기처럼 날릴 뻔 했다.
드디어 오타와에 도착했다. 오타와란 이름은 세인트 로랜스 강의 지류인 오타와 강 지역에 살던 아메리카원주민인 오다와족(교역자란 뜻)에서 유래됐다. 원래 이름은 영국인 바이에 의해 형성됐다고 해서 바이 타운 이었다. 1855년에야 오타와로 개명됐다. 지금도 바이 타운 이란 이름을 가진 시장과 박물관도 있다. 오타와 강을 경계로 접하고 있는, 퀘벡(Quebec)주는 프랑스영향권이고 온타리오 주는 영국의 세력이 우세하다. 공평하게 두 주가 만나는 오타와를 수도로 정한 이유다. 미국의 북부세력과 남부세력이 만나는 워싱턴DC를 수도로 정했듯이. 그런 연유로 영어, 프랑스어 공용에다 영국문화, 프랑스문화의 최 접경지로 캐나다에서 학력수준이 제일 높은 곳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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